이 회사에 내 자리가 있을까?
불행하게도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그와 함께 간 첫 현장은 구미의 어느 작은 공장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고무바(화물을 고정하는 두껍지만 탄성을 가지고 있는 고무재질의 로프)를 풀고 짐을 내렸다. 짐을 내리던 그가 나를 보더니
"의자 뒤에 장갑 있어요! 장갑 끼고 해야지 손 다쳐요!"라며 소리를 쳤다.
깜짝 놀라 알겠다는 대답을 하고 의자 뒤에 장갑을 찾아 꼈다.
한여름의 땡볕아래 짐을 내리다 보니 땀이 비 오듯 했다.
"김정우기사는 군에 안 다녀왔나 보죠?"라며 그가 물었고, 다녀왔다고 대답하고는, 짐을 계속 내렸다.
"군에 다녀왔으면서 이런 일 처음 해요." "아니요, 힘든 일은 많이 해봤는데, 날씨가 조금 더워서요."
당시의 나는 그러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긴장되는 일 투성이었다.
사무실에 있던 그 며칠이 나를 주눅 들게, 더욱 어리숙하게 만든 것 같았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
징병검사 시 면제판정을 받아 다녀오지 않은 것이었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짐을 다 내리고 나니 까무잡잡한 얼굴의 아저씨들이 도착했다.
"인사해요, 우리랑 같이 일하는 현장 반장님들이에요."
"안녕하십니까, 김정우 기사입니다."
새까만 얼굴의 아저씨들은 만나서 반갑다며 간단히 인사하고 그와 현장을 둘러보았다.
현장은 연마기라는 것에서 나오는 먼지를 빨아들여 집진기라는 곳으로 옮겨주는 것들을 설치하여야 하는 곳이었다.
공사는 그날 끝난다고 했다. 우리 할 일은 공사 중 필요한 것이 있으면 준비해 주거나,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작은 공사이기에 필요한 것도 그리 많지 않았고 이미 그와 여러 번 일하였다는 반장님은 자주 놓쳤던 것들을 준비해 현장으로 왔다 했다.
저녁시간대쯤 공사는 마무리되었고, 공사 담당자와 집진기를 가동하며 함께 확인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담당자는 만족했다.
나의 첫 현장 탐험(?) 아니 나들이(?)인가, 나름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그는 딱히 약속 없으면 저녁을 하고 퇴근하자고 했다.
구미에서 대구까지 버스로 가겠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대구에 아는 이도 없었던 나였기에 그렇게 하겠다 했다.
저녁 식사를 하던 중 그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김정우 기사 회사에서 안 뽑으려 했었는데 혹시 알고 있어요."
"예, 부장님께 들었습니다.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죠, 안 뽑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무리해서 뽑았으니 열심히 해야죠. 그럼 퇴근할 때 운전해 볼래요?"
"예? 운전요?"
"예, 열심히 한다면서요?"
딱히 선택지가 없었고, 처음 해보는 운전을 야간에, 그것도 고속도로에서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그와 함께 납품, 공사를 도우며 운전에도, 짐을 싣는 것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어렸던 나는 차츰차츰 익숙해지며 '이제야, 회사에서 내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