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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온Haon Apr 14. 2023

나는 속았다. 정답일 줄 알았던 그가 오답투성이었다.

4. 그는 양파였던가.. 까도 까도 새로운 모습이..

<‘나’라는 사람>

소위 강남 8 학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10대에 나는 ‘ 생각하기보다는 ‘공부해야 하는 학생으로만 살았다. 내가 좋아하는 , 내가 싫어하는 , ‘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수험생활을 하는 학생정도로만 존재했던  같다. 나의 기호, 선호도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나의 자아 생각하는 .. 하라는 사람도 없었고   몰랐다는   정확하겠다.


그러다가 20대에 대학생이 되었다. 너무나 신세계였다. 전공과를 내가 선택하고, 학교 시간표를 내 마음대로, 내 기호대로 짤 수 있다니. 획기적이었다. 교양수업도 내가 수강하고 싶은 걸로! 교수도 내 마음대로! 4년간의 대학교생활이 곧 ‘나’였다. 모든 순간순간이 ‘나’로 표현되는 시간들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자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좋고, 싫음이 분명해졌다. 20대부터는 좋아하는 것은 가까이, 싫어하는 것은 멀리 두려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세상을 살면서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사람,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 걸 알게 됐다. 예를 들어 나를 위한 쉬운 길이 있는데 모두를 위해 뺑 둘러가는 사람. 뺑 둘러가는 길에 고난이 뻔히 보이는데 ‘나 하나’ 고난에 몸 담그면, 나만 힘들면, 모두가 편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대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도’가 있다. 내가 희생하는 것이 ‘호의’ 정도로 갈음될 때가 마지노선이다. 내가 희생하는 게 나를 불태우는 것이 되면 안 된다. 나를 불태우면.. 뭐가 남지..? 그리고 나를 아끼고 응원하던 사람들은 뭐가 되지..?


냉정하게 말해서 무언가에 정도가 지나치게 ‘나를 희생’하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편안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내가 진짜 편안해지나?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마 중요한 것을 잃었을 것이다. 바로 ‘자기 자신’.


‘나를 사랑하는 사람’ 되기 위해서는 나를 잘 알아야 한다.


난 적당히 이타적이면서, 적당히 이기적인 사람이다.

적당히 이타적인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사람,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이 너무 힘들지 않도록 돕지만, ‘내 사람’의 카테고리에 두고 싶지 않아 하는 적당히 이기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


난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3편에 이어서)

나도 그를 ‘내 사람’으로 생각하듯이 그도 나를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사람이 된 후로부터 그는 나를 매우 편안해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들을 마구 보여주었다.


새롭게 알게 된 모습 1. 그는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우선순위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는 언제나 업무, 업무에 따른 책임감이 우선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회사는 상사의 욕심이 끝도 없어서 만족시키기란 나를 하얗게 불태워도 될까, 말까였다. 거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았다. 유독 그는 상사가 지시한 업무를 기대만큼 해내지 못할까 봐 불안과 걱정을 달고 살고 있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생각한 그는 밑 빠진 독에 물을 적당히 붓다가, 불호령이 내려지면 사람 좋은 웃음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새롭게 알게된 그는 마치 인생목표가 ‘상사에게 인정받기’인 듯 했다. 인생목표가 그러한데, 연애의 우선순위는 당연히 뒤로 밀리는 수밖에.


‘어쩌지, 오늘까지 이 업무는 마무리해야 되는데. 퇴근이 늦어질 거 같아’

‘기다리지 말고 오늘은 먼저 가’

‘이번 주말엔 출근해서 일을 좀 쳐내야 할 거 같은데’

‘이것만 마무리되면 숨통이 좀 트일 거 같아. 다음 주말엔 외곽에 예쁜 카페 가자’


마치 나에게 희망 고문을 하는 양치기 소년 같았다.

아,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구나. 점점 그를 믿기가 어려웠다.

기다리고 믿었다가 대차게 실망하고 상처받는 건 나니까.


새롭게 알게 된 모습 2. 언제나 밝아 보였던 그의 얼굴과 달리 그의 마음은 온통 부정적이었다.

‘힘들다. 죽겠다. 피곤하다. 쉬고 싶다.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다’ 등등


역시나 회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가 회사에서 실실 웃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은 ‘가짜’였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육체적인 피로라면 영양제를 챙기던, 보양을 해줄 수 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던 하겠는데. 그가 말하는 것은 ‘정신적인 피로함’이었다. 물론 정신적인 피로함도 내가 도울 수 있겠지, 단순하게 생각했다. 내가 그의 ‘쉼터’가 되면 되겠지.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의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내는 ‘휴지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새롭게 알게 된 모습 3. 그의 인생에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없었다.

그는 세상에 자신을 맞추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직장에서 능력 있다는 인정을 받기 위해 에너지를 ‘몰빵’하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여유가 없는 사람. 애초에 내가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이런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내가 사랑하는 그가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사람,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 임을 알게 됐다.  


속았다. 그가 나에게 이 정도로 오답일 줄이야.


그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나 아무래도 사기당한 거 같아. 이거 사기연애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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