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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온Haon Apr 14. 2023

나는 고군분투했다. 그의 인생에 뛰어들기 위해

5. 으쌰으쌰, 사람 하나 고쳐보자.

<‘나’의 가족>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사람이다.

우리 가족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부모님, k-장녀인 나, 3살 터울의 여동생, 이렇게 4명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의 자랑은 ‘가족의 화목함’이었다. 그렇다고 언제나 평안~하고 잔잔~한 화목함이 있는 교과서에 나올법한 가족은 아니지만, 나와 동생의 대학입시 실패에 따른 재수생활, 엄마의 갱년기, 아빠의 명퇴 등의 인생의 굵직한 이벤트들을 요란스럽지 않게 물 흐르듯이 지나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평범한 화목함에서 비롯된 단단한 ‘믿음’이지 않았을까. 내가 힘듦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가족이 알아주고, 든든하게 ‘빽’이 되어주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땐, 세상아 덤벼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최면을 걸곤 했다.

언젠가, 입사초기에 부장에게 찍혔을 당시, 엄마한테 말한 적이 있었다.


엄마, 부장이 날 싫어하는 거 같어.

왜?

몰라? 그냥 지나가면서 한 번씩 시비 걸고, 별것도 아닌 걸로 꼬투리를 잡아. 뭔가 있는 거 같아(그 당시엔 부장이 날 싫어하는 이유를 몰랐었다 -2편 참조)

참내, 웃기는 사람이네

그치, 그래서 좀 짜증나. 괜히 눈치줘.

얘 됐어, 그럴수록 고개 빳빳이 들고, 어깨 쫙 피고 당당하게 다녀.

오케이. 목에 깁스한다잉


아마 엄마는 말은 이렇게 해도, 상사에게 이쁨 받지 못하는 내가 신경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같이 걱정하기보다는 내 기를 살려주자.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실제로 난 당당하게 다녔다. 마치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 당신이 아무리 날 구박해도 나에겐 뒷배가 있다구. 우리 엄마 무섭거덩? 암사자한테 혼나볼텨.


이렇게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 아래서 컸던 나는 타인에게도 이런 울타리가 되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부장과의 히스토리는 언젠가 꼭 글로 쓸 것이다.. 두둥 기대하시라)





(4편에 이어서)


사기연애라니, 단어가 좀 과격하지만, 나는 설명이 필요했다.

그를 한, 두 달 본 것도 아니고 무려 2년 가까이 같은 사무실에서 높지도 않은 파티션 하나 두고 알아온 사이인데, 이렇게 새로운 모습들이 있다고? 그리고 직장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도 많이 만났는데..? 사귀기 전에 직원들끼리 1박 2일로도 놀러 갔었고, 꽤나 진지한 이야기들도 많이 했었는데..? 왜 때문에..?


회사 말고는 신경 쓸 여유가 없던 사람이었다니..


당연히 타인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순 있다. 뭐, 나조차도 나의 새로운 모습들을 문득 마주하니까 말이다. 근데 이건 좋은 말로 새로운 부분이지, 아차차 싶은 부분은 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모르는 그의 모습을 발견해서, 내가 그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었구나. 하는 천진난만한 생각이 들 만큼 난 순수하지 못했고, 야~ 이거 뒤통수 맞았네,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이거 사기연애야, 아무래도 나 사기당한 거 같어.

크크크 왜?

아니~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그동안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숨길 수가 있어요?

다~ 방법이 있지~

기막혀, 그래서 회사에 이렇게 에너지를 다 쏟으면 나랑 어떻게 연애를 하려고 한데요?

마이너스 에너지 끌어다가 하는 거지 뭐


세상에.. 마이너스 에너지는 또 뭐야..?그럼 그다음은? 걸어 다니는 시체랑 연애를 하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왠지 내 앞길이 꽃길이 아닌 가시밭일 것 같은 이 불길한 느낌..


이 대화를 뒤로 그가 또 약속을 지키지 못해 나를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거나, 내 앞에서 피곤해하고, 정말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을 하고 쳐다보는 나를, 그는 반쯤 감긴 눈으로 바라볼 때 김이 팍 새고, 실망스럽고, 비참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나도 서운하다, 당신에게 나는 도대체 무엇이냐, 제발 일 좀 적당히 해라. 등의 미운 말들을 하게 됐다. 그때마다 그는 나의 힘듦을 이해하고, 자신이 바뀌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저 불편한 그 순간을 어물쩍 넘어가고 싶었겠지.


그러다 어느 날 반복되는 이런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아니다, 주로 내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바뀌겠다 했으니 실행에 옮기라고. 그게 왜 안되냐고. 그러자 그는 마치 변명하듯이 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의 가족은 나의 가족과는 많이 달랐다. 많은 어려움이 있던 유년시절과,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를 경험한 적이 없었던 그는 그렇게 ‘타인의 인정’이라는 욕구를 쟁취하기 위해 회사에 목을 매고 있는 듯했다. 그가 오답투성이었던 이유, 아니 오답투성이 일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그동안 그를 이해하지 못해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기는커녕 가슴에 돌덩이 하나가 더 생긴 기분이 들었다.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품을 수 있는 사람인 걸까. 두려웠다.


타인의 인정


가족, 친구, 연인, 직장 등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능력 있다고 인정받을 순 없다. 인정받아야 할 우선순위의 사람을 정하고 그 사람에게 ‘인정’ 받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인정받지 않아도 될 사람(타인을 인정할 줄 모르는, 나 잘난 맛에 사는 부장)에게 인정받기 위해 매일 전쟁터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건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음의 병이 있었다.


하지만 연애초반이었고, 내가 쟁취한 사랑이었고, 내가 책임지고 싶었다. 


그렇게 난 그가 마주하고 있는 전쟁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내가 직업도 사회복지 산데, 사명감을 가지고 그를 도우리라.


우선 그에게 ‘적당히’를 알려주려고 했다.


언젠가 부장이 그에게 내 험담?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얘기를 할 시점엔 부장은 나에 대한 편견?을 약간 내려놓은 상태였다.)


최 선생(나)은 일을 잘해. 잘하는데 내가 딱 시킨 만큼만 해와, 시킨 만큼 해놓고 와서, ‘더 해보려고 했는데요,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어렵습니다’라고 말해. 그리고 그거 말하면서 눈을 땡글땡글하게 하고 얘기해. 그럼 내가 혼내지도 못하겠더라고. 참나.


부장이 하고 싶은 말은 ‘걘 왜 시키는 것만 해? 더 열심히 안 해?’ 였겠지.

그리고 이런 얘기를 내가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는데, 굳이 굳이 나에게 전달한 그는 ‘부장이   열심히 하라던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오호~ 내가 잘하고 있군. 앞으로도 이렇게  거야라고 했다. 사실 얘기를 전달받고는 ‘.. 티가 나보네..하하 조금 숨겨야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일부러 그의 앞에서는 대범하게 ‘월급 나올   나오고,  인정  받으면 어때, 내가 그래서 노나?  일은 한다구~’라고 했다. 그리고 ‘당신도 내려놓을  내려놓고, 회사에서 인정해 주는  그만큼만,   있는 만큼만, 적당히 해요. 몸상해라고 했더니 그는 ‘당연히 나도 적당히 하고 싶지, 근데 그게 현실적으로 안되지.  업무는 이래 이래해서 중요한 거고,  업무는 저래 저래서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라고 했다.


으으으. 벽이랑 대화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에게 ‘여유’ 있는 삶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것인지를 알려주려고 했다.


해가 좋은 날은 하늘   보고,  산책을 하며 달이 얼마나 똥그란지 생각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함께  때는 회사생각은 접어두고 그 순간을 즐기는 그런 원초적이고 단순한 여유.


하지만 그는 내가 ‘여유’라고 말하는 것들이 ‘사치’로 느껴지는 듯했다. 여유를 말하는 나를 세상물정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로 취급했다. 내가 세상물정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라니. 그는 내가 좋은 환경에서 이쁨만 받고 자라서, 그가 겪은 혹독한 세상을 경험하지 못해 ‘철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생각에도 아직  그가 겪은 만큼의 혹독한 세상을 마주한  같진 않다. 그런 세상을 만나는게 어디 쉬운일인가 그렇지만  그런 세상을 마주할 것에 대비해 나의 ‘건강함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혹독한 세상이 나에게 달려올  꺼져라, 그딴 세상 관심 없어 라고 말할 ‘건강함’.


이것 봐, 난 철 없지 않아.


결론은, 어려웠다. 그를 건강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기대와 실망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 있는 그는 내가 그를 인정하지 않고, 답답해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이건.. 어떻게  수가 없었다. 지금의 그가 좋으니, 인정해 줄게.라고 말하기에는 그는 아픈 사람이었다 


그가 나를 만나기 7 , 7년간 연애했었던 과거 이야기를 해준적이 있었다. 대학생~군복무 기간 동안 만났던 대학교 동기였다고 했다. 그가 했던 연애는 ‘정상적인 연애 아니었다. 서로가 뭐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고, 각자 고향에 내려가있는 여름, 겨울 방학기간 동안엔 그는 핸드폰을 끄고 살았다고 한다.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지금처럼 핸드폰을  수도 없던  시절, 2년이 넘는 군복무 기간 동안은 ,  봐도 비디오였다. 현애인의  연애이기 때문  자세하게 묻지 않았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방치하고 방관하는 연애였다. 그런 연애가 나름 괜찮았다고 말하는 현재의 그를 ‘인정 수가 없었다.


이렇게 듣도 보도 못한 연애를 했다는 그는, 서로를 아껴주고, 아낌 받는 연애를 어색해하고 어려워했다. 이런 그를 위해 난 그가 하는 말과 행동 작은 것에 감사하고 감동받을 수 있는 ‘쉬운’ 사람이 되려고 했다.


나와 데이트 약속을 못 지킨 날, 야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 내 집 앞 카페에서 반쪽짜리 데이트를 하게 되어도, 또는 썸 타던 시절에 내가 좋아했던 웃음을 지어주는 사소한 것에 ‘고맙다’라고 해주려고 ‘노력’ 했다.


이런 노력은 힘겨웠다. 만날 땐 마냥 좋지만 헤어지고 돌아서면 헛헛했다.


그와 만나는 내내 반복이었다.


이런 고군분투하는 연애를 시작한 지 3개월 반쯤 되었을 때, 그가 팀장으로 승진했다.


당연히 승진한 것은 축하할 일이었지만.  적당히 이기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직원을 통해 그의 승진 소식을 듣자마자 들었던 생각은 ‘젠장,  열심히 하게 생겼네였다.

지금까지는 일하면서 뼈를 갈았다면, 이제 그는 영혼을 불태울  같았다.


난 또.. 외롭겠구나.

또 얼마나 기약없는 기다림을 하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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