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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온Haon Apr 15. 2023

그가 결심했다. 나를 버리기로

7. 나를 위해서라고..? 너를 위해서가 아니고..?

(6편에 이어서)


그가 헤어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내 마음속에 있던 말인데..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아 꺼내보지도 못했던 말인데. 그가 내뱉어 버렸다. 인정할 수 없었다. 나조차도 안 하고 있는 말을 그가 하다니.


홧김에 얘기한 거겠지. 달래줘야겠다. 그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제사음식을 만드는 중이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가 꽤나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이가 없었다. 아니 헤어지자는 말을 던져놓고 전을 부치고 앉아있는 게 가능한가. 머리가 복잡할 땐 단순작업이 최고야~ 였던가.


일단 알겠다고 했다. 난 통화를 하고 싶으니, 언제 받을 수 있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그는 서울 올라가는 막차를 예매해 놨으니 버스에 오르면 받을 수 있겠다고 했다. 막차까지 5시간 정도가 남았었다.


그런데, 전화로 얘기하기엔 주제가 너무 무겁지 않나? 얼굴을 봐야 하지 않을까? 헤어질 땐 헤어지더라도 최선을 다해야지 후회가 없을 거야.라고 합리화하면서 그의 고향으로 향하는 제일 빠른 시간대에 고속버스를 예매했다.

약 2시간 30분이 걸리는 곳이었다. 도착하면 막차시간까지 2시간 정도가 남네. 터미널에서 기다리면 되겠다.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흐를 것 같았던 버스 안에서의 시간은 새삼 금방 지나갔다. 지난번 그와 함께 여행을 왔었던 그의 고향 터미널은 낯설면서 익숙했다. 매점에서 군것질할 주전부리도 사서 얌전히 앉아서 기다렸다. 생각보다 차분했다. 이 또한 나의 최선으로 기억되겠지.


시간이 되자 터미널에 그가 나타났다.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그렇겠지. 기분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우물쭈물하고 있다가 버스에 올라탔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하다가. 내가 먼저 말을 했다.


많이 힘드냐고. 내가 그를 힘들게 한 거냐고. 그래서 이제 내가 미워졌냐고.


그는 너무 힘이 든다고 했다. 그 어려움을 돌파할 에너지도 자신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고 했다. 나를 위해 놓아주겠다고. 내가 그의 옆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견디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울었다. 그날 내내 울었다. 난 울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에 지난날처럼 지나가기를, 해결되기를 바랐다. 난 그에게 서운하다, 힘들다고 많이 말했던 게 미안했다고. 그러지 않기 위해 내가 노력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하면서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당신이 힘들면 데이트를 무리해서 하지 않아도 된다. 주말에 푹 쉴 수 있도록 해주겠다. 등등. 그냥 앞뒤 없이 질러댔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정말 독하게 먹은 듯했다.


막차를 타고 올라온 탓에 시간은 이미 새벽을 지나고 있었다. 다음날 출근이었기 때문에 그가 일단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래.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해.


다음날부터 그에게 ‘굿모닝~’ 카톡이 오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시간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나와 이야기하고 싶으면 언지를 달라고 했다. 그게 언제가 되던 이야기를 하자고. 그가 알겠다고 했고. 일주일이 지났다. 딱 일주일이 되던 날 새벽에 그에게 장문의 카톡이 왔다.


참으로 구구절절했다.


연락하기까지 많이 고민했다고. 그러나 자신의 마음은 이미 굳게 닫혔고, 내가 그만 힘들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매일 외롭게 해서 미안했다고. 자신에게 늘 힘이 되어주려고 했던 사람에게 이렇게 끝을 말하게 돼서 너무 미안하다고. 생각보다 자신이 더 많이 지쳤고, 힘들다고.


 카톡을  열어봤을 .  덤덤했다. 오히려  드디어 결론이 났구나.라는 생각에 후련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별을 카톡으로?

우리 내일 사무실에서  텐데?

그가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것까지 어려워할 줄은 몰랐다. 더불어 그가 이렇게까지 어리석을 줄은 몰랐다.


바로 답장을 했다. 그가 보냈던 것보다 아주 짧게.


알겠다. 대신 우리가 시작했던 날처럼 얼굴을 보고 마무리를 짓자고. 이건 당신이 나에게 해줘야 하는 거라고. 내일 나는 정시퇴근을 하겠으니 당신도 시간을 맞추라고.


그가 알겠다고 했다.


다음날 난 회사에서 여느 때처럼 일을 했다.

나에게 일방적인 이별을 말한 사람이 코앞에 있는데도 그저 덤덤하게 일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신기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이런  통수를 바라볼  있는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그도 언제나 그렇듯이 일에 헐떡이고 있었다.


그런데 4시경에 그에게 카톡이 왔다. 오늘 정시 퇴근이 어렵겠다고. 내일 볼 수 있겠냐고.


하하. 맞다 그는 이런 사람이었지.

우린 이별하기도 힘들구나. 일하느라 바빠서.


다음날이 되었다. 왠지 오늘도 그는 퇴근을 못할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그에게 카톡이 왔다. 오늘도 늦을  같은데 어떡하냐고.  그럴  같아서 오늘은 기다리려고 한다. 끝나고 연락 줘라라고 하니 2시간 정도 있다가 퇴근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때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모든 식당, 카페가 9시에 문을 닫는 때였다.  곳이 없었다. 당연히 그는  것까지 생각하지 못했겠지.


 지하철역에서 보자고 했다.

내가  그를 기다리던 그곳. 그곳에 그가 있었다.


이미 우린 이별을 하기로 결정했고, 나의 노력은 그의 고향에서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끝을 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었기 때문에, 그를 잡을 이유도, 마음도 없었다. 이별을 하는 순간에서도 뒷전이 됐던 나는 그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별을 말하는 그가 울었다. 그에 대한 마음이 정리가 됐다고 생각했던 나도 같이 울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그날 우리가 어떤 대화를 어떤 순서대로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그동안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내가 그에게 해주었던 모든 것에 대해 진심으로 맙다고 했다.

이런 그에게 나는 아니라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모든 순간이 고생스럽지 않았고 좋았던 기억이  이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아니, 해줬다. 그가 마음의 짐을 덜길 바랬기 때문에.


나와 연애하는 것이 그에게 이렇게 사치스러운 일이 될 줄 몰랐다며 엉엉 우는 그를 보는 것은 꽤나 마음이 아팠다.


사치라니.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사치라니. 


그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이런 마음을 가진 채로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걱정이 되었다.


헤어지는 마당에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한심스러워 그에게 괜히 푸념처럼 말했다.


당신의 인생에 뛰어들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는데 쉽지 않았다고. 당신이 마음을 열어주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이미 그의 인생에 들어와 있었다고, 자기가 어떻게 그것을 모르겠냐며. 그걸 모르면 자기는 정말 사람이 아니라며 나의 노력을 위로해 주는 말들을 해주었다.


그랬나. 내가 그의 인생에 들어갔었나.

그래서 힘들었었나.

그랬나 보다.

그럼 지금은 그의 인생에서 나올 때구나.


내 모든 감정과 마음이 추슬러졌을 때,

정신없이 울고 있던 그가 잘 새겨들을 수 있을 때,

그에게 마지막 당부를 했다.


 당신 스스로를 돌보라고.


이젠 내가 없으니, 밥을 챙겨줄 사람도, 퇴근을 일찍 하라고 보채는 사람도 없을 테니, 당신 스스로 챙기라고. 그래서  안녕하라고.


그는 다시 울었다. 정말 많이 울었다.

마치 헤어지기 싫은데 헤어지는 것처럼 엉엉 울었다.

달래서 다시 자신을 품어달라고 하는 것 같이.

이미 최선을 다했던 나는 울고 있는 그를 그냥 바라봤다.


이제 그만. 나를 위해 헤어지자고 말하는 당신이 그렇게 우는  반칙이야.

내가  해야   같잖아.  다했는데.


그렇게 우린 헤어졌다.


이전 06화 우리는 지쳐갔다. 그럼에도 난 그와 함께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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