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그도 나와 함께이고 싶었을까
<남녀의 차이>
인터넷이었나, sns였나. 싸움에 대한 남녀의 차이를 정리해 놓은 글을 본 적이 있다.
여자는 아무리 싸우고, 생각이 다르고, 항상 부딪혀도 뒤돌아서면 또 보고 싶은 것. 그게 사랑이다.
남자는 항상 싸우고, 생각이 다르고, 자주 부딪히는 게 반복되는데, 앞으로도 사랑이 되겠는가
남녀의 차이보다는 마음의 차이인 것 같다. 상대방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마음 깊이 수용하고, 상대방의 힘듦을 공감해 주는 것. 그래서 상대의 힘듦을 덜기 위해 같이 머리를 맞댈 의지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이지 않을까.
그때에 난 ’ 여자’의 마음에 가까웠다. 우리의 힘든 점을 나누는 것은 그와 오래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반면에 그는 ‘남자’의 마음이었다.
내가 힘듦을 나누면 한숨 푹..
스스로 만든 전쟁터에서 나름의 고군분투를 해온 그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내가 죄인 된 것 같았다.
물론 과거의 연애를 떠올려 보면 상대방이 나에게 힘듦을 이야기했을 때 그게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자기가 좋다고 해서 사귀기 시작했으면 좀 기다려주지, 내 마음이 지금 자기 마음과 같지가 않은데. 왜 이렇게 보채는 걸까’ 하는 토라진 마음이 들어 그와 갈등 한 번에 바로 이별을 고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힘듦을 말하는 나를 보며 그가 과거의 나의 마음일까 봐, 꾹꾹 눌러 담아서, 열 번 중 한 번 하려고 노력했다.
우리의 연애를 아는 주변사람에게서 ‘너 너무 착하다. 나 같았으면 이미 화내고 짜증 냈을 거야. 진짜 잘 참아준다’라는 말들을 들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너 바보니?’ 같았다.
착하다는 말을 참 오랜만에도 들어봤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철저한 ‘을’의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을 들킨 것만 같았다.
(5편에 이어서)
팀장으로 승진한 그는 나와 더 멀어졌다.
전화보다는 카톡을 좋아했던 그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눈을 감는 순간까지 그가 생존(?)해 있음을 카톡으로 알려주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오갔던 연애 전 우리의 카톡방에서는 더는 '우리'의 이야기는 없었다.
굿모닝
굿모닝~
회사도착
빨리 갔넹 오늘도 화이팅 해요~
오늘도 바쁠 것 같아
그래도 점심은 꼭 먹어요. 오늘 맛있는 거 나온데ㅎㅎ
입맛이 없어서 점심은 패스
그럼 카페에서 샌드위치라도 사 먹어요..
(3시간 후) 정신이 너무 없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어
오늘도 늦어요?
응 칼퇴불가
몇 시까지 하려고?
몰라 근데 밤새도 다 못할 거 같아
알겠어.. 그래도 지하철 막차는 타고 가요. 버스는 오래 걸리잖아.
응응
어떻게 보면 보통의 연인들과 같아 보일 수는 있다.
아침인사, 점심인사, 퇴근은 언제 하는지, 집에 언제 도착하는지 등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긴 하니까.
어떻게 매일매일이 특별하겠는가.
하지만, 같은 일상 속이라도 서로의 안부, 서로의 기분에 대한 것이 안녕한지는 궁금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나누었던 대화 안에는 단 한 줄도 '우리'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그는 그의 숨 막히게 돌아가는 쳇바퀴 같은 하루를 불쌍히 여겨달라, 이렇게 궁지에 몰려가는 자신에게 무엇을 더 요구하지 말아 달라 내 입을 틀어막는 듯했다. 난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에서 지쳐갔다.
이렇게 서로 지쳐가는 중이었다.
평일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주말에 잠깐 만나서 밥을 먹고 간단히 커피를 마실 때, 나는 이미 마음이 상한 채로 그의 앞에 앉아있었다. 그는 무엇이 문제냐고 묻고, 그 주 평일동안 그에게 느꼈던 서운함을 이야기하면, 그는 그게 최선이었음을 이야기했다. 그가 말하는 최선이란, 바쁜 와중에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꼬박꼬박 카톡을 남겨줬다고 했다.
그런가..?
아…. 그렇다면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게 내 성에 안 차는 거구나.
이와 같은 생각이 들었을 땐 그의 최선을 몰라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진 않았다.
그저 내가 그에게 바라는 것을 많이 내려놓아야 하는구나 라는 슬픈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바뀌는 게 아니라 내가 바뀌어야지
우리의 관계는 편안해지는 거구나.
라는 슬픈 생각..
그가 팀장이 되고 5개월 정도가 흘렀을 때, 그는 회사에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점점 더 아파졌다.
회사에서는 팀장이 된 그에게 기대하는 바가 계속해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기대를 충족하려고 애를 쓰지만 애초에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한 사람이 해낼 수 없는 미션들을 내려주는데 그는 그걸 오롯이 감당하려고 하니,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던 중 그는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는 열렬히 지지했다. 그가 제발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길 바랐다. 인정받을 가치가 없는 곳에서 그를 그만 태웠으면 했다. 하지만 상사에게 퇴사 이야기를 할 만큼 강단과 용기가 없던 그는 끝끝내 말하지 못했다. ‘이번 달만 지나면, 이 업무만 마무리되면, 숨을 좀 돌릴 수 있을 것 같아’ 라며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현재의 힘듦을 합리화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점점 망가져가고 있었다.
언젠가 그의 고향에서 제사가 있던 주말이었다. 일요일 저녁이 제사였고, 원래 데이트를 하기로 했던 토요일에 그는 자발적으로 출근을 했었다. 몇 시간 정도 업무를 보다가 나를 잠깐 만나고, 저녁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그날 아침부터 그는 너무 피곤해했다. 그는 나에게 ‘너무 피곤해서 그러니, 오늘은 돌아다니는 건 힘들겠고, 이따 뭐 할지 생각 좀 해달라’고 했다.
파스스... 김이 새 버렸다.
누가 들으면 언제는 대단한 데이트를 했다고 생각할 만 말이었다.
밥 먹을 때 빼고는 카페에서도 눈을 반쯤 감고 있으면서 뭘....
이 기분으로는 그를 봐도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심 쓰는 척, 그에게 퇴근하면 집에서 쉬었다가 고향에 내려가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단숨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나한테 약간 미안한지, 나의 거짓 선심 이후로 카톡에 성의를 담아 답장을 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좀 더 그릇이 크고 성숙했다면 이러는 그를 그저 측은해하고, 품어줬겠지만 그렇지 못했기에. 나의 거짓 선심을 덥석 무는 그에게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난 그를 무시했다.
내 화가 풀릴 때까지.
나 생각보다 기분이 좋지 않아.
너한테 좀 화났거든.
눈치가 빠른 그는 이걸 알고는, 나를 다그쳤다.
기분이 왜 안 좋냐고, 다 느껴진다면서.
그러다가 그가
이제는 나도 힘드네요. 자신이 없어요. 이 상황은 계속 반복될 것 같아. 라고 했다.
그가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었지만, 그날 저렇게 말하는 것이 나에겐 ‘헤어지자’라고 들렸다.
그가 결심한 것 같았다.
나를 놓기로.
그리고 그 결심은 그날이 아닌 그전부터 해왔던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