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내연애? 그냥 연애의 시작이라고 하자
<사내연애>
‘회사 안에서 사원 사이에 이루어지는 연애’
사내연애를 담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다니는 회사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겠다.
나와 그가 다니던 회사는 직원은 30명 언저리이고 최고관리자인 관장, 최고중간관리자인 부장, 중간관리자에 과장, 팀장, 대리, 사원으로 구성되었다. 근무인원은 적지만 각자 감당해야 하는 몫은 많은 편이었다.
뭐,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윗사람들은 왜 그렇게 욕심이 많은지. 그들은 대의를 위한 건강한 욕심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직원들은 그 욕심에 맞장구쳐주다가 고꾸라지기 십상이었다.
맞장구 쳐주지 말라고? 바지사장 같은 관장을 제외하면 부장이 최고권력자인데 그 사람 입에서 나오는 비인권적인 말들을 듣고 흘릴 수 있는 사람은 가능할 듯?(차후 부장은 직원들의 단체 행동으로 규탄을 당했고, 현재는 180도에서 약 40도 모자란 정도로 변했다.)
나는 입사하자마자 부장이라는 사람에게 이유 모르게 찍혔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입사면접당시 부장과 팀장 간에 의견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부장마음에 들지 않은 직원이었다. 근데 상관없었다. ‘부장이 나를 싫어해? 어? 나도 부장 싫은데.. 그럼 이렇게 된 거 서로 사족 빼고 일만 하자’ 주의였다. 자칭 최고권력자가 나를 싫어한다고 해서 난 주눅 들지 않았다. 나에겐 저런 편견 없이 믿어주는 팀장, 대리, 동료 직원들이 있으니까. 그들만이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나 스스로 정했다. 부장 같은 사람은 뭐.. 왈왈.
나와 연애를 시작한 그도 그래 보였다. 아니 나보다 한수위 같았다. 나보단 직책이 높았기 때문에 부장과 접점이 더 있었고, 부장은 사람 좋아 보이는 그를 종종 무시하고, 비인권적으로 대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또 그 소년스런 웃음을 통해 딱딱한 상황을 어물쩍 모면하는 ‘처세술’을 보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론 ‘오와.. 성격 무지 좋네’라고 생각했다. 겉보다 속이 더 강해 보이는 그가 좋았다.
나와 그가 사내연애를 시작한 ‘우리의’ 회사는 이런 환경과 이런 상사가 존재했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각자의 처세술이 필요한 곳이었다.
(2편에 이어서)
sns를 하다가 자존감에 관련된 글을 본 적이 있다. 자존감이 높아지는 순간에 대한 글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생겼을 때, 원하던 바를 성취했을 때 등등이 있었는데 1위가 바로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 후 성공했을 때’였다. 맞았다. 고백 성공 후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자존감도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내 연애사에 영웅담이 생긴 느낌이랄까. 아직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참.. 대단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싶다. 나중에 들어보니, 여동생도 지금의 남자친구에게 자신이 먼저 고백했다는 걸 알게 됐다. 너도 참.. 내가 널 닮은 거니, 네가 날 닮은 거니.
살면서 지금까지 그렇게 원하던 것도 없었던 것 같고, 설사 있더라도 그걸 가지지 못할 까봐 불안해하지도 않았었다. 갖게 되면 갖고 아니면 말고.
이런 내가 그를 가지고 싶은데 놓칠까 봐 불안하다가, 내 사람이 됐다는 생각만 해도 웃음이 지어졌다.
야근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퇴근시간을 맞춰 퇴근 후 데이트를 하게 됐다. 갑자기 찐한 사적인 관계가 되어서 처음에 단둘이 있는 게 어색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회사이야기, 부장이야기를 하면서 어색함을 달래고단둘이 있는 시간을 즐기려고 했다.
처음 단둘이 셀카를 찍을 때는 얼마나 낯부끄럽던지.
데이트 후 집에 돌아가서도 자기 전까지 통화를 하고, 정규 시간보다 50분 정도 일찍 출근하는 그를 따라 출근해 하루를 일찍 시작하기도 했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고통은 컸지만, 지하철에서 만나 같이 출근하며 회사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며 나누는 시시콜콜한 대화는 얼마나 ‘꿀’ 같던지. 하루의 기분을 결정짓는 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사무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가면장착.
그와 난 생각보다 잘하는 편이었다. 워낙 사적으로도 친한 관계였기 때문에 그 전과 같이 서로를 대했다.
난 그를 ‘그림의 떡’이라고 표현했었다. 내 사람인데, 내 사람이 아닌 척을 해야 하는 상황에 딱이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이 이렇다,라고 그에게 얘기해 줬을 때 그는 ‘으이구 못 말려’라고 했다. 뭐, 당연한 거 아닌가. 눈에 안보이기라도 하면 모를까 뻔히 보이는데, 뻔히 목소리가 들리는데 귀가 쫑긋 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했다. 그냥 사내연애의 안 좋은 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7년만에 연애를 하는 ‘그’와
내가 먼저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한 경험이 없었던 ‘나’
이런 ‘우리’의 연애는 20대의 연애같이 ‘풋풋’하다가도 원래 알고지냈던 사이에서 관계를 시작해서인지 5년차 연인처럼 ‘편안’했다.
아무말 없이 손만 잡고 걸어도 가슴이 저릿했고, 나란히 앉아 그의 어깨에 기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날아오는 그의 냄새를 맡을 때도 새삼스럽게 좋았다.
둘이 함께하고 맞았던 각자의 첫 생일을 요란스럽지 않게 기념했고, 그가 좋아한다던 땡땡이 무늬 원피스를 입고 외곽 카페로 나들이를 가고, 연인이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던 속설이 있는 덕수궁 돌담길을 그 따위 속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듯이 천진난만하게 걷기도 했고, 함께 찍은 사진을 카톡방 배경으로 바꿔 기분을 내기도 했다.
여느 연인들처럼 그랬다.
그렇게 연애의 시작을 즐기고 있던 나에게 언젠가부터 가슴이 답답한 순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거 내가 이상한가? 그냥 넘어가면 되는 건가?
하는 그런 답답한 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