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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온Haon Apr 13. 2023

나는 홀랑넘어갔다. 그의 소년스런 웃음과 어른스런마음에

1. 이름을 개명할까, 최콩깍지로

회사를 다닌 지 1년 6개월 정도가 되었을 때, 불쑥 마음에 들어오는 사람이 생겼다. 같은 사무실 직원이었다. 같은 해 같은 달에 입사했으나 직급이 달라서인지, 팀이 달라서인지 꽤 가까운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거의 왕래가 없었다.


그저 그는 나에게 ‘대리님이었고 나는 그에게 ‘선생님(평사원)’이었다. 사무실 분위기가 워낙 좋아서인지, 직원들끼리 퇴근  저녁을 먹고  한잔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고, 나와 사적으로 전혀 얽히지 않을  같던  사람과도  번의 사적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여러 명이서.


그는 언제나 유쾌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줄 알았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그도 즐기는 듯 했다. 사실 내 기준엔 그가 하는 말 자체는 그냥.. 썩 재밌지 않았으나, 그가 웃는 모습을 보며 따라 웃었던 것 같다. 그 세상 무해한 소년스러운 웃음을 따라서 말이다. 이런 소년스런 웃음을 하고도 나보다 5살이나 많았던 그는 꽤 어른 같은 면도 있었다. 남자어른의 느낌이랄까?


나의 이상형인 우리 아빠처럼 지방에서 살다가 취직을 서울로 하면서, 자취를 한 지 8년 차라고 했다. 대학생 때부터 학비, 생활비 모두를 알바를 하면서 마련했다는 말을 들으며 생활력이 강해 보였고, 현재 월세가 아닌 전세에 살면서 돈을 착착 잘 모으고 있다는 말에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 보였고, 팀원들을 잘 챙기는 모습에서 타인을 위하는 마음을 알 수 있었고, 성격이 아주 뭣 같은 팀장을 군소리 없이 따르는 모습을 보며 그가 가진 유연함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 그에 대해 워낙에 아무 생각? 편견? 이 없던지라 새롭게 알게 되는 모습들이 그냥… 좋게 보였고, 그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내 이상형인 아빠의 모습과 더 닮은 구석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궁금증.


그때부턴 직원들끼리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게 된다면 난 꼭 그를 불렀다.

“대리님, 밥 먹고 00으로 오세요. 커피 마셔요 우리”

“대리님, 퇴근하고 뭐 하세요? 직원들끼리 밥 먹기로 했어요 00으로 오세요. 꼭이요”

그렇게 공적인 공간에서 사적으로 마음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주 슬그머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가 나에게 스며든 것이.


나와 잘 맞는 직원들하고는 종종 주말에도 모이곤 했었다. 한강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직장상사 뒷담화, 회사 뒷담화를 하곤 했다. 회사 험담은 왜 그렇게 해도 해도 재밌는지.

이런 주말모임에 그를 부르기 시작했다. 언젠가 들었던 얘기였는데, 그는 주말엔 밥도 잘 안 먹고 그저 죽은 사람처럼 누워 쉰다고 했었다. 회사에서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충전을 해야 된다나 뭐라나.


처음 들었을 땐 ‘엥? 주말에도 나가 놀게 생겨가지고 의외네’라고 생각했는데, 관심이 생기면서부터는 그를 불러내 밥도 먹이고 이런 좋은 햇볕과 바람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오지랖이 생겼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약속도 없는데 집에서 뭐 하느냐 나와서 놀자’였지만…


집에서 얌전히 쉬고 있던 그는 내가 불러내는 것을 썩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의 루틴대로 쉬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나의 ‘거절은 거절이다’의 마음을 느꼈는지 ‘내가 져준다’라는 마음으로 곧잘 모임에 나왔다.


매번 나는 부르고.. 매번 그는 튕기다가 등장하고..

그런데 나오기 싫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는 조잘조잘 이야기도 잘했고, 잘 웃었다. 난 또 그를 따라 웃었다. 그렇게 사적인 공간에서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를 향한 나의 마음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불러내기 시작하면서 그와 사적인 카톡을 많이 주고받았다. 난 아무리 사적으로 친하다고 해서 모임에 초대하는 목적 외적으로는 ‘대리’였던 그에게 먼저 사적인 카톡을 하진 못했으나, 그는 상관없다는 듯 문득 배고프다는 둥, 피곤하다는 둥 쓸데없는 카톡을 보내왔다. 그렇지만 그의 성격상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누구한테나 으레 할 수 있는 말들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회가 될때마다 그를 향해 많이 표현했다. 그가 뒤돌아서 생각해보면 응?뭐였지? 할 정도로.(물론 사무실이 아닌 사적인 모임에서)


그러다가 문득 불안해졌다. 내가 바라보는 그의 좋은 면들을 누가 또 알아챈 건 아닐까, 누군가 나와 같은 마음인 사람이 또 있다면? 그때부턴 그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할 때 따라 웃는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방금 그건 진짜 재미없었는데 왜 저렇게 웃어주지.. 왜지..? 하면서.


그를 향한 설렘과 더불어 불안이 시작될 때쯤 의정부에 살고 있는 직원집에 놀러 갔었다. 가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고, 그에게 말을 해야겠다고. 나랑 가장 친했던 직원이라 그런지, 이미 내 마음에 대해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럼 그도 느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움직이자. 가보자.

차이면 퇴사하지 뭐.

주말엔 주로 탁 트인 한강공원에서 모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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