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쥐구멍에 볕 든 날의 일기
브런치에 올리는 첫 글. 캐나다의 한 남자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10년 전 썼던 일기로 저의 소개를 대신하려 합니다.
April 26, 2013
이민 온 지 14년 만에 드디어 풀타임 정규직 교사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그것도 나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꽤 근사한 사립 남자 고등학교에서 말입니다. 서류 전형에 이은 무려 세 차례의 피 말리는 인터뷰와 레퍼런스 체크, 그리고 초조하고 지루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오늘 잡오퍼를 받았습니다.
서른이 훨씬 넘은 나이에 영어도 잘 못하면서 주제파악도 못하고, 감히 캐나다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를 하겠다고 덤비는 게 너무 무모한 짓은 아닌지, 정말 수도 없이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꿈이란 생각은 했지만 저는 정말 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도전도 안 해보고 포기했다는 후회는 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덤비게 되었죠. "진짜 딱 한 번만 도전해 보자. 그리고 안되면 깨끗하게 포기하자"라는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딱 한 번만 더 해보자, 한 번만 더... 하다 보니 지금까지 이렇게 미련스럽게 꾸역꾸역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사범대 응시 첫해, 캐나다 교육에 대한 무지와 형편없는 영어실력 때문에 인터뷰에서 보기 좋게 떨어지고 재수를 하면서 개인 과외를 하며 겨우 연명하던 시절, "아, 그냥 이렇게 외국에서 변변한 직장도 없이, 나이 5-60 되도록 버스 타고 과외하러 다니면서 혼자 근근이 살다가 내 인생 종 치는 건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에 잠 못 이룬 날도 참 많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만 나이 서른여섯에 겨우 사범대 나와서 지난 6년간 파트타임 계약직이나 풀타임이라 해도 시간강사 같은 비정규직만 전전하다가 드디어 이번에 이렇게 큰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직 잘 믿기지가 않습니다. 교사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요즘, 그렇게 좋은 학교에서 뭐가 아쉬워서 절 뽑았을까요? 석사는 고사하고 스페셜리스트 과정도 이수하지 못한 평범한 학력에, 별로 내세울만한 경력도 하나 없고, 더구나 영어도 남들처럼 잘하지 못하는 소수민족 이민자 출신의 저를 말입니다.
집안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진 거 하나 없이 나이하고 빚만(학자금 융자) 많은 저를 기꺼이 선택해 준, 착하고 아름다운 아내를 만나 가정도 꾸렸고, 이제 곧 우리 아이 첫돌도 다가오는데, 이렇게 좋은 일자리까지 얻게 되니 정말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그동안 직장이나 돈벌이에 대해서 바가지 한번 안 긁고, 오히려 남편 기 살려주느라 수고했던 아내가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제야 겨우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조금은 체면을 세울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오늘 오전 중에 이메일로 연락받고 너무 기쁜 나머지 평소에 친하게 지내고 이번일에도 많이 응원해 준 고마운 동료교사 여섯 명에게 기분 좋게 커피 한잔씩 쐈습니다. 서양 친구들이라서 그런지 제가 산다고 하니까 처음엔 좀 뻘쭘해하더니 진심이란 걸 알고서는 라테니 모카니 하면서 비싼 것들만 시키더군요.
이번 주말엔 가족들과 장인장모님도 모시고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어깨에 힘도 팍팍 주면서 한턱 크게 내야겠습니다. 에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