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이 무척 게으른데 반해 사는 모습은 나름 부지런합니다 했습니다. 그 부조화로 인해 지금껏 살면서 늘 크고 작은 내적 갈등을 겪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던 지난 1월, 언제나 모든 면에서 좀 더 발전하고 나아지기를 바랐던 예년과는 달리, 올해는 조금 망가져서 그냥저냥 대충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지금 중간 점검을 해보니…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아주 게으르게 잘 살고 있는 듯합니다. 하하. 아직도 가끔 예전의 나쁜(?) 버릇을 못 버리고 자꾸 계획을 세우려 한다거나 또는 ‘아,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하는 쓸데없는 걱정에 마음이 어지러워질 때도 있지만, 게을러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이젠 두 번 다시 스스로 다그치고 쪼아댔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하하.
인류 역사상 다른 예를 찾아볼 수 없다는 한국의 기적적인 성장기에 태어나고 자라서 그럴까요? 어릴 때부터 뭔가 공부를 하거나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시간을 잘 보낸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 인생을 낭비한 것이라고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창 시절, 단 한 번도 주말이나 방학을 잘 보냈다는 느낌을 가져 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목표했던 공부의 양을 채우지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면서 황금 같은 방학을 다 보내버렸다며 자책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뭐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이 오십이 넘은 아직도 그 관성이 남아서 이렇게 잠시라도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한 것 같은 불편함에 시달리는 것을 이제는 그만하고 싶습니다.
25년 전, 처음 캐나다에 이민 와서 지인들을 따라 캠핑을 간 적이 있는데 두 번 놀랐습니다. 처음엔 너무나 한적하고 그림 같은 호숫가에 하늘이 다 가리어질 만큼 우거진 숲 속 캠프사이트의 아름다움에 놀랐고, 그리고 다음엔 그런 캠핑에 아무런 정해진 프로그램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캠핑장에 와서 이렇게 못 놀다니!! 그냥 삼삼 오오 모여서 산책할 사람은 산책하고, 책 읽을 사람은 책 읽고(캠핑까지 와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문화 충격을 받았죠. 하하.), 자전거 타고 물놀이할 사람들은 또 그렇게 노는데… 반나절 정도 지나고 나니 마음이 슬슬 불편해졌습니다. 자고로 한국 사람이라면 캠핑을 가도 조를 나눠서 조장과 부조장을 선출한 뒤, 3박 4일 전체 계획표를 분단위로 빽빽하게 짜서, 시간 낭비 없이 일사불란하게 놀아도 같이 놀고, 먹어도 같이 먹고, 술을 마셔도 게임을 하면서 다 같이 마셔야 하는데… 이건 뭐 그냥 지들끼리 알아서 놀고먹다가 졸리면 각자 텐트에 들어가 자라는데… 저는 그런 캠핑에 도저히 적응이 안 되더군요. 그때 속으로 캐나다 사는 사람들 참 못 논다고 생각했었고 나한테 맡겨 주면 진짜 끝내주게 계획표를 짜서 놀텐데 하는 생각에 아쉬워했었습니다. 하하.
지난 2주간의 봄방학이 이제 거의 다 끝나가고 있습니다. 행복했고, 게을렀고, 맛있었고 신났었습니다. 특히 지난 며칠간 매일 즐겼던 낮잠이 가장 좋았습니다. 신 선생만의 낮잠을 위한 의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점심식사 후 나른한 오후, 목 늘어난 티셔츠에 고무줄 반바지 하나만 입고, 침대에 쿠션과 베개를 잔뜩 쌓아 올리고 거기에 기대어 책을 읽다 보면 어김없이 졸음이 쏟아집니다. 아, 아직 아닙니다. 같은 줄을 반복해서 읽더라도 조금 더 버텨야 합니다. 그러다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책을 내려놓고, 그대로 몸을 옆으로 돌려 엎드리며 스르륵 잠이 들면 되는데, 그 느낌이 정말 말도 못 하게 좋습니다. 특히 잠에 빠지기 직전,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그 가벼운 실랑이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아, 갑자기 캠핑 가서 숲 속 나무 그늘에서 책 읽다가 낮잠 한숨 자고 싶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