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내는 제가 친구가 없는 걸 걱정합니다. 그래서 괜히 저도 덩달아 걱정이 됩니다. 하하! 하지만 다행히 혼자 매우 잘 놉니다. 직업이 선생인지라, 혈기 넘치는 남자 고등학교에서 하루종일 기 빨리고 오면, 사실 더 이상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서 혼자 뭐 하냐고요? 보통 요리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달리기 하면서 사진도 찍으면서 놉니다. 최근에는 글 끄적이는데 부쩍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2월에 멋모르고 ’브런치‘를 시작한 이후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뭘 쓰냐고요? 제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스스로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뭐 어쩌면 그런 지도 모르죠.. 하하!) 잘 모르면서 섣불리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아서 다른 분야는 감히 손대지 않고, 제가 가장 잘 아는 제 이야기만 씁니다.
책을 낸다거나 작가가 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깜냥도 안되고 글쓰기를 그 정도로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조금씩 써 모아서,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남기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거창하게 자서전이라고 할 것은 아니고, 그저 제 아이들에게,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미래에 있을 수도 있는 손주들에게 기억되고 싶을 뿐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도 아버지의 부재를 느낀 적은 거의 없습니다. 마치 원래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말입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주 희미한 몇몇 기억의 조각들만 있을 뿐인데, 이제는 그마저도 과연 실제로 있었던 추억인지, 아니면 다른 기억들과 뒤섞인 제 상상의 산물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도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보니 문득문득 아버지가 궁금해집니다. 물론 가족사진이 남아있으니 사진 속 아버지의 모습은 기억합니다만, 말투도 목소리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 친가와의 왕래마저 끊어져서 아버지에 관해서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가 거의 유일한데,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가 45년 전에 죽은 남편에 대해 기억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실상 이제 제가 아버지에 대해서 더 알 길은 없어진 셈이죠. 어머니가 젊으셨을 때 좀 더 많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어느덧 만 11살이 된 큰아이 하고는 이제 제법 대화다운 대화가 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자, 앉아봐. 지금부터 아빠 살아온 얘기 해줄게. 라떼는 말이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저처럼 나중에라도 문득 아빠의 인생이 궁금해질 때, 아빠가 직접 쓴 이야기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안티 소셜은 아니지만 제가 이 세상을 떠난 후, 제가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들에게는 꾸며지지 않고, 왜곡되지 않은 진솔한 아빠의 이야기를 남겨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씁니다. 아이들이 한글을 잘 모르니 영어로도 남기고 싶은데… 그건 진도가 영 더디네요. 그래도 뭐 앞으로 한 20년 쓰다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요?
사진은 밴쿠버의 아름다운 마운틴 뷰 공동묘지입니다. 이곳을 달릴 때마다 여기 잠들어 계신 분들의 안식을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