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멋진 K-엄마들
올해로 유학기간 포함해서 캐나다살이 25년째입니다. 스스로 원해서 나왔고, 이곳이 좋아서 계속 살고는 있지만, 아쉬운 점이 없을 리 없겠죠. 외국 살이 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가족이 가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만 해도 이 넓은 캐나다 하늘 아래 가족이라고는 이민 1세인 저와 1.5세인 아내, 그리고 2세인 아이들 둘, 이렇게 달랑 넷입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저 같은 이민 1세대 가정들은 사정이 다들 비슷비슷합니다. 아마 앞으로 한세대는 더 지나야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끔 저보다 한세대 전에 이민을 오신 분들을 보면, 근면성실한 이민 1세대가 열심히 가정을 일구고, 2세대인 그들의 자녀들이 결혼을 해서 부모가 되면, 비로소 3세대인 그 자녀들에게는 부모 양가를 포함해서 제법 많은 가족과 친지들이 있게 됩니다. 게다가 이들은 사촌 형제들도 많아서 자라면서, 또 사회에 나가서도 서로 돕고, 명절 때는 물론이고 가정에 경사가 났을 때나 우환이 생겼을 때 다 함께 모여서 다 같이 기뻐하고, 슬픔도 함께 나누는 데, 그 모습이 참 부럽더군요.
가족이 없으면 서비스라도 좋으면 좋으련만…
지난 수십여 년간 눈부신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을 바라보면 해외 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고국이 무척이나 자랑스럽습니다. 한국은 이제 전자 제품과 자동차로 대표되는 자랑스러운 기술 강국이고, K-팝과 K-드라마를 비롯한 문화 강국입니다. 하지만 해외 동포로서 가장 경이로운 건 따로 있습니다. 이제 한국은 각종 서비스에 관한 한 세계 최강국이더군요.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병원이나 관공서에의 빠르고 효율적인 서비스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엄마들의 로망인 학교 급식이나, 일부 부작용도 있다지만 전문적이고 다양한 사교육 기회, 편리하고 저렴하게 지천에 널린 각종 먹거리, 그리고 가정에 환자가 있을 때 고국의 지인들이 누리는 여러 가지 편리한 ‘K-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모든 것들을 아직도 다 가족 안에서 몸으로 직접 때우며 해결해야 하는 캐나다 교민으로서 정말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가족이 없으면 이웃이 있습니다.
지난 2013년, 14년간 정들었던 토론토를 떠나 밴쿠버로 이주한 뒤로 10년째 한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처음 몇 년간은 많이 외로웠습니다. 그래도 한동네에 오래 살다 보니 오며 가며 같은 동네에 사는 몇몇 한국 가족들을 알게 되었죠. 다행히 아이들의 나이도 서로 비슷해서, 엄마들끼리 먼저 친해진 후 좋은 이웃으로 서로 왕래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9년 전 옆집 이웃으로 만나 아내와 좋은 친구로 지내는 세 아이 엄마 J 씨는 친정이 한국입니다. 안타깝게도 얼마 전 친정아버님께서 한국에서 암투병 끝에 돌아가셨습니다. 부랴부랴 비행기표를 구해서 친정아버지 장례를 위해 황급히 떠나는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요. 그런데 이 집엔 아직 어린아이들이 셋이나 있으니 2주 동안 엄마 없이 지낼 아이들 걱정도 많았을 겁니다. 캐나다 학교는 방과 후에 학교로 데리러 오는 학원버스도 없고, 학교 급식도 없으니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야 하고, 운동이나 다른 방과 후 활동을 하려면 엄마들이 차로 아이들을 일일이 실어 날라야 하는데, 이 모든 걸 바쁜 직장인인 아이들 아빠가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일입니다.
타향살이 하는 K-Mom들끼리는 서로 말 안 해도 통하는 게 있나 봅니다. 처음 J 씨의 친정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아내는 또 다른 좋은 이웃 언니인 K 씨에게 연락을 해서 대책을 논의하더군요. 먼저 각자 앞으로 2주간의 스케줄을 좌라락 살피고 가능한 날짜를 파악하더니, 순식간에 J씨네 아이들을 위한 도시락 당번과, 방과 후 아이들 픽업해서 집에 데려다주는 순서를 정하고, 매번 배달음식이나 냉동식품을 먹을 것을 우려해서 며칠에 한 번씩은 J씨네 가족들이 먹을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것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습니다. 순식간에 착착 벌어지는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데, 정말 의리 있고, 정 많고, 일처리까지 야무진 모습에 역시 우리 K-엄마들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마치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덕선엄마, 선우엄마, 정팔엄마 트리오의 우정을 보는 것 같아서 참 흐뭇하고 이런 좋은 이웃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