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제게 ‘봄날의 햇살‘같은 아내의 생일입니다.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며 3년 전의 일기를 조금 손을 봐서 올려봅니다.
인정하기엔 자존심이 좀 상하지만, 아내를 처음 만났던 2008년 무렵의 내 인생은 사실 많이 초라하고 한심했다. 나이는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 빈털터리에 학자금 융자로 빚만 잔뜩 지고 있었고, 변변한 직장도 없이 파트타임 강사와 과외선생으로 떠돌며, 토론토 미드타운에 지은 지 100년이 다 되어가는 코딱지만한 스튜디오 아파트에서 좀비처럼 살고 있었다.
사는 게 고단해서 그랬을까. 딱히 의지할 곳 없던 나는 성당 신앙생활에 더 열심하게 되었고, 성경공부며 봉사활동에도 많이 참여했었다. 그러던 중 하게 된 성경공부 모임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같은 성당을 다녔으니 몇 년간 서로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말을 해본 적은 없는 사이였다. 그룹 모임을 하는 동안 아내의 선한 마음씨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자주 보면서 참 괜찮은 친구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몇 달간의 그룹 공부를 마치고 2박 3일 연수도 다녀온 후, 토론토의 영&세인트 클레어에 위치한 한 펍의 뒤풀이 자리에서 아내가 내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아직 한여름이라 저녁 늦도록 해가 지지 않는 페티오에서 나는 해를 등지고 앉았고 아내는 석양 노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내가 그룹 나눔을 하는 지난 몇 달 동안에는 하지 않았던 자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1-2년 준비기간을 가진 후, 한국에 있는 수녀원에 입회할 예정이라고 했다. 입회하기를 희망하는 수녀원과는 이미 연락을 주고받고 있으며, 얼른 준비를 마치고 가고 싶다고 했다. 다만 아직 부모님이 마음을 다 열지 못하셔서 가족들의 응원은 받지 못하는 상황인데, 오빠(나)라면 왠지 자기를 응원해 줄 것 같아서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는데…
나의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석양 노을에 물든 아내의 얼굴빛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기도와 봉사로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그 마음이 예뻐 보였는지... 암튼 그 순간 나는, 수녀원 가는 것에 대한 응원을 기대했던 아내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만 그녀에게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다.
이후 ‘내가 왜 이러지.. 미쳤나 봐’ 하며 일주일을 넘게 살 빠져가며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나중에 후회 없게 고백이나 해보고 차이자!’는 심정으로 고백을 빵 터뜨리고서는, 파트타임 교사 일자리가 구해진 대서양 바닷가 도시 핼리팩스로 도망을 가버렸다.
그 후 몇 달 동안 이메일과 메신저로 아내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줄다리기를 하다가, 그해 겨울부터 정식으로 장거리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남짓 흐른 2011년 여름, 나는 다시 토론토의 그 펍으로 아내를 불러 노을을 바라보며 프로포즈를 했고, 얼마 후 우리는 드디어 부부로서 혼인 서약을 하게 되었다.
아내는 복덩이다.
초라하고 답답했던 내 인생이, 햇살 같은 아내를 만나고 환하게 밝아졌다.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바랬던 가정도 이루었고, 이후 하는 일도 잘되어 그럭저럭 밥벌이 정도는 하고 있고, 서로 한 명씩 쏙 빼닮은 아이들도 둘씩이나 낳아서, 이렇게 매일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으니… 아마도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해도 여러 번 구했던 불세출의 영웅이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