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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Pie Jun 26. 2023

꼭 한 번 해보세요, 로드 레이스!

밴쿠버 5 km 레이스 온 가족 참가 후기

Photo Source: https://www.insidevancouver.ca/2020/01/04/your-2020-vancouver-wellness-2020-bucket-lis

He said:

밴쿠버 스코샤뱅크 5 km 레이스에 온 가족이 참가해서 아주 즐겁게 잘 뛰고 왔습니다. 요요(11, 첫째)와 저는 지난 2019년 팬데믹 바로 전 해에 한번 뛰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겨우 4살이던 요둘(8, 둘째)이는 너무 어려서 참가를 못했는데 아이가 너무 아쉬워했었거든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난 4년을 벼르다가 드디어 이렇게 온 가족이 다 함께 참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느 일요일과는 달리 아침 일찍 일어난 아이들에게 가볍게 아침을 먹이고, 번호판을 부착한 레이스 티셔츠로 갈아입히고 나니, 왠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출발지로 가는 내내 차 안에서 말이 없던 아이들은, 현장에 도착하니 같은 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과 들썩들썩 뿜뿜대는 커다란 음악소리에 비로소 실감이 나는지 더 주눅이 드는 눈치였습니다.


처음엔 기록에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완주만 하자고 했습니다. 우리 가족 네 사람의 달리기 수준이 다 달라서 각자 원하는 페이스에 맞출 수도 없고, 아내와 둘째는 아직 태어나서 5 km를 뛰어본 적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만 11살 요요는 그렇게 설렁설렁 완주만 하기는 좀 아쉬웠던 모양입니다. 열심히 뛰어서 좋은 기록을 내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빠와 요요가 먼저 앞서 나가고, 엄마는 요둘이와 함께 따라오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5Km를 처음 뛰어보는 요둘이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출발선에 서서 카운트 다운을 기다리다 보니 아이들이 슬슬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모양입니다. 요둘이가 자기도 아빠랑 형아랑 같이 뛰겠다고 하는데… 아주 난감하더군요. 지 능력껏 뛰고 싶다는 아이를 말리기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아직은 형을 못 따라올 게 뻔한데 같이 가자고 할 수도 없고… 결국 비장한 각오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요요는 내가 데리고 뛸 테니, 자기는 요둘이를 맡아. 절대 놓치지 말고 죽을 각오로 따라잡아! 알았지?” 갑자기 입틀막 하는 아내의 흔들리는 동공을 애써 모른 척했습니다. 하하.


드디어 출발을 알리는 굉음이 울리고, 승부욕 과다분비 요요는 페이스 조절이고 나발이고 전속력으로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런 요요를 혼자 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아빠도 어쩔 수 없이 속력을 올려서 그 뒤를 따릅니다. 한참을 그렇게 달리다 뒤를 돌아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앞서가는 아빠와 형아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요둘이가, 터질 듯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가쁜 숨을 헐떡이며 바로 제 뒤에서 달리고 있더군요. 그리고 한참 뒤에서 하염없이 “요둘아, 요둘아!!”를 외치며 죽을 둥 살 둥 따라오며 허우적거리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평소에 운동을 안 해서 8살 아이도 따라잡기 힘들어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문득 조지훈 시인의 시, ‘승무’가 떠올랐습니다.

‘얇은 팔 하얀 다리, 휘적휘적 나빌레라!’

그리고 아내의 목소리가 그렇게 클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무슨 전쟁통 피난길에 아이 놓친 엄마인 줄… 하하.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자기 뒤로 이런 대환장 파티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무한 질주를 하고 있는 요요를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요. 다행히 곧 따라잡고 녀석의 페이스에 맞춰서 레이스를 잘 끝냈습니다.


레이스 초반, 완전 신난 신 선생 바로 뒤에 바짝 따라오는 강아지 얼굴이 요둘이 입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 힘겹게 쫓아오는 우는 얼굴의 아내가 보입니다. 아, 진짜 고생했네!


5학년 요요의 5 km 공식 기록은 28분 31초입니다. 나름 괜찮죠? 5 km 레이스는 내년에 한 번만 더 하고, 내후년에 만 12살이 되면, 매년 4만여 명이 참가하는 캐나다에서 가장 규모가 큰 10 km 로드 레이스인 밴쿠버 선 런(Vancouver Sun Run)에 도전하겠답니다. 아마 그때쯤 되면 요요가 자기보다 느려진 아빠의 페이스에 맞춰서 뛰어야 할 듯합니다.


또 하나의 수확은, 아내가 달리기에 흥미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비록 엄살을 떨고 있지만 벌써 내년 대회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나름 재미있었나 봅니다. 하하!

https://www.vancouverisawesome.com/courier-archive/news/vancouver-sun-run-all-the-road-closures-in-p

She said:

음... 그건 어디까지나 남편이 봤던 모습이고요...

출발과 동시에 멀어져만 가는 남편과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어요. 출발한 지 100미터도 안 돼서 내 몸이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출발 전에 “죽어도 요둘이 놓치지 말아라. 무조건 따라잡아라!”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아서 저도 모르게 엄청 큰 소리로 요둘이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제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요둘이가 저를 기다려 주었고, 이후 느린 엄마를 기다려주며 끝까지 같이 뛰었네요. 하지만 엄마 때문에 좋은 기록을 내지 못한 요둘이에게 미안해요.


중학교 때 이후로 겪어보지 못했던 양쪽다리에 쥐 나기 직전의 느낌도 받았고요. 피니쉬라인에서 목이 터져라 저를 부르던 남편과 요요의 목소리도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요. 정신이 나가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재미있었는지 내년에도 뛴다는데, 내년엔 아이들이 더 잘 뛸 것만 같아서 벌써부터 무섭습니다. 어흑! 그래도 다 뛰고 나니 너무 신나고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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