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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Pie Sep 30. 2023

캐나다의 가장 부끄러운 과거를 소개합니다.

Every child matters.

매년 9월 30일은 캐나다 전역에서 기념하는 “Truth and Reconciliation Day”입니다.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진실과 화해의 날“이라 할 수 있겠죠. 지난 2021년에 제정되어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하는데, 올해는 9월 30일이 토요일이기 때문에 다음 주 월요일이 대체 공휴일이 됩니다. 신 선생 입장에선 눈코뜰 새 없이 바쁜 학기 초에 하루라도 쉬는 날이 생겨서 좋기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날은 좋은 일을 기념하는 날은 아닙니다.

https://www.grad.ubc.ca/about-us/news/participate-orange-shirt-day-ubc

뒤늦게 도착해서 탐욕스럽게 아메리카 대륙을 차지한 유럽인들은, 남미와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캐나다에서도 원주민들에게 몹쓸 짓들을 참 많이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Indian Residential School"이라는 기숙학교 제도였습니다. 원주민 아이들을 유럽인들이 지배하는 사회에 잘 적응(?)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이 제도는, 원주민 아이가 네다섯 살이 되면 부모로부터 강제로 격리시켜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기숙학교에 수용하고, 이후 10년 이상을 유럽식(?) 또는 현대식(?) 교육을 받아야 했던 캐나다 판 ”내선일체 창씨개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https://moa.ubc.ca/exhibition/shame-and-prejudice/the-scream-srgb/

레지덴셜 스쿨에서는 원주민들의 고유한 언어 사용이 금지되고 영어만 써야 했으며, 그들의 신앙과 문화도 부정당하고 강제로 가톨릭을 비롯한 일부 개신교로 개종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종종 강제 노역과 온갖 신체적, 성적 학대에 시달렸으며, 이를 견디지 못한 수많은(추정치 약 6000여 명) 아이들이 죽어나갔던 캐나다의 진짜 부끄러운 흑역사입니다.

https://www.cbc.ca/amp/1.6083493

캐나다의 지배층들이 그들의 고향인 유럽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1,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것은 아름답고 숭고하다고 칭송하면서, 같은 시기 정작 캐나다 안에서는 토착 원주민들을 상대로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말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은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특히 가톨릭 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정부와 협력해서 기숙학교들을 운영하며 수많은 아이들을 학대했던 주체가 가톨릭 교회와 일부 개신교 교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BC주의 마지막 원주민 기숙학교가 1980년대에 문을 닫았다고 하는데, 20년이 훨씬 지난 2008년에서야 비로소 캐나다 총리의 공식 사과가 있었다고 하니 만시지탄이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싶습니다. 하지만 무려 150년 가까이 자행된 이러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했다고 하니, 그 오랜 세월 원주민들이 겪었을 고통과 아픔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https://tabletennisnorth.ca/national-day-for-truth-and-reconciliation/

과거 잘못에 대한 사죄와 화해를 위한 캐나다 정부의 지지부진하던 노력은 지난 2021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합니다. BC주 내륙의 캠룹스에 있었던 한 레지덴셜 학교 터에서 무려 215구의 원주민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면서 캐나다 전체가 발칵 뒤집혔기 때문입니다. 그중엔 사망 당시 3살 정도로 추정되는 어린 유골도 나왔다는 말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만일 한국에서 정부와 교회가 주도해서, 전국에서 강제로 모든 다문화 가정의 취학 연령 어린이들을 데려다가 ‘한국화’ 교육을 받게 했다면, 부모들은 자녀들 면회도 쉽게 하지 못했고 아이가 잘못되어도 그저 아이가 학교에서 도망쳐서 실종되었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면, 그리고 훗날 그중 규모가 컸던 한 곳에서 215명의 다문화 가정 출신 어린이들의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하는 끔찍한 상상도 해봤습니다.) 부랴부랴 전국에 조기가 걸리고, 의회에서는 “Truth and Reconciliation Day”를 제정하고, 교육부에서는 새로 바뀐 커리큘럼에 Aboriginal Education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노력들이 실제로 그들의 과거 잘못에 대한 용서와 화해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캐나다 원주민들의 아픔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픈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은 현재 겉으로 보이는, 즉 못 배우고 가난하며, 각종 범죄에 쉽게 노출되고 마약에 찌들어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기도 합니다. 하여간 어느 시대 어느 나라고 간에, 오랜 시간 핍박을 당해서 못나고 뒤틀린 약자들의 모습을 보고, 그걸 트집 잡아 또 그들을 단죄하는 잔인함은 호모 사피엔스만의 종특인가 싶어서 우울해집니다.

https://www.bbc.com/news/world-us-canada-57325653.amp

끝으로 재작년에 읽다가 마음이 너무 아파서 꺽꺽 울었던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레지덴셜 학교를 다녔던 다섯 명의 원주민 아이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매우 아리고 아프지만 한편 아주 따뜻하고 희망에 찬 이야기입니다. 한국어 번역본은 아직 없는 것 같아 아쉽지만, 캐나다에 사시는 브런치 구독자 분들에게는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Photo by Flying 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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