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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Pie Jun 29. 2023

브런치 먹고 졸업합니다.

어느 캐나다 고등학교의 졸업 풍경

오늘 학교에서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신 선생은 지난 16년간 캐나다의 노바스코샤, 온타리오, 그리고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3개 주를 거치면서 교사생활을 했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에 따르면 캐나다는 어느 주를 가도 고등학교 졸업식의 형식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졸업식의 앞뒤 일정이나 그날의 분위기는 학교마다 상당히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 흥미롭더군요.


신 선생이 현재 근무하는 학교는 유치원에서 12학년까지 있는 가톨릭 남자 사립학교입니다. 가톨릭 학교이다 보니 먼저 오전 10시에 졸업생들과 가족들, 그리고 교사들을 비롯한 모든 직원들이 모여서 감사의 미사를 드립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오래된 나무들로 둘러싸인 학교 안마당에 단상과 천막을 세우고 곳곳에 포토존을 비롯한 여러 장식들로 꾸며놓으니 아늑하고 근사합니다.


단상 위에는 미사를 위한 제대와 독서대가 단정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마침 학교 담당 신부님이 로마에 출장을 가신바람에, 십여 년 전 이 학교를 졸업한 동문 신부님이 대타로 와서 후배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시니 오히려 잘됐습니다. 복사단과 성가대는 재학생 후배들이 맡아서 준비했는데, 그 긴장감 속 진지한 모습들이 보기 좋습니다.


미사가 끝나면 모든 졸업생들과 교직원들이 체육관으로 이동하여 함께 브런치를 나누는 전통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땀냄새 진동하는 남고 체육관인데, 오늘만큼은 재학생 학부모님들의 수고로 호텔 연회장처럼 근사하게 탈바꿈해 있습니다. 모두가 말끔하게 차려입고 각자 앉을자리까지 배정이 되는 나름 격식 있는 자리인데, 졸업하는 날이라 그런지 그 분위기가 훈훈합니다. K-12 학교이다 보니 이제는 청년으로 다 자란 졸업생들이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들과 옛 추억을 나누며 식사를 하는 모습이 뭐랄까, 참 아름답습니다.


오늘의 이 브런치에는 단지 졸업생들과 교사들만 초대되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의 운동부 코치들과 보조 교사들, IT 및 학교 시설 담당자, 그리고 회계 업무를 비롯한 모든 사무직 직원들이 초대되어, 직위에 상관없이 자리를 배정받아 함께 식사를 나누며 아이들을 축복해 줍니다. 이분들은 한국의 졸업앨범에 해당하는 Yearbook에도 다른 모든 교직원들과 아무 구분 없이 사진과 이름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내일 있을 교직원 미사와 이어질 바비큐 파티에도 초대되어 다 같이 한 해의 마감을 축하하며 친교를 나누는데, 저는 우리 학교의 이런 문화가 참 좋습니다.


브런치 후에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비로소 졸업식이 시작됩니다. 졸업식의 형식이야 뭐 북미의 여느 고등학교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보통 교장 선생님의 간단한 스피치가 있은 후, 사회자가 한 사람씩 호명해서 졸업장을 수여합니다. 그리고 각종 시상과 장학금 수여를 합니다. 이후 모두가 기다리는 졸업생 대표와 게스트 스피커들의 연설이 이어집니다. 오늘 졸업 연설하는 녀석이 기억에 남는 선생님들과의 일화를 언급하면서, 제 이야기도 하는 바람에 순간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순서가 끝나고 나면 필드로 이동해 졸업생들이 일제히 사각모를 하늘로 던져 올리는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


아, 아직 끝이 아닙니다. 졸업식 후에는 리셉션 장소에서 스낵과 음료를 나누며 사진도 찍고, 웃고 떠들며 또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각자 파티로 집으로 향합니다. (네, 사실 좀 피곤하기도 합니다. 완전 체력전이에요.)




(*)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렇게 사각모를 하늘로 던져 올리는 전통은 1912년 미국의 해군 사관학교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2년 동안 써왔던 사관생도의 모자를 벗고, 이제 어엿한 임관 장교로서 새로운 모자를 쓴다는 의미가 있었다는데, 오늘날에도 이렇게 북미 전역의 사관학교도 아닌 일반 고등학교/대학교 졸업식장에서 끊임없이 재현되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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