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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Pie Oct 23. 2023

선생도 평가받기는 무섭다!

신 선생은 올해 학교에서 4년마다 돌아오는 ‘교사 평가’의 대상입니다. 네, 사범대 나온 지 17년 되었으니 이젠 나름 베테랑 선생이라 할 만 하지만, 평가는 늘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신 선생 평가를 담당하는 교감 타일러(가명)는 작년까지 인근의 다른 학교에 재직하다 올해 우리 학교로 이직을 해서 아직 서로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더 긴장이 되나 봅니다.


물론 이 평가가 저의 커리어에 미칠 영향은 미미합니다. 교감이라고 이 일이 좋아서 하겠습니까. 안 그래도 정신없이 바쁠 텐데 귀찮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요구하니 서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겁니다. 그리고 같은 동료끼리 너무 박한 점수를 주기도 부담스러울 테니 신 선생 하는 모습이 너무 엉망이지만 않으면 적당히 괜찮은 평가 점수와 함께 일단 잘하는 것들에 대한 칭찬을 좀 해줄 겁니다. 그러고 나서 교감이 진짜 하고 싶은 말, 즉 개선되었으면 하는 것 몇 가지를 조심스럽게 적어주겠죠. 평가지에 뭐라도 적어야 하니 뭐라도 찾을 겁니다. 사실 마음을 열고 대하면 교사 평가 때 받는 피드백과 제안들은 경청할만한 가치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좀 아파서 그렇죠. 아무리 좋게 돌려서 말을 해도 지적을 당하면 아프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까요.


타일러는 내일 오전 2교시, 12학년 Pre-Calculus 수업에 들어올 예정입니다. 참관 후에는 간단한 피드백 미팅을 할 테니, 미리 받은 30여 개 평가 항목이 있는 자기 평가서를 오늘까지는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자기 평가라는 건 언제 해도 참 곤혹스럽습니다. 좋은 점수를 주자니 왠지 아닌 거 같고 낯 뜨겁기도 합니다. 캐나다에서 25년을 살았지만, 스스로를 야박하게 평가하는 우리 한국인 특유의 성향이 어디 가나요. 그렇다고 낮은 점수를 주자니 “내가 뭐 어디가 어때서?” 싶기도 하고, 또 그랬다가는 자존감 없는 소심한 못난이처럼 보일까 염려됩니다. 한국인들끼리야 겸손의 말이 미덕일 수 있겠죠. 하지만 걸핏하면 아무 데서나 ‘인크레더블’이니 ‘어메이징’ 같은 형용사들을 입에 달고 사는 요즘 서양 사람들과 일을 할 때는 우리 한국인들이 습관처럼 내뱉는 겸손의 말은 하등 도움이 안 됩니다.


그래서 계획이 뭐냐고요? 음… 일단 내일 아파서 출근 못 한다고 할까요? 하하! 학교를 간다면 내일은 신 선생이 평소에 하는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여줄 생각입니다. 교감의 수업 방문은 총 3번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냥 평소의 모습을 보여주고, 사후 미팅을 통해 받은 피드백과 조언을 겸허히 수용해서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면 관리자들은 좋아하더군요. 음, 제발 이번에도 이 전략이 통해야 할 텐데…


나중에 이번 평가가 다 끝난 뒤 후기를 써 올릴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앞으로 제 글의 톤이 어두워지면서 곳곳에서 분노와 의기소침과 짜증이 느껴지시면… 부디 따뜻한 위로의 라이킷과 공감의 댓글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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