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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Pie Nov 05. 2023

빼빼로 데이와 참전 용사

캐나다의 현충일 Remembrance Day

고국에서는 요즘 빼빼로 데이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돌아오는 토요일 11월 11일은 캐나다를 포함한 영연방 국가들이 기념하는 Remembrance Day입니다. Remembrance Day란 우리나라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날은 주로 제1, 2차 세계 대전을 비롯한 캐나다가 참전했던 여러 전쟁에서 싸우다 희생된 군인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캐나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좀 미안한 말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나이 서른 다 돼서 이민온 신 선생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이 Remembrance Day라는 날이 그저 공휴일이라서 좋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의 현충일이라 하면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우다가 사라져 간 많은 호국영령들이 떠오르는데 반해서, 캐나다의 Remembrance Day라 하면 비교적 최근에 세상의 정치인들이 일으킨 명분 없는(?) 전쟁에 동원되어, 아프가니스탄이니 이라크니 파병되었다가 자살 폭탄 테러 등으로 어이없이 희생당한 캐나다 젊은이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곤 했었습니다. 그러니 '당신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느낌은 아무래도 덜 할 수밖에요.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도 너무 먼 과거의 일이라 그런지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Photo by Vlad Vasnetsov

지난 2013년 여름, 신 선생은 현재의 학교에 일자리를 구하면서 14년간 정들었던 토론토를 떠나 가족과 함께 밴쿠버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신 선생은 새 학교에서 처음 참석한 Remembrance Day 기념식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됩니다. 신 선생이 근무하는 학교는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 있는 가톨릭 남자 사립학교입니다. 학교 대강당에 전교생 1000여 명을 빽빽하게 모두 모아놓고 Remembrance Day 기념식을 진행하더군요. 잘 꾸며진 단상 위로 학교 동문 출신의 전, 현직 군인들과 경찰들도 초대하고, 고등부 오케스트라와 성가대의 장엄한 음악과 함께 나름 경건하게 식을 진행하는데… 신 선생에게는 그저 지루하기만 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20여분이 지났을까요, 학생 대표 한 명이 단상 위로 올라가더니 지난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하여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졸업생들의 이름을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하품을 겨우 참고 있던 신 선생은 그 순간 “한국전쟁”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이더군요. 장엄한 음악과 함께 대형 스크린에 졸업생 전몰 병사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올라오는데… 아, 그 수가 대충 봐도 30여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겁니다! 물론 그들 중 대부분은 2차 대전에서 희생된 분들이었지만, 천천히 호명되는 그 이름들을 듣고 있자니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1940-50년대 그 당시엔 학교 규모도 지금보다 훨씬 작았을 텐데 이렇게나 많은 이 학교 졸업생들이 지구 반대편 한국이란 조그만 나라에 와서 싸우다가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했습니다. 이후 기념식 내내 ‘이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한국까지 싸우러 왔을까? 그때 남한이 패망하고 한반도가 공산진영으로 넘어갔었을지라도 그것이 과연 캐나다 밴쿠버 지역에 사는 청년들의 삶에 무슨 유의미한 영향이 있었을 거라고…’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구사일생으로 겨우 반쪽이나마 지켜진 그 나라 출신인 제가 60여 년이 지난 후, 이렇게 이 학교에서 교사가 되어 그들의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벅차올라 주책스럽게 눈물이 나더군요.


다음 주 토요일 ‘빼빼로 데이’에 빼빼로 과자 맛있게 드시면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잠시 짬을 내어 지난 70여 년 전 한국이라는 작고 힘없는 나라를 돕기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달려와 목숨 바쳐 싸워준 캐나다 장병들도 함께 기억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 설명: 단 700여 명의 캐나다 장병들이 무려 5000여 명의 중공군에 포위된 채 사투를 벌여 경기도 가평의 677 고지를 끝까지 지켜내, 연합군이 서울을 사수하는데 크게 기여한 1951년 ”가평 전투“때의 사진입니다. 숫적인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아군에게 자신들의 위치에 폭격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당시 전투 상황이 얼마나 처절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위의 사진은 전투 당시 캐나다 군 부사관 William J. Chrysler가 부상을 입은 Morries J. Piche 일병을 부축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Courtesy of Imperial War Museum London)


캐나다를 비롯한 다른 영연방 국가들이 매년 11월 11일을 Remembrance Day로 지정한 이유는 바로 이날이 제1차 세계대전의 휴전 협정이 맺어진 날이기 때문입니다. 1918년 11월 11일 오전 5시에 연합군과 독일군이 휴전협정에 서명을 하였고, 6시간 후인 오전 11시에 드디어 전장에서 발포가 중지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제1차 대전의 총성은 11월 11일 오전 11시를 기해서 끝이 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이듬해인 1919년부터 매년 11월 11일 11시에 제1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축하하고 동시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Remembrance Day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이들 전쟁에서 희생된 군인들도 함께 기리다가, 최근에는 범위가 더욱 확대되어 전현직 군인들 뿐만 아니라, 경찰과 소방공무원 등, 공공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함께 기억하고 감사를 표현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캐나다는 한국 전쟁 당시 유엔의 16개 국가들 중에서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27,000여 명의 병사들을 한국에 파병했고 그중 516명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있었던 제1, 2차 세계대전동안 희생된 캐나다 군인들은 무려 113,000명에 달합니다. 당시 캐나다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말 어마어마한 희생입니다. 왜 아직도 북미 지역에서는 1, 2차 대전 관련 소설이나 자서전이 매년 끊임없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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