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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의 <천년의 사랑>

작사 이현규, 이현주 / 작곡 유해준

by GAVAYA Dec 31. 2024

안녕하세요?

오늘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박완규'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2 OQf5 BBzgwM? si=LS5 fxXok6 LKwxrVV

천년이 가도


난 너를 잊을 수 없어


사랑했기 때문에


- 박완규의 <천년의 사랑> 가사 중 -




박완규는 부활의 멤버로 1997년 데뷔했습니다. 5집 '불의 발견'이 그의 데뷔 앨범이었죠. 박완규는 부활에서 5대와 11대 보컬로 두 번 활동했습니다. 부활 멤버가 되기 전에는 송탄 미군 부대에서 DJ를 하거나 노래를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조명기사였던 누나가 부활 멤버 모집 소식을 알려주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네요.

부활 5집에서 가장 뜬 은 'Lonely Night'이었죠. '슬픈 바람'이라는 곡도 꽤나 인지도가 있었답니다. 하지만 금전적 문제와 음악적인 견해 차이로 박완규는 부활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1999년 솔로 데뷔를 하죠. 앨범명 '천년지애'.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가 해당 앨범의 타이틀곡입니다. 레전드곡이죠.

최고음이 3옥타브 레로 매우 넓은 음역대를 가진 고난도곡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노래 좀 한다는 사람은 꼭 시도해 보는 곡입니다. 노래는 대박을 쳤지만 박완규라는 가수로서 쪽박을 치게 됩니다. 소속사에서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해 생활고를 겪었고 돈을 벌기 위해 무리를 탓에 성대에 문제가 생기게 되거든요.

목 상태가 하도 안 좋아서 일상생활조차 어려웠다고 전해집니다. 가수를 그만두고 보컬 트레이너로 전향을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랬던 그가 2011년 김태원과 다시 손을 잡고 <비밀>이라는 노래를 어렵사리 발표합니다. 의사는 박완규에게 살려면 노래하지 말라고 했으나 기적적으로 목상태가 호전되었죠. 하지만 얄궂게도 당시 이혼을 하게 되죠. 노래가 잘 되면 다른 곳에서 문제가 터지는 그의 인생사가 참 안타깝습니다.

전성기보다는 음역대가 훨씬 낮아지긴 했지만 친근함은 더 커졌습니다. 2021년부터는 개인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습니다. 팬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겠죠? 긴 머리 때문에 과거 목욕탕에서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락커로서 그건 포기할 수 없겠죠? 하하하. 50대 초반의 나이인 만큼 앞으로 한 두 번은 심금을 울리는 곡을 선사해 줄 것을 기대해 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천년의 사랑'입니다. 천년은 그냥 은유일 겁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시간이 흐르는 순간이라면 사랑할 거라는 뜻이죠. 제가 2024년 마지막날 이 곡을 고른 이유는 무안 참사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기 위함입니다. 그동안 이 노래를 이성 간의 사랑으로만 그려왔는데,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니 그리 슬플 수가 없더라고요.

'이대로 널 보낼 수는 없다고/ 밤을 새워 간절히 기도했지만/ 더 이상 널 사랑할 수 없다면/ 차라리 나도 데려가'가 첫 가사입니다. 여기서 보낸다는 것은 A라는 장소에서 B라는 장소로 이동을 뜻할 수도 있지만 현생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혹은 죽음의 문턱을 갓 넘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상황인 듯합니다. 그 존재의 사라짐으로 더 이상 사랑이 불가능하면 화자 역시 같이 저 세상으로 따라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떨어지지 싫은 애절한 마음이 들끓고 있죠.

'내 마지막 소원을/ 하늘이 끝내 모른 척 저버린대도/ 불꽃처럼 꺼지지 않는 사랑으로/ 영원히 넌 가슴속에 타오를 테니' 부분입니다. 하늘이 끝내 저버린다는 것은 화자가 바라는 상황이 펼쳐지지 않을 때를 뜻하죠. 결국 헤어지는 상황이 되면 몸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게 될 테니 그 대신 사랑하는 사람을 활활 타오르는 사랑의 마음을 자신의 가슴속에 담아두겠다고 말합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나를 위해서 눈물도 참아야 했던/ 그동안에 넌 얼마나 힘이 들었니/ 천년이 가도 난 너를 잊을 수 없어/ 사랑했기 때문에' 부분입니다. 아마도 함께 하던 시절 화자는 상대의 속을 엄청 썩였나 봅니다. 그런데도 상대는 그 어려움을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옆에서 지켜봐 주었던 것 같고요. 추정입니다만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몹쓸 병이라도 걸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 정도는 되어야 이런 지독한 사랑의 표현법을 넣어도 고개가 끄덕여질 테니까요.


음. 오늘은 2024년의 마지막날을 보내면서 꼭 남겨야 하는 남기고 싶은 썰을 정리 해 볼까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인간다움'입니다.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하게 느꼈던 것은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그런 와중에도 문학 분야 노벨상 수상은 참으로 깊은 소식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이라 한강 씨의 소설 역시 한 권도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한강 씨의 인터뷰를 보면서 이왕 책을 쓰기로 했으니 한강은 못 돼도 낙동강이라도 되자고 우스개 이야기를 지어내곤 했죠.

저의 개인적 감상입니다만 한강 씨 얼굴을 보면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우울함 같은 게 느껴집니다. 저 정도 세상에 대한 감수성이 있어야 그와 같은 걸작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왠지 그녀의 세상에 대한 깊은 감수성에 동화되는 것이 두려워 애써 그런 걸작들을 피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무안 참사와 같이 전 국민을 놀라게 했던 거대 사건들을 볼 때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곤 합니다. 내가 세월호, 이태원, 무안 참사에서 누군가를 잃은 가족이었다면, 더 나아가 내가 그 참사의 당사자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죠. 그들의 울부짖음을 더 가까이 들게 되면 해당 참사가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저 자신의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에 경종을 울려주죠.

아시다시피 올해는 전대미문의 내란 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내란 사태의 빠른 종결로 일상으로의 회복을 꿈꾸고 있지만 곳곳에서 엄청한 저항이 이어지며 생각처럼 진행이 빠르게 되지 않고 있죠. 나라야 어찌 되건 자신의 안위만 지키려는 후안무치들이 판을 치는 바람에 말입니다.

이처럼 인간다움이 사라진 시대와 장소에는 참혹함과 비열함 등이 난무할 뿐입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들끓는 세상에서 같이 숨 쉬며 사는 것은 눈살이 찌푸려지고 마음이 답답해지고 화가 쌓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대상으로 시기와 비난, 질책과 욕설을 해 댈 순 있어도 가장 소중한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선을 넘어서는 안 되는 일일 테니까요. 자기 살자고 인육을 먹는 상황과 뭐가 다를까요.

생명의 가치가 바닥까지 떨어지고 있을 때 우리 공동체는 그걸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국회로 달려갔고 못 가면 선결재를 했고 난방버스를 불러줬죠. 한강 작가가 말한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말이 새삼 회자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겁니다.

그런데 저는 누군가의 희생이 바탕이 되어야만 미래가 담보된다는 점이 썩 석연치가 않습니다. 그런 현실이 못 마땅하기도 하고 슬픕니다. 그게 역사의 아이러니라면 아니러니겠지만 말이죠. 한 번 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오지 않고 떨어진 대한민국의 국격은 회복하려면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겁니다.

저는 사람다움의 기본이 'If I were you(내가 너라면)'에서 시작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고통과 고난의 현장을 바라보며 내가 그 현장의 아무개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력의 발동이 인간다움의 시작이 아닐까요? 올해 우리를 슬프게 했던 아니 매년 우리들을 슬프게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바로 이런 사고의 부재가 만들어 낸 일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저는 한강 씨의 책에는 분명 이런 시선이 담겨 있을 거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인생길만을 살 수 있는 불완전한 인간이 다른 사람과 사건들을 바라보며 할 수 있는 최대선은 바로  'If I were you(내가 너라면)'가 아닐까요? 높은 감수성으로 자신의 일처럼 아파하고 슬퍼하실 분도 있겠지만 저 일이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일, 저는 그것이 인간다움의 기본자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LCC를 안 타고 국적기만 타야겠다든가 공항에 먼저 가서 꼬리 부근에 자리를 배정받겠다던가 하는 식의 대응으로는 비슷한 참사도 인간다움도 어려울 게 자명합니다.

자. 여러분 내년부터는 사회적 약자나 주변에 곤궁에 처한 사람들을 바라볼 때 'If I were you(내가 너라면)'라는 생각을 꼭 한 번은 해보는 연습을 시다. 그걸 통해 배움을 얻고 자신의 인간다움을 한 차원 높이는 계기로 삼아 봅시다.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다움의 회복에 있는 것일 테니까요.

올 한 해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일일이 세어보지 않았습니다만 올해 브런치를 300여 개 올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했죠?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만은 내가 독자라면이라는 생각이 조금씩 나태해지는 저를 채근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If I were you(내가 너라면)'을 생활 곳곳에 활용하시면 의외의 효과가 있을 듯 합니다. 여러분은 저의 올해 마지막 노래 선곡을 어떻게 보셨을까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내년에 만나요.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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