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물을 마시려는 순간 성길씨 목소리가 마당을 쩌렁쩌렁 가로질렀다. 나무에 앉아 있던 소리에 놀란 물까치들이 한꺼번에 날아갔다.
“지금 뭐 하는 것이야.”
‘드디어 성길씨 폭발했구나.’
며칠 전 풀치는 알타리 밭에 그것을 겨누고 오줌을 쐈다. 성길씨는 마당 입구에 서서 풀치 행동을 보고도 웃고만 있었다. 나는 성길씨에게 “술고래 집으로 보내봐요” 했었다. 성길씨는 콧방귀도 안 뀌었다. 성길씨는 일부러 풀치를 그대로 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오늘 풀치에게 날벼락을 치는 것이다. 성길씨가 큰 소리 낼 수 있는 사람은 세든 뒷방 할매 와 풀치와 나다. 그중 제일 만만한 게 풀치다.
‘풀치, 너 오늘 혼짝 나서 나 좀 편안허게 살자.’
나는 재빨리 가자미눈을 뜨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방범창이 있어 고개를 밖으로 내지 못했다. 성길씨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마당으로 나갔다. 풀치는 머리와 옷이 젖은 채 연자방아에 앉아 졸고 있었다. 풀치 옆에 등산복을 입은 사내와 성길씨가 서 있었다. 집 뒤에 등산로가 있어 주말이면 산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연자방아로 향해 걸어갔다. 성길씨와 그 사내가 서 있는 폼이 심상치 않았다. 사내 둘이 주고받는 말을 듣다 보니 알 것 같았다. 등산객이 졸고 있는 풀치에게 술 깨라고 생수를 머리에 부었다. 성길씨가 수돗가에 담배를 태우다가 그걸 보았다. 성길씨가 뛰어가 따지고 있는 것이었다. 성길씨가 먼저 소리치지 않았다면 나도 등산객에게 한소리 했을 것이다.
풀치는 나와 성길씨와 동네 주민들에게 자갈 틈에 낀 질경이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아무리 풀치가 술 마시고 나에게 주정을 부리지만, 오늘만큼은 나도 풀치 편이 돼주고 싶었다. 나는 속으로 성길씨를 응원했다. 성길씨는 당황하거니 화가 나면 말을 더듬는다. 나는 그것을 알기에 그가 말발이 달리면 나설 준비태세를 갖추고 성길씨 뒤에 서 있었다.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당신이 뭔데 남의 머리에 물을 붓냐고?”
“술 취해 횡설수설해서요.”
“남이 뭔짓을 하던 당신한테 피해를 주지 않은데, 당신 갈 길 가라고요! 산 타러 왔으면 산이나 타지.”
“문화재에서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물을 부어요.”
“정신 차리라고 그랬어요.”
그 남자는 당황해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여기는 우리 동네고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갈 길 가세요.”
성길씨 침은 포물선을 그렸지만, 말은 한마디도 더듬지 않았다.
사십 대 후반쯤 보이는 남자는 등산모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그는 행색이 말이 아닌 풀치 꼴을 보고 함부로 취급했다가 당황한 눈치였다. 풀치 꼬라지는 누가 봐도 노숙자였다. 사내 옆에 서서 눈이 똥그래진 여자가 남자 팔을 똑똑 쳤다. 그들은 산으로 갔고 나는 힘 들어갔던 눈동자를 풀었다. 성길씨는 풀치를 깨웠다.
풀치가 마당에다 밭에다 오줌 싸고, 오이 따다 소주 안주하고, 해 질 때까지 트로트 틀어놓고 잠자고, 너럭바위에 앉아 술 마시고, 개들에게 소리 지르고, 그의 민폐 행동은 숨차서 다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렇게 풀치가 우리를 괴롭혀도 성길씨는 풀치 편을 들어주었다.
내가 이사 온 해였다. 성길 씨가 뒷마당에 있는 호두를 따려고 장대를 휘둘렀다. 그 바람에 담 위 기왓장이 하수구에 떨어졌다. “누구야” 뒷집아저씨 천둥 같은 소리였다. 나는 친구랑 평상에서 점심을 먹다가 수저를 던지고 뛰어갔다. 뒷집아저씨가 길가에서 성길씨를 내려다보며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기왓장 어떻게 할 거야” 뒷집아저씨는 길을 가던 사람과 주민들에게 성길씨를 구경거리로 만들고 있었다. 근데 이상하리만큼 성길씨는 입을 크게 벌리지 않았다.
“내에가 아안 했다아고요. 자앙대를 왜 다암벼어락에 휘이두두으르겠어요.”
그는 더듬었지만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 기왓장이 깨져있잖아.”
말투나 체격으로도 성길씨가 일방적으로 뒷집아저씨에게 밀렸다. 나는 마당 입구 단풍나무 아래서 보고 있었다. 단풍나무와 성길씨와 거리는 5m쯤 되었다. 나는 성길씨가 안타까웠다. 성길씨를 거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불꽃처럼 솟았다. 나의 별명 ‘오지랖’을 후지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늘에 태양은 하나다.
단풍나무와 성길씨 집 처마 끝에 빨랫줄이 매달려 있다. 빨랫줄에 이불이 널려있었다. 이불을 걷으면서 발을 떼자 친구는 내 팔을 잡아당겼다. ‘이건 남의 일이 아니여’ 나는 이불을 제치며 천천히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성길씨는 어느새 옆에 서 있는 나를 보며 멈칫했다. 성길씨는 분노를 조절하며 말했다.
“나 어언 참. 이이이 사아람들하안테 창앙피하게 왜 이이이렇게 소오리리를 쳐어요.”
나는 뒷집아저씨를 올려다보며 입을 크게 벌리지 않고 가만히 말했다.
“주인아저씨가 안 그랬다고 허잖아요. 고양이가 담 우를 댕기다가 깰 수도 있고. 뱅기가 지날갈 때 진동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그렇다고 뱅기와 고양이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내 말이 끝나자 ‘무슨 개 풀 뜯는 소리여’ 하는 눈으로 뒷집아저씨는 나를 내려다봤다. 나는 일부러 소리를 죽여 말했다. 그래야 더 진중하게 들릴 것 같아서였다. 뒷집아저씨는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성길씨에게 만 계속 퍼부었다. 한마디로 성길씨는 찢어진 ‘동네북’ 같았다. 누구 하나 뒷집아저씨에게 그만두라고 말리지 않았다. 나는 이해가 안 되었다.
나는 다시 한번 뒷집아저씨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웃집끼리 그만하시고 들어가세요, 깨진 기왓장 사다가 올러놓으먼 되지라이?”
“무우슨 마알이이에에요, 내애가 아안 깨에다니이까아요.”
성길씨 억울하다는 듯 나를 보고 말했다.
성길씨는 내가 자기 역성을 들어주어 좋기도 했지만, 자기가 당하고 있는 걸 내게 보이는 게 민망해했다. 나보다 친구한테 당하는 모습을 더 싫어하는 것 같았다. 성길씨는 내가 가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아무리 오십 훌쩍 넘은 노총각이지만 총각인지라, 나랑 친구에게 창피하다는 느낌이 들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구에게 가자는 눈짓을 하고 그 자리를 돌아 나왔다. 친구가 말했다.
“뭔 일낼 것 같더니.”
"내가 지푸라기 성질이라, 글고 앞으로 맨 날 볼 것인디."
친구는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뒷집아저씨의 확실한 편인 부인이 나타나 아저씨를 데려가자 싸움은 끝이 났다.
성길씨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마당 수돗가에서 담배를 태우며 서성거렸다. “나는 기왓장을 절대 깨트리지 않았어요” 말했다. 평상에 앉아 있던 우리는 “알어요” 맞장구를 쳤다.
나는 성길씨 분을 풀어주고 싶었다. ‘고양이에게 원투 스트레이트로 뒷집아저씨 얼굴을 마구 때리고 훅을 날려 호두나무 가지에다 걸쳐버리라고 헐까’ 어렸을 때 만화를 너무 많이 봐서인가. 이런 생각을 하다 번득 머릿속에서 참새가 날아올랐다.
성길 씨가 분이 풀리게 직접 복수를 해줘야 해! “아저씨, 마당 한가운데에 또랑을 크게 파부쑈.”
성길씨는 내가 말한 뜻을 금방 알아챘다. 그는 창고에 가서 삽을 가져왔다. 정오의 햇살을 받으며 삽질하는 그의 팔다리 근육은 잔뜩 성이 났다. 그는 있는 성질 다 부려 팍팍 삽을 밟아 우렁차게 도랑을 파버렸다. 뒷집아저씨가 밀차를 끌고 자기 밭을 가려면 우리 집 마당을 지나야 한다. 구멍을 파버리면 자기 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리가 만만치가 않다.
성길씨가 땅을 파고 난 후 평상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말했다.
“배웠다는 사람이 부끄럽고 창피한 것도 모르고.”
나는 그날 성길씨가 분이 풀릴 때까지 같이 욕을 해주고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오늘 성길씨는 더듬지도 않고 어쩜 저리 말을 잘할까. 나는 갈수록 성길씨 매력을 하나씩 추가했다. 그의 머리에 새집도 그다지 밉지가 않았다.
친구도 가고 해는 어둑어둑해졌다. 집 모퉁이에서 순둥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걸어갔다. 순둥이는 꼬리를 치켜세우고 이름도 모르는 똥개에게 밀리고 있었다. “순둥아! ”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순둥이는 똥개한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