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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들의 사계

목련 조의 183

by 불량품들의 사계 Apr 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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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조의



          

오랫동안 가지 않은 골목으로 걸어갔다. 마을이 끝난 빈집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누가 건드렸을까. 백구네 마당에 목련이 터졌다. 대문 안은 잡초로 우거져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지난봄 백구는 트럭에 실려 갔다.  겨울이었다. 오늘처럼 나는 마을을 돌고 있었다. 여전히 진돗개가 담을 넘어다보고 짖었다. 담이라 해봐야 내 허리 반만 하다. 진돗개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있었다. 새끼를 가진 배는 아니었다.

‘얼마 살지 못하겠구나’ 직감으로 알았다. 다행히 줄은 풀려있었다.  물그릇은 탱탱 얼었다. 마당에는 냉장고 장롱 청소기 묵은 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십여 전부터 진돗개는 담  측백나무에 묶여있었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강아지 산이랑 바람 쐬러 왔을 때부터 본 개다. 나는 진돗개를 처음 본 그날 백구라고 불렀다. 아직도 개집은 그때 그 집이다. 백구가 개집에 들어가는 것을 한 번도 본 적 없다.

      

산책을 그만두고 급히 집에 내려왔다. 고구마, 고양이 통조림을 챙겨 들고 올라갔다.

백구는 다가가자 이빨을 드러냈다. 통조림을 따 백구 근처에 두고 물러섰다. 배가 고팠는지 진공청소기처럼 흡입했다.

그 후로 매일 먹을 것을 싸 들고 올라가 개집 근처에 놓아두었다. 따뜻한 물은 페트병에 담아 굴러다니는 그릇에 부어주었다. 이러기를 몇 날 며칠, 내 발소리가 나면 백구는 담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손을 뻗어보았다. 으르렁거리지 않았다. 다가가 목줄을 풀어주었다. 배를 가만히 눌러보았다.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하는 것 같았다. 백구는 한 발짝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십 년 넘게 나무에 묶여 지내 그런 거 같았다.   

  

마을은 아파트 재개발로 곳곳이 뚫렸다. 남아있는 사람 가는 사람 구멍 속으로 찬바람이 지나갔다. 이사 가면서 버리고 간 고양이와 개들이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를 뒤지며 떠돌아다닌다.      


하루는 백구에게 갔다가 마당에서 주인을 만났다. 백구 이름은 백구였다.

“애를 저렇게 놔두먼 안 되는디.”

“우리도 할 만큼 했어요.”

주인과 그동안 주고받은 사정은 이곳에 다 쓰지 못한다. 떠올리면 열받기 때문이다.     


나는 하남에 있는 동물병원을 뒤져 복수 빼는 병원비를 알아봤다. 사십 만 원이란다. 곧바로 방이동에서 살 때 내가 키우던 산이가 다녔던 페토피아 동물병원에 도움을 요청했다. 부원장께서 당장 데려오라고 했다.

백구를 혼자 차에 실을 수가 없었다. 혹시 들다가 배를 만지면 물어버릴까도 그랬고, 복수가 차 무게가 엄청 나갔다. 할 수 없이 길 건너 컨테이너에 사는 술고래 풀치를 불렀다. 우리 집주인 성길씨는 남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고 일언지하 거절했다.

그전에 백방으로 동물보호단체를 찾아 알아보았다.

“유기견들 구출하러 가야 해 바빠서 못 가요.”

“내가 데러다 줄게요.”

“백구 있을 자리 없어요.”

유기견 구하러 간다면서 왜 백구 있을 자리는 없을까. 내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됐다.   

    

백구는 차 안에서 불안해하지 않았다. 병원 이 층 계단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나는 병원에서 백구 줄을 잡고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우리를 유심히 보던 아줌마가 내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술고래 풀치나, 나나 둘둘 싸맨 모습이 몽골 어디쯤에서 온 차림이었다. 백구도 마찬가지였다. 털에 묻은 오물이며 흙이며 말이 아니었다. 셋 다 꼬라지가 이상해 말을 붙인 거 같았다. 나는 백구 상황을 말했다. 아줌마는 바짝 다가와 내 손을 쥐었다. 삼만 원이었다. 병원비 보태란다.

그사이 부원장님이 백구 상태를 보고 말했다. 복수를 빼려면 시간이 걸리고 집에 데리고 가면 저체온으로 죽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먼저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그날 부원장께서 복수를 빼고 연락이 왔다.

“애가 순해요, 사람도 잘 따르고.”   

     

이틀 뒤 혼자 백구를 데리러 갔다. 병원에서 보름치 약을 그냥 주었다. 백구는 홀쭉한 배로 병원 계단을 단숨에 뛰어 내려갔다.     


백구 집 이 층 문간방에다 집에서 가져온 카펫을 깔아주었다. 풀치는 이불을 가져왔다.

나는 마천시장에서 북어 대가리와 쿠팡에서 백구 먹을 것을 샀다. 약과 북어포를 먹이러 매일 다녔다. 집도 절도 없는 나나, 풀치나 오지랖이었다.

어차피 백구는 오래 살지 못한다. 오직 사료만 먹었을 백구에게 실컷 먹다가 그곳으로 가게 해주고 싶었다.      


백구 병원 갔다 오고 난 뒤로 백구 주인한테 전화로 온갖 욕설을 들었다. 나 없을 때 집에 와서 집주인 성길씨에게 퍼붓고 갔다고 했다. 죽일 듯이 욕을 한 이유는 왜 남의 일에 참견하냐는 것이었다. 바늘 끝만 살짝만 찔러도 배가 터질 것 같은 백구 배 때문에 사람들 보기 민망함 때문인 것 같았다. 이해는 됐다.  

   

백구네 집 올라가는 길에 불빛이 없다. 시내에서 일 보고 밤중에 백구네 가는 골목에 들어서면 대나무 우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했다. 헤드라이트를 켜놓고 대문 안으로 걸어가면 백구는 벌써 마당에 내려와 있다. 백구가 보이면 무서움이 사라졌다. 밥과 약을 챙겨 주고 돌아설 때마다 ‘목련꽃 필 때까지만 살아라’ 생각했다.


한 달이 되어가자 백구는 다시 헬륨 가스를 마 배처럼 부풀어 올랐다. 발소리를 죽이며 마당에 들어지만, 백구는 그 배를 끌고 뒤뚱거리면서 계단을 내려왔다.      

나는 백구를 다시 동물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옷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백구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오지랖 그만 부리라면서도 사 주었다.


두 번째 복수 빼고 퇴원할 때다. 부원장은 한 달 치 약을 그냥 주었다.      

나는 백구를 데리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현관문이 잠가져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출입구에 합판을 주워다 바람을 막고 이불을 깔아주었다. 며칠 지나자 이불도 없어졌다. 나는 그걸 보고 난 후 주인과 마주치지 않으려 신경을 썼다. 약과 밥을 주고 급히 나오다 차 옆구리를 대문에 긁어버렸다. 차  옆구리 상처를 볼 때마다 백구가 떠오른다.  

   

십여 일이 지나자 백구 복수가 차기 시작했다. 바닷가에서 죽어 있는 고래 배처럼 터질 것 같았다.

대전 동생이 수제로 만들어 먹을 것을 보내왔다. 먹을 것을 들고 급히 백구에 갔다. 마당에는 목련꽃이 부풀다. 언제나처럼 발소리를 죽이면 이 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기척이 없었다.

아무리 불러도 꼬리도 보이지 않았다. 오후 내내 구석구석 샅샅이 뒤졌다. 혹시 죽었으면 묻어주기 위해서였다. 흔적도 없었다. 3 개월이 되도록 마당 밖을 나가는 적 없는 애인데.


나는 다음 날도 다음 날도 백구를 불렀다. 이런 나를 보고 술이 덜 깬 술고래 풀치가 말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지만, 주인이 백구를 트럭에 싣고 갔어.”

“뭐.”

“죽이려고 데리고 가겠지.”

“설마.”

‘그래, 나도 언제까지 병원을 데려갈 수 없지.’

그래도 그렇지, 곧 죽을 텐데. 나는 백구를 산에 묻어주고 싶었다. 

그날 백구는 트럭 짐칸을 타고 내 집지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동안 고마웠어요.’

‘나도, 백구야.’     


백구 대신 목련이 담을 내다보고 있다. 마을은 고물상들이 돈 되는 것들을 죄다 뜯어 갔다. 심지어 문고리도 뜯어 갔다. 백구네 마당도 귀신이 나올 거 같다.

나는 잡풀을 밟으며 들어가 조문하듯 목련을 주워 땅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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