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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또 삶 Jul 20. 2023

09. 병상일기

응급실... 삶과 죽음의 공간

꺼내야 한다.
꺼내야 한다.
꺼내야 한다.


 이번 글도 좀처럼 써지지 않는다. 물 한 모금 마셨다가... 창 문을 닫았다가... 글을 쓰기 어려워 산만하게 움직이다가 겨우 노트북 앞에 앉아 기억을 다듬는다. 누구에게도 병원 생활에 대해 얘기를 꺼내어 본 적 없다. 내 머릿속에서도 그 기억은 심해에 드러나지 않은 미지의 생물처럼 아주 깊게 가라앉아 있다. 들여다보려면, 아주 깊이 잠수를 하고 가야만 한다. 아주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그 숨을 참고 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워 외면하며 살았었다.


 이제 와서 포기할 순 없다. 또다시 외면한다면...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이다.

 다른 이의 권유나 설득이 아닌, 나의 순수한 의지로 한번 부딪혀 보자.


 옥상에서 떨어져 엠뷸런스를 타고 응급실에 실려왔다. 내가 눈을 떴을 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움직일 수도 없었다. 어떤 장소며 어떤 상황인지 파악도 되지 않았다. 통증도 왜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가 그냥 사후세계인가 싶었다. 마음이 고요해졌다. 어그러진 삶의 소용돌이에서 모든 괴롭힘에서 벗어난 것만 같았다. 온몸이 부러지고 피를 철철 흘렸는데도 말이다... 속이 얼마나 썩어있고 피폐해 있었던 것인가... 이기적이었데도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주변 상황들을 정상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할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늘 정신을 오락가락하던 엄마, 술 마시고는 언어폭력을 했던 아빠, 바람피운 남자친구, 그 남자친구와의 임신과 낙태, 애증과 집착... 그리고 죄책감으로 얼룩진 나날들, 의지할 사람이 남자친구 밖에 없어서 점점 의존을 했고 남자친구는 그 의존을 당연히 버거워했다. 모두 나를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다 끊어낼 자신도 없었고 그냥 조용히 사라지면 해결이 될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생각을 했을까...

.

외로웠다. 

.

 옥상에서 떨어지기 전, 가족들이 잠들기 전. 나는 혼자 방안에 있고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와 남동생이 무언가 얘기를 나눴다. 그 소리가 화기애애하게 들렸다. 나는 속하지 못한 느낌. 내가 없으면 단란한 가족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졌다. 안다. 그 생각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나는 그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괜찮아? 너 괜찮아...?"라고 한마디만 물어봐줬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너무나도 외로웠다. 어디서 어떻게 이 슬픔을 말해야 할지...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가족들에겐 나는 그냥 제 할 일 잘하는 아이. 내색 안 하는 아이일 뿐. 그러고 보니 감정표현 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새벽 시간. 경찰이 우리 집 문을 두들겼다고 한다. 그리고 없어진 가족이 있는지 봐달라고... 이게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하며 엄마 아빠가 언니와 내가 함께 자는 방을 열었는데... 그때 내가 없어진 걸 알았다고 한다. 그때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얼마나 부정하고 싶었을까...


 응급실에 맨 처음 도착한 사람은 남자친구였다. 언니가 급한 대로 내 핸드폰에서 남자친구랑 연락한 걸 봤던지 연락을 했고 남자친구는 바로 응급실로 달려왔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 언니, 남동생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다. 중증 환자 응급실 어어서 그런지 보호자들이 모두 들어올 순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폐에 고여있는 피를 빼내야 하고 개방성 골절인 다리 부분을 응급 수술로 해야 한다고 했다. 뼈와 뼈 사이가 닿지 않게 추를 매다는 수술이었다. 정신이 없는 부모님을 대신해 언니가 설명을 들었다. 언니는 난생처음 수술에 대한 얘기를 들으니 무시무시하기만 했다고 한다. 내 상태가 심각해서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고.


 수술 이외엔 방법이 없었기에 나는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고, 실려가는 중에 살짝 정신이 들었다. 태어나 처음 받는 수술. 그때, 무서움이 온몸을 감쌌다. 방금 전까지 희미한 정신 속에 있다가 갑자기 선명하게 의식이 돌아왔다. 부어서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사방을 살펴봤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의사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고 나는 그분의 손목인지 팔인지를 잡았다. 무서워서 누군가에게라도 매달라고 싶었다. 그리고는 기억이 없다.


 다음 날, 어느 목사님이 병원에서 기도를 하며 돌아다니셨는데... 남자친구인지 부모님인지 그 목사님께 나를 위해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제발 살려달라고... 그분이 나에게 직접 와서 기도를 해주셨을까? 기억에는 없지만, 그렇게 하나님께라도 매달려서 나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셨겠지...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나의 자식이 죽을 고비에 있다고 하면 내 몸과 내 영혼을 바치더라도 살리고 싶었을 것이고... 하나님을 붙잡고 늘어지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신의 보살핌이 있어서겠지. 그리고 그 기도가 닿아서겠지...


 그다음 날도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다. 중환자실 응급실에 있는 내내 눈이 부어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내 머리는 망 같은 걸로 씌워져 있었고, 목에는 기도삽관을 하여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턱은 분쇄골절이 되어서 얼굴이 계속 부어있었다. 다리는 골절로 꼼짝없이 움직일 수 없었고, 골반뼈와 갈비뼈도 골절되어 나는 미라처럼 그냥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과 남자친구는 빠짐없이 오전, 오후 면회를 왔고 내 손을 잡으며 옆에 있다고 안심시켜 줬다. 그 사이에 가장 친한 친구 둘이 내 면회를 왔었는데... 그 친구 둘은 내 앞에서는 씩씩한 척을 하며 손을 잡아주고 말을 걸어주고 갔다. 멀리서 온 친구들이 마음에 쓰였는지 아빠는 맥주 한잔씩 사주며 친구들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듣고 하루 숙박할 곳을 잡아주었다. 아빠는 아주 어릴 때 동네 친구들 말고는 성인이 되어서 만난 나의 친구들을 처음 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들을 통해 듣는 나의 이야기도 처음일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아마... 그 친구들은 나를 좋게 얘기하고도 남았겠지... 그리고 그때엔 살아있었던 작은 삼촌도 면회를 왔다. 마음이 여린 작은 삼촌은 나를 보며 흐느꼈던 것 같다. 나는 말을 할 수 없어 그들의 손바닥에 글씨를 써가며 소통을 했다.


괜찮다며...

고맙다며...

미안하다며...


 중환자실은 생사를 뛰어넘는 전쟁터 같았다. 눈이 잘 안 보여 보지는 못했지만, 소리로 느껴지는 긴박함과 절규가 그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무서웠다. 간호사 선생님 한 분이 나의 두려움을 느끼셨는지 라디오 하나를 머리맡에 놔주고 틀어주셨다. 그 라디오에서는 두 시 탈출 컬투쇼가 나왔는데, 나는 세상에 라디오가 이렇게 재밌는 매체인걸 처음 알았다. 아픈 것도 잊은 채, 중환자실에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나는 단순하리만큼 그 이야기들에 집중했고 재밌는 에피소드를 들으며 피식하고 웃었다. 기도삽관을 하여 입이 아닌 목으로 나오는 쉰소리였지만.


 어느 날은 간호사 선생님이 피떡이 진 머리가 안쓰러웠던지 머리를 감겨주셨다. 머리를 감는 것이 이렇게 시원한 일이었던가...? 무엇보다 피냄새가 나지 않아서 살 것 같았다. 어떤 얼굴을 한 간호사 선생님인지 모르겠지만, 그 간호사 선생님의 따뜻함이 감사했다.


 중환자실에서의 삶 점차 익숙해져 갔다. 여전히 나는 꼼짝없이 움직일 수 없었다. 욕창이 생길까 봐 내 몸을 뒤집어주시는 것 말고는 혼자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다.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손가락이었다. 다행히 팔은 다치지 않아서, 꼼지락꼼지락 손가락만이라도 자유로이 움직였다. 가족들도 점점 이성을 찾았고 더 이상 중환자실 밖에서 나를 계속 기다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할 일들을 하고 면회 시간이 되면 나를 찾아왔다.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남자친구도 계속 면회 때 빠짐없이 왔다.


 며칠이 지났을까... 내가 어느 정도 안정을 보이자 의사 선생님께서는 중환자실에 오래 있는 건 감염의 위험성도 있고 좋지 않다며 일반 병실로 내려보내 주었다. 일반 병실에 옮겨가고 갑자기 분쇄골절이 된 턱에서 피가 솟구쳐 나왔다. 멈추지 않는 피... 간호사 선생님께 말해 지혈 성분의 액체를 적신 솜을 받아서 계속 물고 있었다. 너무 매스껍고 쓴 맛이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피가 지혈되지 않자, 결국은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해야 할 수술이었지만, 다른 곳도 많이 다쳐서 그런지 응급으로 해주시지는 않고 기다려 주신 듯하다. 구강외과 선생님들이 11시간을 수술해 주셨다. 뼈 한 개 한 개를 맞추고 거기에 핀을 연결하는 수술이었는데 분쇄골절이 심하여 뼈 조각들을 하나하나 연결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당연히 내 치아는 여덟아홉 개를 제외하고는 다 빠져 있었다. 잇몸에도 치아교정을 하는 것처럼 뾰족뾰족한 철사들이 가득했다. 남아 있는 치아를 잘 보존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듯하다. 잇몸 안이 찔리고 상처가 나서 입 안 전체가 아렸다. 11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고 나는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수술 후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계속 마취약을 넣어서 재워주신 것 같다. 정신이 들었다가 다시 잠들었다가를 반복했다. 이틀 정도가 지난 듯하다.


지독하게 외로웠던 시간이었지?
온몸이 부서져 아픈 것보다 마음이 아팠던 너에게...
무슨 말이 위로가 될까...
네가 삶을 완전히 포기했었다고 생각지 않아.
그랬다면, 5층이 아니라 확실하게 죽을 수 있는 더 높은 곳을 선택했겠지...
5층은 네가 생각할 수 있는 처절한 높이였지 않았을까...
그 난간에 매달려 힘이 빠질 때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도... 삶에 대한 마지막 몸부림이었겠지.
다시 살아 돌아온 것에 감사해.
네 말대로 네가 살 수 있었던 건 다 이유가 있을 거야.
이제 나머지 삶의 몫은
그 이유를 찾으며, 그 이유를 위해 쓰이며 살아가는 것이겠지ㅡ
그 많은 수술과 재활을 잘 견뎌와 줘서 고마워.
숨 쉬는 것, 먹는 것, 걷는 것, 말하는 것...
당연하다고 여긴 모든 것들이
소중하게 다가오지 않았어?
네가 가장 밑바닥을 찍은 만큼,
더 이상 내려갈 곳은 없어.
앞으로는 올라갈 일만 남아있어.
기대해.
매일 새로 태어나는 기분으로 오늘을 살자.
소소한 오늘 이 하루가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너는 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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