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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또 삶 Jul 18. 2023

06. 불면과의 싸움, 마음 병원을 찾은 나

괴로운 불면증과 육아 우울증


 오랜만에 놀러 오신 시어머니에게 두 아이를 맡기고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 밖을 나갔다. '아바타 2' 영화가 개봉해서 보고 싶어 영화관을 찾았다. 그 전날, 아니 며칠 전부터 잠을 잘 못 이루긴 한 상태였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멀쩡히 영화 티켓을 끊고 2시간이 넘는 영화를 4d로 재미있게 봤다. 집중력은 좀 떨어졌지만 최대한 영화에 몰입하려고 했고, 푹 빠져서 보고 나왔다.


 그. 런. 데... 아무 일도 없는데, 별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상했다. 슬플 일이 없는데! 왜 눈물이 나지? 정말 정말 내가 이해가 안 가고 이상했다. 감정 조절이 안 됐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내가 왜 눈물을 흘리는지도 모른 채 자꾸만 눈물을 훔치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가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흐느끼며 울고 있는 나의 목소리를 듣더니, 남편은 내가 사고라도 난 줄 알고 당황스러워했다. 


"나... 나... 병원에 가봐야 할 거 같아..." 


남편은 내가 어디 다친 줄 알고 안 좋은 목소리로 이유를 물었다.

"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설명할 수가 없어서... 자기한테 얘기를 못했는데... 나 이상해... 자기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나도 설명을 잘 못하겠어. 근데 나 문제가 있는 거 같아. 어떡해? 나 얼마 전에도 첫째를 힘겹게 재우면서 갑자기 이 상황들이 감당이 안되면서 너무 힘들었어. 방문을 열고 자기한테 가서 나 힘들어...라고 말할까 하다가 왜 힘든지 설명을 못하겠어서 그냥  꾹 참았어."

나는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나의 말들이 와닿지 않는 모호한 말들로 들렸을 것이다. 남편은 어리둥절해하면서 내가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고 했다.


 나는 급하게 정신과의원을 검색하고 몇 군데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거의 다 예약제여서 당장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집 근처에 있는  개원한 지 얼마 안 된 한 곳만이 가능하다고 오라고 했다. 바로 운전을 해서 찾아갔고, 접수하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눈물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 이상했다. 아무 일도 없는데 마치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제어가 안되고 자꾸만 울음이 터져 나왔다. 8년 전에 겪은 우울증과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지금은 불면증과 함께 이유 없이 계속 눈물이 흘렀다. 두려운 감정보다는 슬픈 감정이 차올랐다. 나는 이것이 산후우울증 때문에 그런지 알았고, 상담을 하면서도 의사 선생님께 둘째 낳은 지 6개월 밖에 안 됐고, 그동안 사람들도 못 만나고 4살인 첫째의 떼와 고집 때문에 육아가 힘들어서 그런 거 같다고 말했다. '육아' 아니면 딱히 이유가 없는 것 같아 그렇게 얘기를 했다. 무언가 그럴듯한 이유를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우울증 검사와 다른 검사도 한 가지 받았는데 나는 경도 우울증이 나왔다. 거의 3일 동안 잠을 잘 못 잤기 때문에 불면에 도움이 되는 수면유지약과 안정제 약을 처방해 주셨다. 잠을 자려고 하면 깊은 수면에 들어가기 직전 갑자기 각성이 되었다. 너무너무 자고 싶은데 자꾸만 자려고 하면 자지 말라고 누군가가 뇌 속에 억지로 각성제를 놓는 것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본 불면증은 정말 괴로웠다. 잠들지 못하게 고문을 당하는 것 같았다. 


 잠을 잘 못 자니 생활의 질도 떨어졌다. 6개월인 둘째 아이가 새벽에도 자주 깨서 힘든데... 잠깐이라도 제대로 잠을 못 드니  몸은 피곤하고 정신은 몽롱했다.


 처방받은 약을 처음 먹은 날, 3일 만에 푹 잠을 잘 수가 있었다. 확실히 잠을 자니 한결 나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시어머니와 남편, 친구는 정신과 약은 먹으면 좋지 않다며 될 수 있으면 먹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감기처럼 생각하고 가볍게 가서 약을 지어왔는데... 말하는 사람들마다 그렇게 이야기하니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물론, 그 사람들의 걱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정신과 약은 어쨌든 약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있고 오래 먹으면 몸에 좋지 않고 나중에는 약에 대한 의존도가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약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니 엄마가 떠올랐다. 그렇다. 엄마도 20년 동안 약을 복용하고, 약 없이는 못 지낸다고 했었지. 갑자기 온갖 상상이 되면서 두려움이 커졌다. 나도 엄마처럼 되면 어쩌지... 약을 강하게 거부하고 싶어졌다.


 약을 먹은 그 다다음 날, 가족 여행으로 서해 바다 리조트 가기로 되어있었다. 전 날은 스스로 이겨 보겠다고 약을 먹지 않았다. 그런데 전전 날 먹은 약이 아직 효과가 남아 있는지 기분이 괜찮았다. 즐겁게 여행하고 실내 수영장도 즐겼다. 그런데... 그날 밤 최악의 밤을 보냈다. 불면증은 더 심하게 왔고 미친 듯이 가슴이 뛰고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아기 두 명을 재우고 남편까지 잠이 들고 나서 나는 잠을 자려고 갖은 애를 썼다. 수면을 위한 곡도 검색해서 듣고 눈도 꼭 감고 가만히 누워있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원래도 힘들었지만 그 순간은 더더욱 천둥이 치는 것처럼 귓속을 때렸다. 나는 이불을 가지고 화장실로 가 바닥에 깔고는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 코 고는 소리는 덜 들렸지만 갑자기 현타가 왔다. '내가 뭐 하는 거지... 이렇게 좋은 리조트에 놀러 와서...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서 자는 꼴이라니...'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나와 남편을 조심스럽게 깨웠다.

 "자기... 미안해... 나 좀 안아줄래? 정말 정말 미안해. 자기까지 잠을 못 자게 해서 미안해. 근데... 나 너무 힘들어. 잠을 못 자겠어. 나 좀 토닥토닥해 줄래?"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남편에게 어린애처럼 달려가 안아달라고 위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사이 첫째도 잠이 깨 짜증을 부렸다. 결국 우리 네 식구 모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나는 모처럼의 가족여행이 나 때문에 망친 것 같아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런데 이걸 어디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고 힘들었다. 새벽 6시가 다가왔을 때, 갑자기 친동생이 생각났다. 친동생은 크리스천인데 기도라도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잠시 복도로 나가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동생도 그 시간에 일어나 있었다. 내 얘기를 쭉 듣고는 동생이 기도를 해주었다. 무언가에라도 매달리고 싶었다. '오... 제발 신이 있다면...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저를 가엾이 여기시어 도와주세요.'


 집으로 돌아와서도 잠을 자지 못했다. 너무 졸리고 힘든데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갑자기 공황처럼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고 어지러웠다. 나는 이게 공황인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티브이에서 보면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고 그런다는데... 이런 게 공황인 건가? 우울증 약은 거부하고 싶었기 때문에 남편에게 약국에 가서 우황청심환이라도 사 먹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 나가 친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언니... 나 공황이 올 것처럼 심장이 막 뛰고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 어지러워." 언니는 나에게 며칠 전에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 먹고 바로 잘 잤으니... 힘들면 먹으면 어떻겠냐고 조언해 주었다. 일단 지금은 힘드니까 먹고 천천히 끊으면 될 거라고 위로해 주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집에 돌아가 약을 먹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졸리기 시작하면서 편안하게 낮잠에 들 수 있었다. 원래 내 상태가 안 좋아서인지 아니면 약을 먹다가 안 먹어서 상태가 더 심각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증세가 심각해졌다. 방금 나눈 대화 내용이 잘 기억 안 난다던지 뭐부터 해야 할지 일의 순서가 잘 정리가 안된다던지 평소에 잘하던 일들도 예를 들면 운전 같은 것들도 어려워졌다.


 다음 날 다시 병원에 찾아가 의사 선생님께 일련의 상황들을 얘기했다. 내 얘기를 다 들으시고 처음에는 표정이 안 좋으셨다. '전문가인 내 말대로 왜 복용을 안 하지? 왜 비전문가인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려 약을 안 먹었지?' 이렇게 생각하시는 듯했다. 기분이 안 좋으셨을 만 하긴 하다. 의사 선생님은 "그래서 약을 안 드시겠다고요?"라고 물었다. 나는 "아니요... 약을 안 먹겠다는 건 아니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말씀드린 거고, 저는 약을 먹을 거예요. 단지 저는 엄마가 약을 20년 이상 드시는 모습을 보니 약 복용에 대한 거부감이나 걱정이 있어요."라고 말하니, 의사 선생님께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주셨다. "당뇨나 고혈압 환자가 약을 6개월 먹을 수도 있고 평생 먹을 수 있듯이, 정신과 약도 똑같아요. 자신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서라면 약을 3개월 먹을 수도 있고 6개월 먹을 수도 있고 안 좋다면 평생 먹을 수도 있는 거예요."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납득이 되었다.


 맞았다! 지금 당장 내가 힘드니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도움을 받으면 그만인 것이다. 더 위험한 상황은 약을 먹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 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처방과 복용법을 잘 따랐고 점점 좋아지는 걸 느꼈다. 1주일마다 진료를 봤다면, 지금은 안정되어 3주에 한 번씩 진료를 보러 간다. 원래도 약 용량을 최소로 받았었는데, 최근에는 세 알 중에 수면유지를 위한 약 하나를 빼기도 했다. 다음 진료 때는 나머지 두 알의 약 용량도 줄여가 보자고 했다. 두 번째 우울증 검사를 했을 땐 점수가 확실히 낮아졌다. 1~2점 정도여서 우울증에 들어가는 점수도 안되었지만, 의사 선생님께서는 보통 6개월 정도를 치료기간으로 잡는다고 해서 여유를 가지고 치료를 받을 생각이다. 약만으로 효과를 본 건 아니다. 매일 산책 나가 햇빛을 쬐려고 노력했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둘째를 첫째와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면서 그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공부를 했다. 처음부터 모든 걸 다한 것은 아니고, 천천히 회복되는 정도에 따라 나를 채워가는 것들을 했다.


 근 4~5년 동안 임신 출산 육아의 반복이었다. 첫째가 생기기 전에는 유산도 한번 했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다. 그 시간 동안 마음대로 사람을 만날 수 없었고, 내 시간을 갖기도 어려웠다. 둘째 때는 갑자기 임신 6개월에 자궁경부무력증이 와서 중기 유산을 할뻔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병원에서 자궁문 쪽에 있는 자궁경부를 묶어주는 수술을 받고 그 후에 조산위험으로 조심하며 출산할 때까지 누워만 지냈다. 출산을 하고 나서는 신생아다 보니 외출이 거의 불가능했고 모유수유로 편히 잠도 잘 못 자는 생활을 했다. 첫째만 있었을 때는 남편에게 잠깐 맡기고 내 시간을 보내거나 하는 게 가능했는데, 둘째가 생기니 힘듦은 두 배가 아니라 열 배로 힘들었다. 햇빛도 못 쬐고 사람도 못 만나고 점점 고립된 생활을 하다 보니 우울증이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는 생활이었다. 차라리 일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빨리 복직이 하고 싶었다.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나중에 깨달은 거지만 이게 제일 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2년 전부터 시작한 치아 치료가 끝나지 않고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첫째 임신 때 염증이 생겨 잇몸이 부풀어 오르곤 했는데... 임신 중이라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통증이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신경치료를 해놨던 부위라 통증도 없어 그냥 방치하게 되었다. 출산하면 가자 싶어 내버려 두었고, 첫째가 어린이집을 가는 돌 때까지 기다렸었다. 치과에 가니 염증이 퍼져서 치아 4개를 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고, 여러 군데에 상담한 결과가 다 똑같았기에 어쩔 수 없이 발치하기로 했다. 그 후부터 2년 동안 치료 중이다. 치아 4개를 뺀 곳에 임플란트를 심었는데 원래는 3개 정도를 심어야 안정적으로 연결을 할 수 있는데, 14년 전에 옥상에서 떨어져 턱뼈가 분쇄골절이 되었기에 뼈 상태가 너무나 안 좋아 계속 1개가 탈락을 했다. 하필 가운데 턱뼈라 문제가 되었다. 일반인들도 아래 턱뼈는 약한데 나는 더 상태가 안 좋았다. 치과 의사 선생님께서는 어떻게든 해주려고 두 번이나 심고 5개월을 기다리고, 심고 5개월을 기다리고를 했는데... 결국 두 번 다 탈락했다. 어쩔 수 없이 그 부분은 비워놓고 브리지로 덮었다.


 그런데 그 브리지로 덮은 가짜치아 부분이 자꾸만 떨어지는 것이다. 어느 정도로 잘 떨어졌냐면 앞니로 아무것도 안 먹는데도 칫솔질에 떨어지거나 그냥도 떨어졌다. 앞쪽 아랫니이기에 눈에 잘 보이니까 더 신경이 쓰였고,  말할 때도 밥 먹을 때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 신경쇠약에 걸릴 것만 같았다. 한 5~6번째 떨이질 때까지만 해도 그냥 가서 붙이자... 생각하고 붙여오곤 했는데... 붙이면 또 떨어지고... 붙일 때부터 이미 떨어질 것 같은 상태여서 붙이나 마나 한 수준이었다. 가장 센 약으로 붙였다고 하는데도 자꾸만 떨어졌다. 자꾸만 떨어지니 병원에서는 떨어지는 이유를 몇 가지로 해서 설명을 해줬다. 첫 번째 이유는 내 아래턱이 좁고 상태가 안 좋기 때문이고 두 번 째는 가운데에 심었어야 하는 임플란트가 없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고정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치아 6개 부분을 임플란트 2개로 버티고 있으니... 나도 무리라고 생각이 들긴 했다. 중간에 지지할 수 있는 가운데 임플란트가 있어야 안정적인데... 내가 봐도 약해 보였다. 아무튼 그 이유를 듣고 나니, 갑자기 자책이 들었다. 내가 뼈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 거야. 뼈 상태가 안 좋은 건 내가 다쳤기 때문이야. 내가 왜 다쳐서... 까지로 확대되어 가면서 내 과거 기억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트라우마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동안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내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제는 마주하지 않으면 해결해갈 수 없는 순간이 온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이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그 트라우마 상자를 고이고이 간직하고 꺼내서 열지 않았을 것이다. 자꾸만 떨어지던 애물단지 임플란트 브리지 덕에 말이다.


14년이 지난 지금 그 매듭을 풀어보고자 한다.

어떻게 보면 자꾸 떨어지던 내 가짜 아랫니가 고맙기도 하다.

이 계기가 없었다면 난 변하지 못했을 것이다.

드디어 나는 과거의 모든 괴로웠던 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유로워지려면 직면(直面)해야만 한다.

직면의 고통 없이는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나는 생생하게 그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정말 큰 용기를 냈네.
이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가며 그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야.
네 안의 어린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될 거야.
그 열쇠는 네가 이미 발견했어.
그것만으로도 정말 가치 있는 일이야.
그 문을 같이 열어보지 않을래?

놓쳐버린 시간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시간과
아프게 한 시간과
즐거웠던 사간과
그리고 성장하게 된 시간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시간은 그렇게 무늬를 남길 거야.
우리 잊지 말자.
기억하자.
시간이 시간을 먹어버리고
시간이 시간으로 되새김되도록,
그렇게 놓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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