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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또 삶 Jul 20. 2023

08. 첫 응급실

스물한 살의 기억

 처음 응급실에 가본 건 아빠한테 맞았을 때니까... 스물한 살쯤? 아빠는 엄마를 가끔 때리시긴 했지만 우리를 손찌검한 적은 없었다. 아주 아기였을 때는 모르겠는데... 그전까진 없었다. 아빠는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때리시지는 않고 물건으로 화풀이하거나 욕설을 하거나 잔소리를 하셨다. 그런데 스물한 살쯤이었을까? 그날따라 나는 엄마와 아빠의 고성이 견딜 수 없었다. 엄마의 지지 않으려 발악하는 절규에 가까운 음성... 내 안의 화산이 나도 모르게 폭발했다. 그전엔 아빠가 무서워 언니와 나 동생은 방으로 피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참을 만큼 참았다. 우리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 스무 살이 넘었는데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려고 할 때, 나는 그만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나의 표정은 표독스러웠을 것이다. 분노가 가득 일어 일그러질 수 있는 만큼 일그러졌을 것이다. 술에 취한 아빠는 그 모습이 버릇없고 대드는 듯 보였는지 나의 얼굴을 그 얇지만 투박하고 거대한 손으로 싸대기를 때리셨다. 퍽 맞으며 뒤로 날아갔다. 힘이 센 남자에게 맞으면, 이렇게도 날아가는구나 싶었다. 뒤로 나자빠진 나는 얼굴을 감싸고 울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위...

잉...

.

.

.

귀가 잘 안 들렸다. 나는 고막이라도 터졌나 싶어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가 구급차를 불러주어 집 앞에서 구급차를 탔다. 눈 주위가 멍들고 눈 알이 빨개졌다. 나는 놀라서 진정이 안되었고 왜 다쳤냐는 구급대원의 말에 있는 그대로 말을 했다. 그런데... 가정폭력이 걸리면 사안이 복잡해져서 그럴까? 아니면 구급차 비용이 나와서? 그 구급대원은 응급실에서는 화장실에서 넘어졌다고 하라고 했다. 그 당시엔 너무 어리고,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와 그는 알겠다고 하고 응급실에서 진료를 기다렸다. 접수를 하고 한참을 기다렸다. 그곳은 너무나 분주하고 생사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었다. 사지멀쩡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내 차례가 와서 의사 선생님께서는 우선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하여 엑스레이를 찍었다. 다행히 안면부의 어디가 골절되거나 고막이 터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귀가 갑자기 안 들리는 건 충격이 있어서 그랬던 듯하다. 대신에 눈 쪽을 심하게 맞았는지 점점 부으면서 멍이 짙어져 갔고 충혈이 되었다.


 그날은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 그와 함께 찜질방으로 갔다. 우리는 돈이 없었고 그 새벽에 갈만한 곳은 찜질방이 최선이었다. 그는 나를 어떻게 위로해 줄지 몰라 당황해하면서도, 될 수 있는 한 침착하고 평온하게 내 옆에서 묵묵히 있어주었다.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서 참 고마웠고 다행이었다. 그리고 너무 무섭고 불안하고 우울했지만 그가 옆에 있어서 조금은 온기를 머금을 수 있었다.  


 계속 집 밖을 나와 있을 순 없었다. 다음 날 찜질방을 나와 그는 그의 집으로, 나는 나의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초밥 집을 들려 초밥을 사갔다. 8천 원? 9천 원쯤? 하는 무슨 초밥인진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그냥 사고 싶었다. 아빠를 용서했다는 의미처럼... '맞았지만 괜찮다.' 그런 말들을 하는 게 어색해서 아빠가 좋아하는 회가 들어간 그 초밥을 사가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빠에 대한 원망보다는 아빠에 대한 측은지심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리는 살려고 발악하는 사람들 같았고, 진창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사람들 같았다. 아빠도 엄마의 우울증으로 많이 힘드셨을 테지... 그 힘듦을 술과 담배로 그리고 우리에게 푸셨던 거겠지... "쓸데없는 것들. 내가 확 죽어버려야지. 바보 같은, 멍청한 것들. 시발 것들... 등등.." 그 폭언을 쏟아부으시고 자신의 화를 해소하고 토악질하면서... 그렇게 발버둥을 치신 거겠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나는 아빠에게 맞은 그 순간이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 그냥 기억. 기억의 파편으로 남아 있을 뿐. 그날 나는 아빠의 밑바닥을 보았고, 아빠가 더없이 불쌍하고 가엾게 느껴졌다.   


 그다음 날이었을까... 나는 실핏줄이 터지고 멍든 눈을 하고 버스에 올라 혼자 서해를 갔다. 그곳에서 강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지는 노을과 통통배를 보며 멍을 때리다가 술이 좀 깼을 때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넋을 놓았는지... 집도 지나쳐서 결국 차고지까지 갔고 택시를 탔는지 다른 버스를 갈아탔는지 기억이 희미하지만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정신적인 충격이 없지 않아 있었겠지...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없고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구렁텅이. 나를 괴롭히는 것만 같은 사람들과 상황들. 슬픔을 어떻게 토해내야 할지 몰라... 그저 바다보고 술 마시면 나아지지 않을까 했던 작은 기대... 짙은 슬픔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그 해.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치료하면 낫는데...
말로 인해 받은 상처는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아팠을지...
너의 그 아픔을 어디 토로할 곳이 없어...
그 바다를 찾았구나 싶네.
네 나름대로 해소하고 싶었던 거겠지.
아빠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준 그 마음...
참...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아빠로 인해 상처를 받았지만
그래도 아빠를 용서하고 손 내밀어준 거잖아.
아빠에게 사랑받으려...
아빠에게 그래도 괜찮다며...
표현해 준거잖아.
아빠도... 미안했을 거야.
그리고 네 말대로 아빠도 삶이 지옥이었을 거야.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셨을 거야.
20년 넘게 다닌 회사를 어쩔 수 없이 희망퇴직하고,
술로 담배로 그 쓰라린 아픔들을 견뎌가며
또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셨을 거야...
그런데 아내는 아프고, 당장 일은 없고... 자식은 셋이나 되고...
현실이 막막하고 괴로우셨겠지...
옆에서 그런 모습을 너도 보았기에
아빠를 이해한 것 아닐까.
그렇지만 아빠가 제대로 사과를 하셨으면 어땠을까?
네 마음이 덜 다쳤을 텐데.
너무 미숙한 표현 방식 때문에
너도 힘들었겠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한 번은 얘기해 보면 어떨까?
네가 많이 아팠다고...
'미안하다'는 말이 듣고 싶다고.
네가 정말 괜찮을 때 말이야.
그럼 너는 더 괜찮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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