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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또 삶 Jul 21. 2023

10. 끔찍한 재활

뼈가 꺾이는 고통과 몸부림

 중환자실에서 회복한 후 나는 다시 일반 병실로 옮겨왔다. 그때는 아직 콧줄로 식사를 할 때였는데 맛도 못 느끼고 액체가 바로 위로 들어가는 그 기분이 이상했다. 분쇄골절된 턱 수술 자리에 부기도 가라앉고 안정이 되면 그 콧줄부터 빼고 싶었다. 그리고 '저작활동을 하며 음식물을 먹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이었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음식을 치아로 씹고 입안에서 맛을 느끼며 먹질 못하니 미칠 것만 같았고, 꾸역꾸역 콧줄로 미숫가루 같은 액체가 들어가는 것도 거북했다. 며칠 뒤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콧줄을 빼주셨는데 너무 시원하고 개운하고... 뭐라 말로 다 설명이 안될 정도였다.


 또 하나 내 몸에 붙어있던 것은 기도삽관한 부위에 달려있던 코켄이었다. 그 부위가 자꾸 따갑고 아파서 요청했더니 조금 더 작은 사이즈로 바꿔주기도 했다. '가래를 내 마음대로 뱉을 수 있는 것. 그것도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었구나' 느꼈다. 우리는 보통 가래가 있으면 뱉거나 하면 되는데 목을 절개하고 그 부분으로 숨을 쉬니 가래가 걸러지지 않았다. 그렁그렁  소리가 나면 1시간에 한 번씩이었는지 2시간에 한 번씩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흡입기를 려 긴 튜브를 그 코켄 안에 넣어 가래를 빼주어야 했다. 그 부위로 숨을 쉬는 것도 힘든데 석션을 할 때면 한동안은 익숙하지 않아 연신 괴로움에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들썩였다. 그 석션의 과정이 힘들어 빨리 빼고 싶었다.  1~2시간에 한 번씩 석션을 해줘야 하니 보호자도 나도 잠을 푹 자지 못해 힘들었다. 기다림의 시간. 시간 밖에 방법이 없었다. 며칠 뒤 드디어 담당의의 오더가 떨어졌고 코켄을 제거할 수 있었다. 코켄을 제거하고 절개부위를 꿰매는 수술을 받았는데 이번엔 목 주위만 부분 마취를 하고 받았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라 그런지 수술실 안에는 잔잔한 피아노 곡이 흘러나왔고 천막으로 가려져서 의사 선생님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의사 선생님도 여유가 넘치셨다. 예쁘게 해 주신다며 나름 신경을 많이 쓰신 듯했고 음악을 따라 흥얼거리며 간호사들과 간단한 대화도 나누었다. 분위기가 편안해서일까? 얼굴 아래로 뜨거운 김과 함께 타는 냄새가 조금 올라왔지만 견딜 수 있었다.


 한 달 정도가 지났을까? 오랜 기다림 끝에 다리수술을 받았다. 이번엔 다리에 매달린 추를 제거하고 핀으로 고정하는 수술이었다. 추를 매단 기계에 자꾸 사타구니가 쓸려 아프고 자세가 불편했기에 수술만 하면 자유로워질 것이라 생각했을 뿐, 수술 이후의 재활에 대한 건 생각지도 못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길은 언제나 무섭고 떨린다. 그래도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가...? 과정을 알아서 그런가...? 많이 당황스럽지는 않다. 마취 주사가 들어가면 스르륵 잠이 들것이고, 깨면 수술이 끝난 것이다. 그 후의 몫은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겠지...

 

 다른 수술과 달리 다리 수술은 수술 후의 고통이 엄청났다. 다리를 도려내고 싶은 통증. 통증으로 잠을 잘 수 없어 꼬박 밤을 새우기도 했다. 무통주사를 연신 누르고, 진통제 주사를 맞아도 다리가 차바퀴에 깔린 듯 아프다. 몽롱한 정신으로 잠을 한숨도 못 잔 채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창 밖에 동이 트고 있었다. 붉은색, 주황색, 자주색, 보라색, 겹겹이 그러데이션을 준 듯 하늘은 그렇게 여러 빛을 품으며 밝아지고 있었다. 그때의 느낌이란... 무언가 뭉클하고 감동적이면서도 차분했고 고요했다. 세상은 어김없이 내가 어찌 되었든 자연의 섭리대로 돌아간다.


 다리 수술을 받고 셋째 날에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상태를 체크했고 갑자기 나의 다리를 구부리셨다. 오랫동안 구부리지 않아 굳어진 다리를 억지로 밀어붙이며 굽히는데... 세상에... 뼈가 꺾이는 고통이 이런 건가 싶다. 다칠 때도 이렇게 아프진 않았다. 우두득 내 무릎이 꺾이면서 소리가 났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비명을 질렀고 간호를 해주었던 남자친구의 손을 세게 꽉 잡았다. 남자친구도 아파서 소리가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있는 힘을 다해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쪽 다리를 이용해서 베개가 있는 곳까지 뒤로 뒤로 몸을 젖히며 움직여 갔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의 단호하고 거친 힘을 당하지는 못했다. 한 30도 정도 꺾었을까?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억지로라도 굽히지 않으면 그대로 굳을 수 있다고 어쩔 수 없다고 말하셨다. 뻗정다리 되지 않으려면... 굽힐 수밖에... 지금 생각해도 그 고통은 출산의 고통보다 크다. 출산을 하라면 더했고, 수술을 받으라면 또 받았지 그 다리 꺾기는 도저히 공포스러워서 못하겠다. 지옥과도 같은 재활. 아직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다음 날 또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다리를 한 번 더 굽히셨다. 당연히 고통에 몸부림치실 걸 아시는지 이번에도 예고 없이 한순간에 '팍'이었다. 나는 또 당했다. 내 단전에서 나오는 그 칼날 같은 비명으로 병실이며 복도며 시끄러웠고, 나를 구경한다고 다른 병실에서 사람들이 오기도 했다. 그때 남자친구가 "무슨 구경 났어요?" 하며 가시라고 말했다.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사람. 나는 다리꺾기 지옥을 경험할 때면 한 시간을 넘게 울었다. 너무너무 공포스러워서 계속 바들바들 떨었다.


 의사 선생님이 오시면 이제는 자동적으로 방어자세가 된다. 언제 불시에 꺾을지 모르니 긴장했다. 도망이라 가고 싶었다. 그러나 여지없이 의사 선생님은 세 번째 꺾기를 시행하셨고 나는 또 지옥을 맛보았다. 나를 위해서라는 건 알지만, 그 무릎꺾기는 정말 트라우마 그 자체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렇게 무릎을 꺾고 가시면 안 굽혀지던 무릎이 서서히 굽혀지면서 각도가 나왔다. 겨우 90도 의자에 앉을 수 있는 각도까지 나오자 공포의 무릎꺾기는 중단되었다. 마지막으로 회진을 도실 때는 그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고 죄송했다고 인사를 드렸다.


 수술 흉터가 있던 부위는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간지러웠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붕대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긁었는데 딱지 같은 게 느껴졌다. '이게 뭐지?' 하며 살짝 붕대를 내려보니 큰 스템플러 심이 보였다. '오 마이 갓!' 내 살에 스템플러심이 다다다다 찍혀있는 것이다. 다치고 나서 내 얼굴이나 다리의 흉터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흉터가 그리 길진 않았다는 것이지만...


 어느 날 병실에 누워있는데 친척 언니가 병문안을 왔다. 나보다 6살쯤 많은 그 언니는 나에게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언니에게 "내 손금을 보면, 나는 생명선이 길어서 오래산데..."라는 말을 했다. 말 같지도 않은 말로 어물쩍 넘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우연히 언니와 티브이에서 나오는 뉴스를 같이 봤다. 최진실 배우가 자살을 했다는 뉴스였다. 그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고 6인실에 있던 병실 사람들은 그 뉴스를 보고 한 마디씩을 보탰다. 죽을 사람은 죽을 운명이라는 둥, 남편이 가정폭력을 했다는 둥, 인생이 허무하다는 둥... 그 뉴스가 나에게는 더 크게 와닿았다. 나는 삶과 죽음의 줄타기에서 한 끗 차이로 삶 쪽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안도감이 파도를 타고 밀려왔다.


 어쨌든, 재활의 시간은 검질기게 나를 따라다녔다. 큰 대학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재활 전문병원으로 전원을 한 후에도 재활은 계속되었다. 일어서는 것, 걷는 것, 먹는 것 모두 아기 때 배우 것처럼 천천히 배웠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나아져갔다. 내가 몰랐던 사소하지만 너무나 중요한 것들. 나는 그동안 이런 것들을 무시한 채 지내왔다. 당연히 할 수 있었던 일들이... 한 순간에 모든 것들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리니, 그제야 모든 것들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네가 죽지 않고 살아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하늘에 감사해.
네가 다시 살아줘서 고마워.
그리고 네가 살아주었기에 가족들과 친구들도 살 수 있었어.
너의 손을 꼭 잡고,
너를 기다려 준 모든 이들을 위해...
네가 '삶'으로 보답해 주자.
너의 '삶'으로 그 상처를 위로해 주자.
너를 누구보다 사랑해.
끔찍했던 그 재활도 잘 견뎌주었으니
너는 이제 두려울 것 없어.

"너에게
매일 기적이 찾아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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