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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또 삶 Aug 11. 2023

에필로그. 참회와 용서 그리고 감사

이제야 보이는 것들.


 한 없이 낮아지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때, 처참한 그 순간에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마음이 빈집처럼 공허하고 이유 없이 눈물이 흘러 도저히 멈춰지지가 않을 때, 나는 그제야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한다. 제발... 제발 좀 이 진득진득한 늪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늘 하던 운전이 살짝 두려워진 어느 날. 그래도 용기를 내 숨을 고르며 차를 몰았다. 운전하며 언니가 들어보라며 보내주었던 '은혜'라는 곡이 생각나 잔잔히 들어본 순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은혜> -손경민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 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


 병원을 퇴원하고 동생의 권유로 교회에도 몇 번 가보고 친한 언니를 따라 서울에 마커스워십이 있는 큰 교회에도 가본 적이 있다. 그런데 좀처럼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 뭐랄까... '믿음'이 뭔지도 모르겠고 와닿지가 않는 느낌이었다. 친한 언니도 과거에 상처가 많았 언니였는데 어느 날 '믿음'이 생겼고, 그 이후부터는 흔들림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든든한 하나님이 있다며 한층 평온해진 모습으로 나를 대했다. 그런데 믿음이란 게 믿어야지 하고 믿어지는 것일까?... 노력한다고 믿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 후로 나는 그냥 힘들 때 가끔 CCM을 들었고 또 괜찮아지면 듣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슴에 손을 얹게 되었고 참회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건 내가 생각해서 한 행동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한 행동이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볼 일을 보고 다시 집에 돌아와서도 이상한 경험을 했다. 사랑에 빠졌을 때의 충만함. 현기증이 날 정도의 저릿저릿함. 사랑으로 넘쳐나고 진정한 사랑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도파민이나 엔도르핀이 막 뿜어져 나오는 것 같고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출산을 했을 때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의 사랑이 가슴속에 채워지고 만인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영화 <아멜리아>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처럼 누군가를 돕고 행복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솟아났다. 나는 이런 기분이 뭔지 몰라 동생에게 두서없이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동생은...

"누나 은혜를 받은 거야. 누나는 영성이 굉장히 높은 사람인가 보다"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친한 언니에게도 전화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그 언니도 같은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믿음'은 '믿어야지'가 아니라 '믿어지는 것'이라며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나는 종교에 대한 것은 아직 잘 몰라 다는 이해하지 못하고 끊었다.


 동생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생겼다. 

"누나. 내가 언제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알아?"

"언젠데?"

"누나가... 그때 사고가 났었을 때. 진실되게 하나님 살려달라고 빌었어. 그리고 누나가 살아 돌아왔고, 나는 그때 믿음이 생겼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무언가로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왔고, 나는 동생에게 

"미안해... 누나가 그때 다쳤을 때 너는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했어. 어린 너에게 상처를 줘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너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싶어..." 

하며 오열의 전화 통화를 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시간이 많이 지나 늦은 감이 있지만... 꼭 부모님께도 사과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그 얘기를 꺼낼 수도 없었고, 꺼내려고 하면 눈물부터 날게 뻔하니까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그냥 지금 건강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십몇 년을 지냈다. 그런데... 부모님이 돌아가시 분명 후회할게 뻔하다. 살아가실 때 꼭 사과를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아빠... 그때. 내가 다쳤을 때, 엄마 아빠에게 정말 큰 상처를 드려서 죄송해요. 많이 힘드셨죠? 이제 앞으로 잘할게요.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리고 앞으로 제가 엄마 아빠 잘 챙길게요. 사랑해요." 

그랬더니 부모님은 괜찮다며 다 이해한다며 나를 토닥여주셨다. 내 마음속 자물쇠가 '턱'하니 풀리며 그동안의 아픔들에 치유의 손길이 닿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엄마에게 "용서할게"라는 말을 듣고 싶다며 한 번만 더 말해달라고 했고 엄마는 주저하지 않고 그 말을 해주셨다. 다행이었다. 안도감이 내 전신으로 퍼져 살짝 다리의 힘이 풀렸다. 사과와 용서... 지금이라도 할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그리고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언니. 그때 많이 충격적이고 무섭고 힘들었을 텐데 수술동의서에 사인도 하고, 내 옆에서 간병해 줘서 정말 고마워. 언니 덕분에 건강해질 수 있었어. 그 시간 동안 언니도 잘 견뎌줘서 고마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줘서 정말 미안해. 많이 고맙고 사랑해."

언니도 나에게 괜찮다며 지난날들을 용서해 주었다.


 한 번이 어려울 뿐이지, 그다음은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남편에게도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많이 부족하고, 항상 감정기복이 있고 그런데도 뭐라고 타박하지 않고, 채근하지 않고 옆에서 한결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남편은 쑥스러움에 허허 웃고 말았지만 마음은 잘 전달이 되었는지 어색해하면서도 수줍은 미소로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남편은 나와 달리 고요하고 차분하고 이성적인 사람이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낯설고 차가운 사람이라 생각해서 서운할 때도 있었는데, 나의 마음이 요동을 쳐도 한결같이 잡아주는 남편이 있었기에... 같이 파도를 타지 않고 함께 고요해질 수 있었. 표현은 서툴러도 내가 사랑한다고 하면 사랑한다고 얘기해 주고, 내가 안아달라고 하면 안아주는 그런 따뜻한 사람이 남편이다. 내가 과거에 어떤 상처가 있고, 아무리 몸에 크고 작은 흉터가 있어도... 그저 그냥 개의치 않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 그런 고마운 사람. 내가 존경하고 닮고 싶은 그런 사람. 고맙다는 말로도 부족한 그런 사람.


 참회. 그리고 진정한 사과와 용서. 이 과정을 지금이라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것이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에서 시작했을 수도 있고, 우연히 듣게 된 노래가 나의 마음을 울려서 일 수도 있고, 혹은 항우울제를 먹으면서 상태가 좋아져서 일수도 있지만, 나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충만함을 느꼈고 비록 그런 혼미하고 충만한 기분의 사랑의 떨림은 며칠간 머물고 잠잠해졌지만 난 더 큰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저 잔잔히... 묵묵하게... 지금의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지내고 싶다.


이제야 알고 보이는 것들.


많이... 그리고 자주 넘어져 왔기에,
또 그만큼 더  잘 일어설 수 있었을거야.
많이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는,
연하지만 강한 생명력을 지닌
그런 줄기같아 -
앞으로도 그럴거야..
수 없이 넘어지고 부러질것처럼 아픈 날도 있을거야.
그러나 너는 알잖아 ...
그게 끝이 결코 아니란 것을
잠식되지 말자,
너에겐 잠재되어있는 힘이 있어.
다시 또 충분히 일어설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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