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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또 삶 Jul 28. 2023

11. 다치고 1년 후...

그래서 그와 나는...

 1년 여 정도의 시간 동안 수술과 재활의 반복이었다. 이제 수술은 아무것도 아닌 일 같이 느껴졌다. 나아질 수만 있다면 두렵지 않았다. 대학병원에서 6개월, 재활병원에서 6개월 정도를 보냈다. 어느 정도 사람 구실할 수 있는 몸 상태로 많이 호전이 되어 입원 없이 외래 진료만 다니게 되었다.

 

 다치고 한 달쯤 되었을 때 의사 선생님이 최소 6개월은 병원 생활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그냥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했다. 6개월의 시간 동안 그를 붙잡아 두는 것이 미안했다. 죄책감과 양심이었을까... 그는 상관없다며 내 병간호를 해주겠노라... 했다. 부모님은 일을 하셔야 하고, 언니도 그 당시에는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염치가 없었지만 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의 대소변을 받아주었고, 나의 손발이 되어주었다. 처음엔 나의 추잡하고 더러운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사람이 야생동물에 가까운 극한의 상황에 처하니 부끄러움이고 뭐고 따질 때가 아니었다.


 6개월이란 것은 대학병원의 입원기간이었고, 재활 병원에서 6개월을 더 보냈다. 그는 그 시간 동안 묵묵히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었다. 함께 기뻐하고 슬퍼했다. 무릎 굽히는 각도가 나오지 않아 그의 집에 큰 간이 욕탕을 만들어 놓고 온수를 받아 그 안에서 굽히기 재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나와 함께 병원에서 생활하는 동안 귀동냥한 지식으로 준재활치료사가 된 듯 나의 재활을 도와주었다. 매일매일 각도가 더 나오길 바라며 재활을 했고, 완벽히는 아니지만 생활에 불편함 없이 무릎을 굽힐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완전히 무릎을 굽힐 수 있게 되었을 땐, 우리는 헤어져 있었다. 헤어졌지만, 그 시간 동안 우리가 얼마나 재활에 목매달며 노력했었는지... 무릎이 완전히 굽혀지길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나는 무릎을 꿇어 발뒤꿈치가 엉덩이에 닿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그에게 보냈다. 고맙다며... 모든 것은 다 그의 덕이라며 메시지를 보냈고, 그는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그와 완전히 헤어질 수 있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그를 사랑이라는 포장으로 붙잡았던 건 나의 이기심이었고 나의 집착과 증오 그리고 배신감이었다. 사랑이 아니었다. 알고는 있지만 헤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헤어진다는 상상을 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듯 가슴이 쿵 내려앉았고, 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함께 있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헤어짐으로 우리의 상처와 아픔이 잊히게 될까 두려웠다. 지운 아이도, 배신당한 내 마음도... 그냥 잊힐 것 같았다. 해결되지 않은 찝찝하고 답답한 그 느낌. 그렇다고 헤어지지 않고 함께 한다고 해피엔딩으로 결혼을 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게 가능했을까? 그것도 아니다. 그냥 서로 암묵적으로 '끝'인걸 알았다. 다만, 그 시기를 주저주저했을 뿐.


 다리 핀 제거 수술로 다시 대학 병원에 입원한 날. 무슨 이유였는지 그에게 또 화가 나 '당장 나가!', '헤어져!' 라며 소리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그가 정말 가버릴 줄 몰랐다. 여느 때처럼 다시 돌아와 나를 달래고 다시 잘 지낼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이 기회다!'라고 생각한 것처럼 그는 바로 사라져 버렸다. 다음 날 수술인데... 그가 오겠지... 오겠지... 하며 기다리는데 정말 그가 오지 않았다. 밤 10시쯤 나는 몰래 환자복 그대로 밖을 나와 택시를 타고 그의 집 앞까지 갔다. 그는 밖으로 나왔고, 나에게 돌아가지 않으리라 말했다. 우리는 이제 끝이라며... 내가 재활이 어느 정도 끝나면 헤어질 생각이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나는 우리의 끝을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선고받듯 그런 식의 이별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 몸을 망가뜨린 건 나지만... 그래서 나의 잘못이 크다는 건 스스로도 알지만... 이제 나와 헤어지면 멀쩡히, 나보다는 건강하게 살아갈 그가 얄미웠다. 나만 만신창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화가 치밀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나는 그에게 말로 상처를 주었고 그는 집으로 다시 휙 하니 들어가 버렸다. 나는 그의 집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고 결국 그의 아버지가 나와 나에게 돌아가라고 했다.


 나의 잘못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자꾸만 커져가는 그 잘못들을 어디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자꾸만 생채기를 만들고 덧나고를 반복했다. 차라리 잘 되었다. 누군가의 개입 없이는 '끝'이 어려웠다. 그의 아버지의 등장으로 우리는 헤어짐이 공식화되었고, 수술을 받고 퇴원하고 그에게 연락했을 땐 이미 그는 인도로 사라져 버린 후였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게 그냥 사라져 버린 것이다. 먼지처럼. 다른 여자와 몸을 섞은 그곳으로 또다시 도피를 갔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 거겠지... 자기의 죄책감의 무게만큼 내 병간호를 하고 그리고 사라져 버린 것이겠지. 나는 그가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아니, 그 이상으로 했다고 생각한다. 가족들도 1년 간의 병간호는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냥 무책임하게 나를 떠나가도 누구도 나무랄 사람이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의 부추김으로 옥상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아이를 지운 것도 둘 모두의 책임이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람피운 것? 그건 그의 잘못이 맞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렸기에 그가 나를 떠났어도... 누구 하나 책임을 묻지 않았을 것이다. 무서워서 도망갔다고 하면 끝일 것이니까... 하지만 그는 내가 나아지길 기다렸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떠났다. 그의 최선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럼 굿바이.         


그와 헤어지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아.
너도 그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연의 끈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겠지.
단순히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떠나서
그는 너의 세계였고, 너의 친구였고, 너의 가족이나 다름없었을 테니까...
상처를 준 사람인 동시에 네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사람이고 너의 밑바닥까지 본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계속 의지하다 못해 그 선을 넘어 동화되려 했을 거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너를 점점 잃어갔을 테지.
헤어짐이 답이라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듯 돌이키기 어려웠을 거고.
처음이라 더욱더 힘들었을 거야.
모든 것이 처음이라 괴롭고 서툴렀을 거야.
그가 그의 최선을 다했듯,
그냥 너에게도 얘기해주고 싶어.
너도 너의 최선을 다했어.
더 이상 죄책감에 그만 힘들어하자.
그 시간 속에서 더 이상 머무르지 말자.
그만하면 충분해.
그의 몫은 그가,
너의 몫은 네가.
딱 그만큼만 하자.
그리고 이제 가뜬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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