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인과 마케터 사이
대학 시절 나는 마케팅에 관심이 많았다. 전공과는 무관했지만 브랜딩, 마케팅 관련 서적을 찾아보고 강의를 듣곤 했다. 대학 졸업 후 전공과 관련된 회사에 취직을 했지만 나의 적성과 잘 맞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 시장은 나에게 너무 작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더 큰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케터가 되고 싶다기 보단 분야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게 패션광고대행사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매거진도 함께 발행을 하고 있어서 대행사와 매거진 두 가지 일을 같이 배울 수 있었다. 함께 기획에 참여하고 광고주에게 제안을 하고 광고를 수주하고, 미팅을 하러 외근을 가고, 촬영으로 해외 출장도 가고, 이 일이 내게 꽤 잘 맞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그런데 마음속 한편으로 마케터가 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는 평생 후회를 할 것 같았다. 나는 광고연차를 접어두고 스타트업 회사에서 마케터로서의 시작을 결심했다.
광고는 마케팅의 일부이고. 마케터는 전체를 봐야 하는 훨씬 더 넓은 범위의 업무였기에 배워야 할 것 투성이었다. 하지만 출근길이 즐거웠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니 마음이 설레었다.
축구경기를 보는 것과 막상 내가 축구를 플레이하는 것이 완전히 다르듯이 마케터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야근은 더 늘고 만들어야 할 자료들도 산더미였고, 기획하느라 뇌는 풀가동이 필요했으며,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일은 내가 리드하는 이 일을 윗분들께 설득시키는 일이었다. 고객을 설득시키는 일보다 내부 임원들을 설득시키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그들은 우리의 타깃이 아니었으니까.
광고 단어 뜻 하나하나까지 설명을 하며 일을 진행해야 했기에 생각보다 에너지를 많이 써야 되는 부분이었다. 정말 원했던 프로젝트를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자괴감도 들었다.
그래도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반짝반짝 빛나기에 나 역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정적으로 일을 했고, 스스로 후회는 없다. 시장을 제대로 판단했다는 자기 확신과 내가 원하는 일을 했다는 자부심이 늘 함께 했으니까. 그래서 앞으로도 나를 찾는 곳보다는 내가 원하는 곳에 가려고 한다. 제아무리 남들이 어렵다고 말하는 길일 지라도.
언제까지 마케팅 일이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또다시 좋아지는 일이 생기면 그때는 더 적극적으로 도전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보다 나에게 후회가 덜한 삶이 더 중요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