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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장래희망은 무엇인가요?

그때와 다른 선택

by 코지

어렸을 때 장래희망 란에 '회사원'을 적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을 거다. 나 역시도 어릴 적 꿈은 '화가'였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꿈과 다른 '회사원'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어쩌다 장래희망란을 무시한 체 직장인이 되었을까?


나의 경우 처음 회사생활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이유는 나의 사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대학 졸업 후 나는 꿈 많은 몽상가였는데, 온라인 사업 초창기 시절에 전공을 살려 주얼리를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사업을 해보고 싶기도 했고, 평소에 관심이 많던 옷을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기 위해서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아야 내 사업을 해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2-3년 정도 회사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경험을 쌓고자 발을 딛게 되었다.


처음에는 회사생활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내가 사회구성원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돈을 번다는 것이 마냥 기뻤다. 일도 즐기면서 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러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나의 선택과 상관없이 일을 해야 되는 상황이 계속해서 생겨났고, 창업의 길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가볍게 시작한 나의 회사 생활은 어느덧 벗어날 수 없는 쇠사슬처럼 나를 옥죄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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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짐과 부담감이 생긴 것이다. 원래도 사람들 만나기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회사에서 가장 연봉을 많이 주는 파트는 영업이었고, 계속해서 나는 영업파트로 이직을 해갔다. 또래에 비해 연봉은 점점 높아졌지만, 돈을 좇을수록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잃어가며 월급날만 기다리는 현대판 노예가 되어갔다.


연차가 늘어갈수록 여유가 생기기는커녕 괴로움만 커져갔다. 안팎으로 돈 생각만 해야 하는 상황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의 목표와는 다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점점 더 안 좋아진 것이다.

그렇게 7- 8년 차 정도 되었을 때 번아웃이 찾아왔다. 그것도 아주 센 놈으로.


알았던 단어는 생각이 안 나고, 업무에 집중도 안되고, 약간의 대인기피증처럼 사람 만나기가 두렵고, 실수를 할까 봐 겁이 났다.


그 당시에는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 좋던 음악소리조차 소음으로 느껴질 정도로 예민해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지냈다. 유일하게 했던 건 반려견과의 산책이었다. 주말만 오길 바라고 월요일이 지옥 같고 회사는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고.. 나에게 그 시간은 창살 없는 감옥에 있는 것 같았다. 점점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왜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일을 해야 되는 걸까. 도대체 뭘 위해서

악순환의 굴레에 빠진 나는 잠시라도 쉬고 싶었지만 또다시 쉬지 않고 이직을 했다. 더 높은 연봉을 주는 곳으로.


그곳은 업무뿐만 아니라 대인관계 때문에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미 영혼이 사그라든 나에 대해 온갖 말들이 떠돌았다. 동료 상사 할 것 없이 모두가 나에 대해 수군거리기도 했다.

일을 하며 이렇게 맹렬히 비판을 받은 적은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그것도 업무평가가 아닌 태도로.


그동안 직장에서 크게 트러블을 겪지 않았지만 이곳에선 따가운 시선에 피부가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업무도 처음 얘기했던 것과 완전히 달라져서 적응하기도 시간이 꽤 걸렸다. 하루하루 직장생활이 괴롭기만 했다.


어느 날 상무님이 내게 호출을 했다. 나의 업무 능력과 평판이 좋지 않아 이데로는 함께하기 어렵다고 이야기를 했다. 화석 같은 표정으로. 나는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하며, 한 번의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약속했다. 이데로 퇴사하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까.


그 후로 나로서는 피나는 노력 끝에 동료들과의 오해를 풀고 도움을 요청하며 결국 웃으며 일하게 되었다.

제 역할이상을 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직원이 되었을 때 박차고 회사를 나왔다. 붙잡을 때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대표님께 술선물까지 하는 여유를 보이며.


더욱 기막힌 타이밍은 내가 퇴사 후 한 달 만에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회사 경영이 어려워져 인원을 축소하고 급여를 30%나 삭감했다는 것이다. 한 달만 늦게 퇴사를 했어도 회사에서는 올타쿠나 했을 상황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직장인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배움을 놓아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이유로 술과 삼겹살 그리고 한풀이로 퇴근 후 삶을 달랠 시간에 미래를 위해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었다면 조금 더 빨리 퇴사할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물론 가끔은 이런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 빈도가 잦다면 회사생활을 벗어날 수 있는 때와 더 멀어지는 길인 것 같다.


어느덧 나는 13년 차가 되었고 아직도 나의 퇴사 날은 두리뭉실하게 보이지 않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은

술을 마시며 회사 얘기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무언가를 배우고 책을 읽는다는 점이다.


나와 같이 괴롭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진짜 내가 원하는 길을 찾아 괴로운 시간을 줄였으면 한다. 정말 하고 싶은 게 나타났을 때 침대를 벗어날 수 있는 정도의 에너지는 남아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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