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들을 수 있는 기분 나쁜 소리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이명에 대해서 좀더 말해보겠다. 나는 이명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하는데,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어느 날, 오른쪽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삐-하고 3초 정도 기계음 같이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잦아졌다. 처음에는 잘못들은건가 싶었다. 그러다 뜨문뜨문 그 소리가 찾아왔다. 걱정으로 잠을 못 자거나 머리가 복잡한 날엔 더욱 잘 찾아왔고. 그래서 병원을 갔다. 선생님은 청력 검사를 권했다. '메니에르병'이 의심된다고. 왼쪽 귀의 고음역대의 그래프가 평균보다 낮게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메니에르병'은 어지럼증과 청력 저하, 이명 (귀울림), 이충만감(귀가 꽉 찬 느낌)등의 동시에 발현되는 질병이다. 발병 초기에 난청이 저주파수대에서 시작되며, 점차 병이 진행되면서 고음역에서 청력 소실이 발생한다.
검사를 받고 약을 먼저 처방받았다. 한 봉지가 넘는 약을 받아오는데 마음이 시렸다. 누구보다 체력에 자신이 있던 나였는데, 도대체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물론 엄청 큰 병들은 아니었지만 서서히 내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도대체 뭘 위해 건강을 잃어가며 꾸역꾸역 일을 해야 될까.
그날부터 내 몸이 보내는 신호들을 가볍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이명이 생겼을 때가 권고사직을 당하기 바로 전쯤이다.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이렀을 때라 멀쩡한게 이상할 정도 였다. 권고사직 이후에 2개월 정도는 두다리 뻗고 맘편하게 보냈다. 그러다 딱 두달이 지나자 불안감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통장의 잔고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제 마음의 여유도 쫄아들기 시작한것이다.
결국 내키지 않는 제안의 회사로 입사를 선택했다. 실업급여도 포기한 채 안정적인 월급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처음부터 내키지 않는 일을 좋아하게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결국 입사한 지 2달 만에 이명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회사 보다 더 강력하게 자주.
그렇게 5개월을 버티다 퇴사를 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일은 성급하게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때론 나를 믿어주고 버텨야 될 때가 있다는 것을.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지금은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이명이 와도 약하게 나타나는 느낌이다.
따지고 보면 예전보다는 스트레스가 80%이상 줄은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출퇴근길 지옥철, 의미 없는 회의, 울화통 터지는 사람등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물론 예전보다는 급여도 낮아졌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내 청력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는 내게 말이 많다. 너는 에이전시 일을 해야 된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법을 알면서도 안 한다. 등등 나는 그 말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내게 이명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니까. 겉으로 봤을 때 돈은 많이 벌었던 일들이지만 나의 기질과 제일 맞지 않고 괴로웠던 일들이었으니까. 돈과 상관없이 내 자존감이 편하지 않았던 날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말들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
처음이 어렵다고 프리랜서로 2년 차를 살게 되니 일이 없어서 불안해질 때쯤 배가 닿을 내리듯이 중심을 잡으려는 기술이 생겼다. 불안한 마음이 와도 곧 달릴 나 자신을 아니까 잠깐 쉬어가자고 쉬는 시간도 내어주고. 지금까지 켜켜이 쌓인 경험의 축적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나를 믿고 지켜봐 주려고 한다. 나에게만 들리는 기분 나쁜 그 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말끔하게 사라지는 날이 하루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