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못 읽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어릴 적 어린 마음에 친구들이 부러웠던 몇 가지 항목 중의 하나가 바로 만화책이었습니다. 집에 만화책 몇 권을 가지고 있다든지, 아니면 동네 여기저기 볼 수 있던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더 부러운 것은 월간잡지를 보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매달 다른 내용의 만화를 볼 수 있는 데다가 사진, 재밌는 글 내용, 연재되는 만화를 품은 월간지는 향후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창간했다는 어깨동무가 나오면서 정점을 찍었습니다.
1970년대는 소위 명랑만화의 전성시대였습니다. 꺼벙이의 길창덕 화백, 로봇 찌바의 신문수 화백, 맹꽁이 서당의 윤승운 화백 등이 유명했고 신동우 화백의 이름도 기억납니다. 어른을 위한 시사만화도 제법 인기가 많아서 유명 일간지에는 반드시 네 컷 시사만화가 있었으며 동아일보의 고바우 영감을 연재하던 김성환 화백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동양 고전을 만화로 엮어낸 고우영 화백도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요즘은 책보다 웹툰이 인기라죠? 시대가 바뀌어도 표현 매체만 달라졌을 뿐 만화의 인기는 수그러들 줄 모릅니다. 아마 교육적 효과를 놓고 봐도 만화나 동영상 이상의 효과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만화를 그리도 부러워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단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만화책을 거의 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껏해야 한국사에 관한 만화책 몇 권이 전부일뿐 순정만화, 명랑만화와 같은 만화책은 거의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진 친구들이 더 부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내 아이가 만화를 즐겨 본다 해도 저는 제 아버지처럼 기를 쓰고 말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용을 가려서 볼 아이라는 믿음도 있거니와 좋은 내용도 참 많다는 이유도 있고 마음 한편엔 어린아이들이 보는 그림책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나름의 소신도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나에게 선한 영향을 끼친 책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지금 기억나는 만화책이 없는 걸 보면 만화는 아닌 듯한 데, 더 중요한 것은 활자로 된 책에서도 그다지 기억나는 책도 역시 없다는 점입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면 이 시점에 성경책이라 대답해야 하는데 저의 믿음은 아직 얕디얕은 시냇물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