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배웠던가?
이곳 천안으로 직장을 옮기고 이사까지 마친 덕분에 시간이 날 때마다 근처의 풍경을 둘러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합니다. 생각해 보니 충남은 평소 여기저기 잘 안다고 생각하며 지냈는데 그야말로 나만의 착각이었습니다. 분명히 어릴 적 다녀갔다는데 이상하리만큼 큰 기억은 없고 그저 다녀갔다는 목록 정도로만 남아있는 곳이 많았습니다. 와보고 또 와보는 과정을 몇 번 거쳐야만 기억에 완전히 남을 모양입니다. 하지만 제 기억도 완전히 믿을만한 건 되지 못하여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분명히 긴가민가할지도 모릅니다.
가만히 둘러본 결과 이 근처가 참 아기자기한 동네입니다. 뭐 거창한 구조물이나 명승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스쳐 지나가기에는 아쉬운 곳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 면이 이곳 풍경에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동안 너를 너무 몰라보았구나! 싶고 그나마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마음에 더 담아두어야 미안한 마음이 조금 덜어질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동해나 남해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여겼던 서해에 두고두고 사과해야 할 판입니다. 참 웅장합니다. 문득 우리나라의 지명에 대한 불만도 생겼습니다. 동해시(東海市)나 남해군(南海郡), 해남군(海南郡)은 있는데 왜 서해시(西海市)나 서해군(西海郡)은 없는가, 그냥 황해도(黃海道)가 그 역할을 하는 셈인가? 의문이 든 게 사실입니다.
우리 부부는 종종 근처에 있는 현충사에 종종 들르곤 합니다. 뭐 사당을 들른다는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주변 조경이 너무 예뻐서입니다. 자연적인 멋과 인공적인 멋이 묘하게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특별히 배롱나무를 좋아하는 아내는 활짝 핀 꽃을 볼 때마다 내내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하지만 올해에는 무슨 이유인지 꽃이 그다지 풍성하지 않아 아쉬움만 삼키는 중입니다.
현충사 입구를 지날 때마다 귀와 눈에 익은 현판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도 해보려 합니다. 바로 ‘충무교육원’입니다. 지금은 어떤 목적으로 활용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여태껏 이름이 남은 걸 보면 무슨 기능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충무교육원에 대한 내 기억은 고등학교 2학년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전국에 산재한 모든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일정 기준으로 선발된 몇 명의 학생을 모아 6일간 교육했습니다. 학년당 10개의 학급이 있어서 우리 학교에서도 10명이 선발되어 5월에 입소하여 훈련받았습니다. 그리 엄격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느슨하지도 않은 군사훈련 정도의 교육이었습니다.
과연 고등학생에게 이런 성격의 교육이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왜 소수의 학생에게만 교육할까? 많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동기 친구들은 지금 학과 진도를 위해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을 이 시간에 이런 교육이나 훈련으로 시간을 빼앗긴다는 사실이 많이 약 오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정신교육이나 군사훈련이 우리에게 득이 될 리는 만무합니다. 그나마 위로라고 떠도는 소문이라야 고3 때 학도호국단 임원에 우선 뽑힌다더라, 사회에 나가 입사원서 작성할 때 이력으로 작용하여 가산점을 얻는다더라, 이런 정도였는데 사실로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단언하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 학교에서 상을 받은 2명 중에 제가 포함되었는데 그 아무것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권의 희생양 정도가 아니었나 생각하는 중입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여긴다 해도 지금껏 충무교육원 커리큘럼의 덕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른으로서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이는 지식이나 교과서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사물을 보고 생각하고 사유하는 능력, 내 지식과 능력을 사물이나 사안에 올바로 적용하는 정신적 교감, 사람과 주변을 배려하는 감성 이런 것들을 제대로 갖추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어른이 맑아야 아이들이 맑을 텐데 과연 자신 있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십중팔구 우물쭈물할 것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