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에게 곁을 좀 내어 줘!
여름의 초입부터 시작한 장마가 물러가고 한동안 뜨겁디 뜨건 날을 좀 즐기는구나 싶더니 반갑지 않은 가을장마라는 이름으로 비 오는 날이 잦았습니다. 기상청 자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8월 끝자락부터 10월까지 그 기간을 넓게 정의한 걸로 봐서는 그만큼 궂은날도 많다는 뜻일 겁니다. 사실 이 나이 되도록 가을장마라는 용어에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았는데 여기저기 찾다 보니 그 어원이 고려시대까지 올라가 있었습니다.
비의 필요성은 이미 익히 알고 있지만 사실 비 올 때의 불편함이라든지 우중충한 느낌은 그다지 유쾌함은 아닙니다. 물기에 무거워져 축 늘어진 나뭇가지, 푹 젖어 나는 것조차 버거운 새들의 모양이 우리의 마음을 대신합니다. 月亮代表我的心이라는 노래가 문득 떠오릅니다. 이 노래 제목으로 말의 유희를 한번 부려볼 참입니다. 雨香代表我的心 정도 됩니다.
그냥 우리의 감성을 뒤흔든다는 이유 정도로 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그것만으로 싫어한다고 장담하지 못할 일이 여럿 있기는 합니다. 제가 아는 몇몇 분은 비 오는 소리를 정말 귀신처럼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거의 돌고래 소리를 토해 냅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비가 그리도 좋답니다. 떨어지는 비의 韻律이 그렇게 평안할 수가 없답니다. 이외에도 설교나 예화를 통해 수없이 들어온 모죽(毛竹)의 이야기는 거의 외울 정도입니다. 雨後竹筍의 원천이 되는 그 대나무 말입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비 내리는 날은 나에게 불편함, 그 자체입니다. 특히 대학 본과 시절, 무거운 책가방도 버거운 판에 우산 하나의 무게는 저울로 잴 수 있는 무게 이상이었습니다. 더구나 도로 정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의학관 주변을 들어서면 흙과 고인 물이 빚어낸 장벽의 결정체였습니다. 이렇듯 내 뇌리 깊숙이 박힌 불편감은 지금 나이가 어지간히 들었다고 해서 좋아지고 사랑스러워질 리는 만무합니다. 비가 꼭 필요한 분들께는 크게 혼날 일이지만 말입니다.
이제는 그냥 햇살 좋은 가을날을 좋아하고 품으려고 준비 중입니다. 이미 내 마음의 준비는 끝났습니다. 나락도 익히고, 풍성하게 과일도 익히며 때로는 그 햇살 덕분에 나뭇잎의 얼굴도 화사하게 단장할 그 햇살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격려해 줄 심산입니다. 한 시절 잘 살아냈어. 내년에는 어떤 모습으로 와 줄 예정이야? 조금만 힘을 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자연의 섭리를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오죽하면 이름도 스스로 그러하다며 自然일까요? 그래서 자연 앞에서는 인간의 잘남도 못남도 그다지 귀중하거나 천박하지도 못한 모양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 어떤 색으로 채색될지 기대하고 천천히 기다리는 중입니다. 나는 무슨 색으로 정의될 것인가? 내 열매는 어떻게 열릴 것인가? 기왕이면 다디단 열매로 맺혀 사람들에게 기쁨도 주고, 그 덕분에 씨방도 열려 여기저기 선한 순환이 되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듯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