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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Oct 05. 2023

신춘문예

지금은 더 확장이 되었겠지요.

(이미지출처:시와 수필이 있는 곳) 지방지의 실제 공고문입니다.



21세기라는 시절에 걸맞게 요즘이야 작가로 나설 수 있는 길이 다양해졌습니다만 제 어릴 적만 해도 대형 작가의 추천이나 신춘문예(新春文藝)를 통한 등단 정도가 대세였습니다. 중앙 일간지 등 굵직한 신문사에서 주관하여 문학작품을 공개 모집하고 당선되면 새내기 문학 작가로 등단할 수 있었습니다. 대개 소설(小說) 동화(童話)는 물론 시(詩) 동시(童詩) 시조(時調) 평론(評論)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해당 작품을 공모하고 있습니다. 중앙 일간신문은 물론이고 각 지방에 거점을 둔 일간신문에서도 시행했습니다. 자료를 뒤지다 보니 신춘문예라는 형태는 우리나라 고유의 제도는 아니고 일본에서 맨 처음 시행했고 자연스럽게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우리에게 선보였다고 합니다.     


굳이 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대학 다닐 때 내심 이 신춘문예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계기는 이러합니다. 예과 2학년 시절에 교내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에 작품 하나를 응모한 적이 있습니다. 시(詩)인지 수필인지 가물가물한데 문학과 관련된 학과가 즐비한 종합대학에서 理科 系列, 그것도 의예과 학생의 작품이 당선권에 든다는 건 하늘의 별, 아니 행성 따기보다 더 어려운 일임은 분명한 일이었습니다. 결국은 당선권에 이름도 못 올린 그해 당선작 발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자그마한 의예과 강의실 주변에 약간의 술렁임이 생겼습니다. 국어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1년 후배들이 저를 보며 인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와! 형 대단한데?     


그렇다고 그리 거창한 건 아니고, 당시 심사를 담당하셨던 국어국문학과의 채 모 교수님께서 수업 도중에 하신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자네들 선배 중에 김 욱곤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글을 참 잘 쓰더라. 당선은 못 됐지만 참 탐나는 재주를 가졌어. 덕분에 한동안 과에서 유명 인사처럼 관심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에 맞물려 당시 저와 같은 학번의 국어국문학과 학생 한 명이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詩)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는 소식이 교내에 떠돌았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이름만 대면 많은 이들이 알아내는 위치에 와 있습니다.    

      

그냥 제가 게으른 탓에, 저의 활동은 그냥 그랬다더라,라는 정도에서 끝을 맺습니다. 괜한 겉멋에 그해 굵직한 D 일보에 단편소설 부문으로 응모했지만, 오히려 당선된다는 일이 더 부끄러운 일일 뻔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내게 다가온 본과 시절, 양과 질에 치이던 공부와 수업과 시험의 연속, 그리고 인턴과 레지던트의 생활도 그 이유였지만 누구 하나 글을 써볼 생각은 없느냐는 자극을 받아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 그리하리라 결심해 본 적도 없었던 듯합니다.        



  

이처럼 개인적인 삶의 여정(旅程)은 예측이 불가합니다. 의대를 입학할 당시만 해도 내가 무슨 과 의사가 될지, 어떤 형태로 근무하게 될지 나도 모르고 그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이 나이가 되도록 무엇에 관심을 두며 어느 것에 재미 붙이고 사는지 나 자신도 모르는 시절을 보냅니다. 그리 살다 보니 이제는 내가 밟아본 적 없는 작가의 세계에 조심스레 발끝을 들여보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게 냄새를 맡으면 맡을수록 더 어렵고 겁이 나는 분야임을 또한 절절히 느끼는 중이기도 합니다. 그냥 입맛 다시며 조그만 숟가락 하나 내밀면 저절로 내게 따라오는 간식 같은 분야는 절대 아니올시다. 재료도 준비해야 하고, 잘 다듬기도 해야 하며, 걸맞은 조미료까지 모두 섭렵해야 하는 고수의 요리와도 같은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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