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mination인가? temptation인가?
제 경우 긴 대학 생활의 끝은 의사국가고시가 담당했고, 그보다는 짧지만 나름 길었던 수련 과정의 끝에는 전문의 자격시험이 맡습니다. 의사국가고시는 용산의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전문의 1차 시험은 서울고등학교, 2차 구술고사는 혜화동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용산구 청파로에 있기에 남영역을 지나다 보면 가끔 국가고시를 마치고 동기들과 우르르 몰려나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제 예배 후에도 그 기억을 아내에게 이야기했다가 살짝 핀잔을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몇십 년 전의 일을 아직도 하고 있어? 도대체 같은 얘기를 도대체 몇 번이나 하는 거야?
전문의 자격시험을 준비하다 보면 같은 지역 내 수련병원의 수험생 선생들과 막판의 준비를 같이 합니다. 일종의 전통입니다. 정보도 공유하고 무엇보다도 같은 중압감을 덜고자 하는 이유가 조금 더 큽니다. 1차 시험인 필기고사만 해도 같은 시간에 치고 같이 귀향했지만, 구술시험은 조금 다릅니다. 오전과 오후로 나뉘었습니다. 6명의 동기 중 저만 오전반에 편성되고 나머지 다섯은 오후에 편성됐습니다. 가나다순으로 하다 보니 김 씨인 저는 오전반이고 오, 위, 이, 조, 최 씨는 모두 오후반이었습니다.
시험을 모두 마치니 오후 1시가 되었고 그 시간 오후반은 다른 문으로 입장하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간에 차표를 끊었기에 저는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대학로를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샘터사 건물이 근방에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예상보다 수많은 연극공연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인사동도 구경하고 돌아다니다가 당시 어린 아들의 선물도 샀던 기억이 납니다. 시험을 잘 봤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그렇게 여유를 부렸던 그 시간 말입니다.
일이 버겁고 문득문득 과거의 추억이 떠오를 때면 이 기억의 순위가 내게는 제법 높은 편에 속합니다. 아마도 내 삶의 방편이 결정된 시험이기에 그럴 것입니다. 내 삶이 의사가 아니라 다른 방편이었다면 나는 지금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삶에 가정(假定)처럼 의미 없는 일도 없겠지만, 상상은 나에게 때론 미소로, 때론 아쉬움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이 얼마나 광범위한 스펙트럼이란 말입니까? 그렇다고 딱히 대체할 만한 관심 분야는 없지만 그래도 애써 찾다 보면 나를 즐겁게 하는 게 하나둘은 반드시 있습니다.
어릴 때 저는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교사이든 교수든 간에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사실이 재미날 거 같았습니다. 보람도 있어 보였고 초롱초롱한 학생들의 눈망울이 나를 행복하게 할 거 같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보았는데 이러한 내 생각이 현실과 많이 상충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강의를 잘 들어주는 학생보다 딴청 피우는 학생이 먼저 들어오고 거슬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선생 되기를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요즘은 그런 생각도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목표를 향해 내가 해야 할 노력은 기본이려니와, 포기해야 할걸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인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모두 어려움으로 다가올 건 뻔한 이치입니다. 그것이 시험이고 공부가 필요한 일이라 할지라도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감당해야 하는 게 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