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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May 08. 2024

늦은 봄 기억하는 새벽 송

그 귀하고 불편한 추억

(이미지출처:남쪽 바람은 따뜻해 (南風之薰兮)) 그 추억의 이름


지금과 같은 날, 성탄절에 새벽 송을 다닌다는 건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기에 십상입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만 해도 친구들과 선배들에 묻혀 새벽바람을 가르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었습니다. 여학생들에게 말 한마디 못 붙여보던 중, 고등학생 시절, 그나마 말이라도 해볼 수 있었던 흔치 않은 기회였던 셈이니 새벽 송이 있던 날이면 예수 탄생을 전한다는 기쁨, 그 이상의 기회이고 기대감이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 엄한 아버지 밑에서 새벽 송을 따라다닌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하던 고등학교를 지내고 대학생이 되어서야 겨우 따라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예과 시절에나 가능했고 본과에 진입하고 나서는 여러 사정으로 새벽 송은 없어졌습니다.     


새벽 송의 곡이야 많아 봤자 몇 곡이나 되었겠습니까? 이 집 저 집, 서로 다르게 몇 곡 부르다 보면 서서히 그 끝이 보입니다. 주로 골목이나 막다른 길에 위치하던 교인들의 집 위치를 미리 확보하고, 예정 명단에 없던 교회 명패를 보고 또 불러드리다 보면 시내 다른 교회의 팀들과도 조우(遭遇)하게 됩니다. 교우들은 애쓴다며 간식을 준비했고 준비하지 못한 집은 손에 간식비를 건네주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A 교회의 새벽 송인데 옆집인 B 교회 성도가 반겨주기도 했고 소속 교회를 서로 확인하지 않으면 애써 준비한 간식이 엉뚱한 팀에게 건네지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담임목사님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성도들이 불만을 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잠을 잘 수가 없다, 꼭 간식을 준비해야 하느냐는 불만은 물론, 옆집은 불자(佛者)인데 하마터면 의가 상할 뻔했다, 아파트 복도에서 노래하면 그 소리가 울리니 주변에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다, 등등 그 유형은 우리가 상상한 거 이상으로 다양하게 표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주일에 울리는 교회 종소리가 시민들의 불만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이었으니 담임목사님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터입니다. 아이들을 새벽 송으로 보낸 부모들의 불만도 표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꼭 밤을 새워야 하느냐, 남녀가 유별한데 그 시간까지 몰려다녀야 하느냐?     


마음을 넓게 먹어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렇게까지?”라며 반박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저부터도 어릴 때는 그런 생각을 했지요. 하지만 세월이 지나 부모가 되고 나니 무슨 마음인지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결국 그 이후로 새벽 송은 없어졌고 전반적인 교인들의 반응도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낫다고 했습니다.     


젊은이들의 마음이야 폐지되어 섭섭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마는, 사실 폐지를 결정하기까지 겪었을 어른들의 고민과 고뇌가 마음으로 더 다가왔습니다. 본질은 어디 가고 부작용만 더 부각하는 새벽 송은 차라리 없어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개선의 여지는 없었을까? 설득할 수는 없었을까? 싶다가도 그 과정이 만만치는 않았겠구나, 싶어서 마음을 고쳐먹게 됩니다.          



예수의 탄생을 노래로 전하고 알리던 새벽 송의 기억은 이렇게 씁쓸함과 추억으로만 남았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런 추억을 이야기하면 과연 어떤 느낌으로 전해질까요? 그것이 좋은 의도이건, 좋은 의미이건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불편함으로 남는다면 방법이나 방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을 테고,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면 아예 포기할 줄 아는 과단성도 때로는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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