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욱곤 May 16. 2024

생선에 대한 양가감정

좋다가, 싫다가

(이미지출처: 수산한 언니) 이 정도면 많이 먹을 수 있죠.


요즘이나 되니까 회식은 물론이고 가족끼리 식사하러 나가면 회나 일식을 곧잘 먹고 두 손 들어 환영하곤 하지만, 어릴 적부터 회나 초밥은 비싸서 못 먹고 물고기는 비린내 때문에, 그다지 좋아하는 메뉴는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 부엌을 들여다보고는 생선찌개나 매운탕이 나오는 날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습니다. 직업상 술을 드셔야 했던 아버지야 속풀이로 그런 종류를 좋아하셨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 특유의 비릿함이 내내 거슬려 기껏해야 고기 살이나 떼어먹을 정도로 마무리하기 일쑤였습니다.    

 

가끔 친구분들과 낚시라도 다녀오시는 날이면 그날은 반드시 찌개와 조림, 찜이 나오는 날입니다. 민물고기가 가진 특유의 비릿함이 주변을 휘감기도 하고 요리하는 냄새가 골목을 채우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찜이 나오는 날이면 같이 들어간 시래기나 맛있게 맛이 든 무가 내 입을 채웠지만 그마저도 절대 못 먹거나 안 먹는다고 고집 피우지 못한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다행히 어머니의 손맛이 대단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도 굳이 찾아 먹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절대 못 먹는다고 고집을 피우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나마 거의 모든 어린이 입맛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듯 생선구이가 나오는 날은 젓가락이 바빴습니다. 나라 형편은 물론 각 가정의 형편이 가난하기 그지없던 시절, 생선을 구워 먹는 일 자체만으로도 제법 호사(好事)에 속합니다. 연탄불 위에 석쇠가 놓이는 날은 밥상이 언제 들어오나 목 빠지게 기다리는 날입니다. 기껏해야 꽁치 몇 마리만 올라갔을 뿐인데 어머니는 용케도 남매간에 다투지 않게 잘 배분해 주시곤 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이제 생선이나 회 정도는 먹을 수 있는 형편이 되었지만 우리 부부는 집에서 생선 굽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아파트라는 구조가, 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주변 세대에 본의 아니게 연기나 냄새로 폐를 끼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종류의 음식을 먹고 싶으면 차라리 외부 식당에서 사서 먹는 게 훨씬 편합니다. 세대가 바뀌고 형편이 나아졌듯 식사 문화도 바뀌나 봅니다.
 
 광우병 사태가 온 나라를 휩쓸고 일본의 원전 사고가 휩쓸면서 소고기와 생선에 대한 우려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더 나아가 천일염의 고갈 사태가 일어났으니 이 정도면 국민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소고기의 경우는 잘 넘겼다는 생각이 드는 반면, 아직 확실하게 인과관계를 밝히지 못하는 사안도 있지요.   

  

내 어릴 적 골목의 정서, 마을의 정서와는 확연히 다른 요즘 세태를 보면서 내 자손의 시대는 무엇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기대와 희망이 될지, 아니면 우려가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식재료마저도 안심하지 못하는 시절을 보내며 우리 삶의 어느 분야가 안심 zone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사뭇 걱정되는 건 사실입니다. 문명화, 과학화라는 기치 아래 좋아지고 편리해질 일만 생길 것 같지만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걱정도 떠오릅니다.
 
 
 조그마한 실천이 상황을 개선하는 시작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따를 생각입니다. 그것이 생태를 살리고 환경을 개선하는 시발점(始發點)이 된다면 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늦은 봄 기억하는 새벽 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