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대처럼 내 삶은?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을 고르라면 참으로 다양한 대답이 나옵니다. 한 반에 대략 60여 명의 친구들이 있으니 여기저기 나오는 대답들만 추려도 상당한 수가 될 것입니다. 무엇이 제일 부러운가? 묻는다면 저는 두 가지 정도를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는 보이스카우트이고 다른 하나는 고적대입니다. 밴드부라고도 불렸던 고적대는 그 제복은 물론이고 딱딱 떨어지는 행진이 너무도 멋져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악기로 편성되다 보니 가장 무거운 게 큰북 정도이고 작은북, 리코더, 멜로디언 정도로 구성이 되었고 그래서 그 이름도 북 고(鼓) 자와 피리 적(笛) 자를 써서 고적대라 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잘 모르겠고 고등학생이 되니 악기의 종류도 다양해져서 이름도 밴드(Band) 부라고 불렀습니다. 특정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들의 활약은 대단합니다. 고적대나 밴드부의 연주가 없으면 사실 흥도 나지 않고 살짝 격(格)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뭐 당연한 얘기입니다만 고적대는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어야 하고 악기가 겹치면 선발인원이 제한적이니만큼 선발기준에 들어와야 합니다. 심지어 초등학생 시절의 고적대는 한결같이 예쁘고 잘생긴 아이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나 스스로 주눅이 들어서 “나는 안 되겠구나.” 결정해 버린 기억이 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그런 화려함에 매료될 뿐, 늘 놓치는 면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쏟아붓는 노력을 보지 못합니다. 친구들과 노는 시간도 줄여야 하고 하교하는 시간도 늦춰야 하며, 좀 더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공부하는 시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대중들의 박수 뒤에는 본인이 감수해야 할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우리는 쉽게 간과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 대상이 어찌 고적대뿐이겠습니까? 우리 생활의 모든 부분이 모두 그럴 것입니다. 성과를 내거나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그가 이룬 결과에만 관심을 쏟을 뿐, 그가 한 각고의 노력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 자리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쉽게 놓치기 일쑤입니다. 그 결과, 부러워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고 내가 이루지 못한 걸 아쉬워하고 비관하는 일도 생깁니다. 분명 나에게도 잘하는 분야가 있을 텐데 남이 잘하는 것만 부러워하고 남이 이룬 것만 부러워합니다.
내 삶을 한 번 뒤돌아봅니다. 남들에게 멋지게 뽐내기 쉬운 부분에만 내 눈길을 두는 건 아닌지 말입니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내 삶의 방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열왕기서(列王記書)를 묵상하다 보면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왕들 행적이 요약돼 있습니다. 잘한 것과 못한 걸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 기준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바로 다윗왕과 여로보암 왕입니다. 선과 악의 기준점인 셈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이 늘 붙어 다닙니다. 다름이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입니다.
내 보기에 멋진 게 아니요, 오로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살고 있는가? 생각하고 적용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