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어릴 적 소풍의 기억. 그래서 유기방 가옥 수선화를 보고 옵니다.
참으로 단조롭기 그지없는 학창 시절(學窓時節)에 그나마 봄, 가을에 있던 소풍이 없었다면 너무 팍팍한 날이었을 겁니다. 어디로 다녔는지 어렴풋이 기억만 날 뿐 그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소풍날은 학교 다니며 손꼽아 기다리는 몇 안 되는 날에 속합니다. 초등학생들이 가는 곳이라야 먼 곳이 아니고 근처의 산 정도에서 끝나지만 풍경을 감상하는 게 목적이 아니기에 학교 바깥으로 간다는 해방감, 김밥이나마 맛난 도시락과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기대감과 즐거움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면 소풍의 성격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학교 내에도 군사용어가 난무하던 시절을 지내다 보니 소위 학도호국단의 일원인 우리는 행군이라는 이름으로 제법 걸어야 도착하는 곳까지 마냥 걸었고 복장마저도 늘 그렇듯 교련복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소풍 간 곳에서 훈련하는 건 아니었기에 아이들끼리 재미있게 놀다 올 줄 아는 흥겨움은 늘 유지했습니다.
이런 소풍에는 예상치 못한 친구들이 관심을 받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교실에서는 존재감도 없을 정도로 조용하던 아이가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숨겨놓은 끼를 마음껏 발산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그 아이와 친해지는 계기가 되고 그렇게 깔깔대고 웃을 수 있는 친구 하나를 얻게 됩니다.
요즘에도 소풍이 있을까요? 현장학습이라는 이름이 내가 알고 있는 소풍인지요? 아이를 다 키우고 나니 그마저도 모르는 노년이 되어갑니다. 언젠가 봄 소풍을 기다리던 날이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던 해였을 겁니다. 바로 전날 비가 제법 오는 일이 생겼습니다. 들떠 있던 아이들의 기대는 순간 실망감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하교 때까지 정확한 날씨를 예측하지 못하자 선생님은 알림장에 이같이 알려주셨습니다. ‘내일 아침 비가 안 오면 소풍 가방, 비가 오면 책가방.’
지금 돌아보면 소풍 못 간 날이 없으니 그날도 소풍을 갔을 것입니다. 비가 몇 시에 그쳤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날 학교 전화기에 불이 났다는 전설은 남아 있습니다. 덕분에 당일 아침 엄마는 부랴부랴 도시락을 싸느라 제법 바쁘셨습니다.
주변에 소풍 갈 만한 곳이 다양한 지역은 참 복을 많이 받은 곳입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가던 곳을 다시 가는 정도였고 자리 펴는 곳만 조금씩 달라졌을 뿐입니다. 하기야 너무 먼 거리는 가지 않는다는 대원칙에 맞추다 보면 대도시는 물론 관광자원이 많은 곳도 제반 사정은 비슷했을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소풍은 여태 나에게 즐거운 기억임에는 분명합니다.
나이가 들고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마음만 먹어도 잠깐의 일탈이 가능하다면 참 좋겠다!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소풍이 즐거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된다고 해도 가족 이외에는 맘에 맞는 친구나 순수함으로 함께 할 동료가 풍족한 것도 아니기에 이래저래 마음으로 여유를 갖기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처럼 꽃으로 날씨로 좋은 날이 계속되면 터질 것 같은 기대감으로 소풍을 기다리던 어린 날을 떠올립니다. 눈을 들어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그 색감(色感)도 만끽하며 보내면 좋으련만 아직도 사는 거에 얽매여 바쁘고 빡빡한 날을 보내는 중입니다. 그나마 내게 일할 직장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하늘이 허락하신 이 땅에서 풍족한 소풍을 즐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