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에는 그렇게 닭장이 있었지요.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되던 시기였나 싶은데 어느 날 학교에서 하교(下校)하여 집에 와 보니 뒷마당이 어수선했습니다. 궁금해서 가 본 뒷마당에는 목재로 지어진 닭장이 제법 크게 지어져 있었고 그곳에는 이미 중닭 정도의 재래종 닭이 50마리 정도 재잘거리고 있었고, 꿩과에 속하는 백한, 금계 은계 오골계 챠보 등의 다양한 품종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아버지께서 취미 삼아 기르시려 가져다 놓으셨겠지만 그렇다고 내다 팔려는 목적도 아니요, 더 나아가 달걀을 팔려고 그러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식들이 좀 더 관심 있게 키워보면 좋겠다는 꿈도 있으셨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결국 어머니 일손만 많아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맏이였던 저는 덕분에 사료도 줄 수 있었고 배추도 이파리를 줄 수 있었으며 달걀을 회수한다든지 물통의 물을 갈아주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 계사(鷄舍)를 치우는 날이면 한바탕 난리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아침 일찍 달걀을 걷어오기도 하지만 봄이 되면 암탉이 알을 품는 모습도 볼 수 있는 행운이 생깁니다. 과연 3주 만에 병아리가 나오나 싶기도 했고 날짜가 애매하면 병아리가 나온 날로 3주를 빼는 셈을 하여 그때쯤 수정을 했겠구나.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닭똥 냄새, 새벽마다 울어대는 수탉의 우렁참, 가끔 우리를 벗어나는 일탈이 생겨나고 사료값이 부담스러워지면서 결국 키우던 닭은 한 마리 두 마리,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웃도 주기도 하고 친척도 주기도 하고 손님이 오시면 잡아서 요리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잡아서 어머니께 건넨 닭만 해도 몇 마리는 됩니다.
그렇게 정리한 닭은 거의 사라지고 결국 닭장에는 관상용 닭만 남게 되었고, 그마저도 아버지께서 근무하시던 우리 학교에 기증하시면서 전부 정리됐습니다. 그 후로 관상용 닭이 어찌 되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지금 생각나는 기억이라야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장닭이 확실히 예쁘기는 하구나! 자기들끼리 벼슬에 피가 나도록 싸우고 나서 결국 서열이 정해지는구나! 사료 포대를 열면 특유의 곡물 냄새가 올라오고 그 사료를 닭이 참 잘 먹는구나! 한 번씩 닭장 청소하던 추억들! 뭐 그 정도입니다.
아쉽게도 어릴 적 추억으로만 남은 닭의 추억이지만 경제 논리로 엄청나게 수입된 닭 품종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보던 재래종 닭을 원 없이 볼 수 있었던 진한 추억이어서 그나마 위안으로 삼습니다. 부모님 덕분에 나이 들어 하나씩 챙기는 기억의 창고가 참으로 풍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