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벌레 #학교 #생명
얼마 전, 학교에서 점심시간이었다. 밖에 나가서 놀던 우리 반 Y가 손에 뭔가를 소중하게 쥐고 교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선생님! 하고 부르며 내 앞에서 두 손을 펼쳤다. 거기엔 꼬물거리는 공벌레 두 마리가 몸부림치고 있었다.
“Y야! 어서 화단에 가서 공벌레 놓아주고 와요!”
나는 다급하게 외치고 Y를 복도까지 데려다주며 다시 밖으로 우다다 뛰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최근 들어 1,2학년 아이들이 우리 학교 화단에서 공벌레 잡으며 논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우리 반 아이들에게까지 번질 줄이야. 그리고 나서 며칠 후에는 H가 화단의 바위를 들어 공벌레를 잡다가 교장 선생님께 한소리 들은 적도 있었다. Y의 공벌레 사건이 있던 날 오후에 연구실에서 선생님들께 이야기 했더니 작년에도 1학년이었던 선생님께서
“왜, 작년에 지금 선생님 반 교실이었던 반 아이 한 명이 사물함에 공벌레를 키웠었잖아. 담임선생님이 사물함을 딱 열었는데 거기에 공벌레 몇 마리가 살고 있었다더라.”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혹시 그때 빠져나가지 못한 공벌레가 사물함 어디엔가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의심의 눈초리로 사물함 있는 뒤쪽을 한참 쳐다봤다.
집에 와서 남자친구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니 남자친구는 공벌레가 얼마나 귀한 생명인 줄 아냐며, 자연에서 공벌레의 유익한 점을 구구절절히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어렸을 적 파브르에 못지않은 곤충 박사였다고 항상 자부심있게 말한다. 같이 공원을 가면 노안이 오기 시작하는 눈으로 저기 사마귀다! 저기 귀뚜라미다! 저기 지렁이다! 저기 뭐다! 하며 풀 숲에 숨어 있는 곤충을 기가 막히게 찾는다. 성인이 돼서는 안 키워본 동물이 없을 정도이고, 하기사, 지금도 도마뱀들 먹이로 주는 귀뚜라미를 위해 밤마다 당근을 써는 남자니, 긴 설명을 하기엔 입 아프다. (내가 당근으로 배불리 먹인 귀뚜라미를 도마뱀 먹이로 주는 게 잔인하다고 말하면 자연의 섭리 어쩌고 저쩌고..)
그러고 나서 또 며칠이 지난 후 아이들의 공벌레 사냥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공벌레 이외에도 벌, 곤충 등을 잡아서 노는 게 유행이 되었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채집통까지 가져와서 야무지게 곤충을 채집하고 있었다. 그만하라는 내 말에도 선생님이 무슨 상관이냐며 곤충을 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친구를 따라 온 동네방네 1,2학년 아이들이 화단 곳곳에서 곤충들을 잡고 있는 모습에 나는 이건 아니다 싶어서 아이들을 다 들여보내고 저학년 선생님들께 메시지를 보냈다.
“최근 학교 화단에 공벌레 등 곤충을 잡고 있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저희 학교 화단은 환경이 잘 조성되어 다양한 곤충들이 삽니다. 그중에서도 공벌레는 땅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익충입니다. 교육적인 목적으로 곤충 채집을 허용하신 반도 있으시겠지만, 온 동네 아이들이 곤충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건 아닌 듯하여 메시지 보냅니다. 각 교실에서 지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여 불편한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했지만 도저히 공벌레의 학살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선생님들께서 잘 지도하시겠다고 답 메시지가 왔다.
사실 나도 어렸을 적 학교 화단의 공벌레를 잡으며 논 적이 있었다. 쥐며느리과의 공벌레는 손을 톡 대면 둥글게 몸을 말아 공처럼 되는 게 귀엽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곤충, 벌레라면 기겁하는 나조차도 어렸을 적 공벌레는 좋아했다. 어린아이들은 무지로 인한 잔인함을 가지기도 하는데 나 또한 공벌레를 툭툭 치며 동그랗게 된 모습을 보며 좋아하거나 외할머니 집에서 잡은 청개구리를 물이 가득 담긴 바가지에 넣어서 띄워줬다가 청개구리를 익사시킨 적이 있었다. 물론 여느 아이들처럼 성장하며 작은 곤충이나 동물들의 생명도 존중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어서 지금은 살생을 하지 않는 보통의 어른이 되었다. 그랬던 내가 선생님이 되어 이렇게 공벌레와 다시 만나다니. 과거 내 손에서 고통받던 공벌레들의 후손을 이제는 내가 지켜줘야 할 때가 된 게 아닌가! 괜시리 사명감이 더 커진다.
선생님들께 메시지를 보낸 점심시간 후, 아이들에게 함부로 벌레를 만지면 위험하다는 안전교육과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잔소리를 한참 하고서야 4교시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 이제 공벌레 안 잡아요! 누가 공벌레 잡는 거 봤어요! 하며 자신은 결백하다 주장하기 바쁘다. 공벌레를 가지고 놀던 어린 내가 지금의 내가 된 것처럼, 우리 반 아이들도 나의 잔소리가 한줄기 물이 되어 건강한 어른으로 쑥쑥 자랄 거라 믿는다. 그리고 멋진 우리 학교 화단의 공벌레들이여, (벌써 짐을 싸고 이사를 떠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너희의 조상에 대한 나의 죄를 갚는 심정으로 너희를 지켜 주겠다! 부디 무사히 살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