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바위솔처럼.

#초등학교 1학년 #바위솔 #뿌리

by 스텔라박

올해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자 1과 부장을 맡았다. 근 10여년 만에 맡은 1학년 담임인데다 학년 부장으로서 1학년은 처음이다. 그 덕에 우당탕탕 거리며 3,4월을 힘겹게 보냈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1학년들은 매 순간마다 날 당황하게 했다. 교사들끼리 종종 1학년을 우주인에 비유하는데 이건 뭐 우주인이 아니라 외계인들이었다. (물론 귀엽고 사랑스러운!?) 식판에 음식을 받아 급식을 먹는 것, 수업 시간에 앉아있는 것, 발표할 땐 손을 드는 것, 친구의 발표를 들어주는 것,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는 것, 변기의 물을 꼭 내리는 것 등등등. 학교 생활의 모든 게 처음인 1학년들에겐 정말 기본적인 것부터 알려줘야 했다. 3월 둘째 주쯤 되었을 때 나는 절망의 늪에 허덕이며 아, 그냥 다 때려칠까 수없이 고민했다. 그때 작년 1과부장이셨던 선배 부장님이 좀 버텨보라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고 나를 다독였다.

‘시간이 해결해준다.’ 나는 이 말이 진리임을 시간이 지나며 뼈져리게 느꼈다. 3월이 힘겹게 지나고 4월이 되니 조금 덜 힘겹고, 순식간에 5월이 되었다. 나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도 외계인의 껍질을 벗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잔소리덕에 아이들은 점점 규칙을 익히고 균형 잡혀갔다. 어느새 6월을 앞두고 점점 살만해질 때, 나는 초등학교 1학년에 유행처럼 번진 입학 100일 행사 준비를 시작했다.

올해 6월 11일은 1학년이 입학한 지 1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작년에는 백일 축하로 하얀 설기떡을 학교 전체에 돌리고 축하와 감사를 표현했다. 그런데 나는 떡이 썩 내키지 않았다. 예쁘고 의미가 있지만 먹어서 없어지는 데다 더위에 아이들이 집에 가져가다가 상할까 우려되었다. 예산은 이미 잡혔고 해 년 마다했던 행사라 안 하기엔 아쉽고, 또 입학 후 지금까지 생활을 돌아보기에 100일 행사가 적합한데, 뭘 준비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 와중 우리 학교 조경을 해주시는 분께서 다육이 화분을 1인당 4천원에 해주신다는 정보를 얻었다. 어지간하면 죽지 않는 다육이에 예쁜 돌화분이라니! 아이들의 성장, 진로에 접목하면 꽤 괜찮다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다육 화분을 만들어 가져가는 걸로 100일 잔치를 계획했다. 100일 행사 하루 전, 조경사분께서 우리에게 설명을 먼저 해주신다 해서 1학년 담임 모두 학교의 다육 정원 앞에 모였다.

“이 다육이는 바위솔이란 건데 어지간하면 죽지 않고 잘 자라요. 대신 물에 약하죠. 그래서 처음 화분을 심을 때 맨 처음 이 작업을 해야 해요.”

하시며 갑자기 화단에 있는 다육이를 툭 떼어내셨다.

“ 어머! 뿌리가 끊어진거에요? 그렇게 떼어내도 되어요?”

우리들은 놀라서 소리쳤다.

“ 괜찮아요. 바위솔은 수분에 약해서 여기 맨 아래 마른 잎들을 떼어줘야 해요. 물을 많이 주면 여기에 고여 썪거든요.”

라고 하시며 밑에 붙어있는 마른 잎들을 툭툭 떼어내셨다.

“그리고 이렇게 툭 놓아두시면 돼요. 그럼 여기서 뿌리가 나와요. 여기 이거 보세요. 여기 잔 뿌리들 보이시죠?”

라시며 다육이를 들어 보여주셨다.


신기하게도 솜털 같은 뿌리가 많이 자라있었다.

“ 바위솔은 이렇게 툭 놓아주면 이런 잔뿌리가 나와 땅에 자리잡아요. 이렇게 툭 뜯어도 다시 내려놓으면 또 뿌리가 자라요.”


이제까지 식물의 뿌리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바위솔의 잔뿌리처럼 후드드 끊어졌다. 자고로 뿌리란 식물에게 큰 지지대와 양분의 공급처, 지탱해주는 기둥이자 식물의 생명이 아니었단 말인가! 뿌리가 흔들리면 식물 전체가 흔들리고 뿌리가 뽑히면 그 식물의 생이 끝나는게 아니었던가! 그런데 바위솔은 달랐다.


다음날, 입학 100일, 아이들과 다육 화분을 만들었다. 만든다기보다는 흙이 채워진 크고 작은 예쁜 돌화분 하나씩 골라 그 위에 적당한 크기의 바위솔을 툭 내려놓았다. 바위솔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조경사가 바위솔을 하나 뜯어들자 몇몇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다.


“ 어어! 그러면 안 돼요, 할아버지!”

조경사는 허허 웃으며 아래 마른 잎을 뜯고 툭 올려놓으며 이렇게 하면 잘 자란다고 설명을 하셨다. 물은 아주 가끔, 일주일이나 이 주일에 한 번 줘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아이들이 온전히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한 명도 화분을 잃어버리거나 두고 간 친구 없이 모두 챙겨간 걸 보면 다들 이 바위솔 화분을 소중하게 여긴 건 분명했다.


바위솔 화분을 잘 챙겨온 후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과 우리가 입학한 후 100일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지 발표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이유없이 운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안울어요. ”

“처음에는 앉아 있는 게 힘들었는데 지금은 잘 앉아 있어요. ”

“처음에는 글씨를 하나도 몰랐는데 지금은 읽을 수 있어요.”


아무것도 모를 거 같았던 아이들이 모두 자기가 어떻게 100일 동안 자랐는지 재잘대며 이야기했다. 마치 우주에서 학교에 툭 던져진 바위솔처럼, 어느새 그들에겐 작고 여리지만 튼튼한 잔뿌리들이 여러 개 자라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랄 수 있게 도와준 부모님, 선생님, 선배 언니 오빠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100일의 기적처럼 이렇게 많이 성장했다니, 몸도 마음도 그새 자랐구나. 아이들이 참 대견했다.

나는 아이들이 앞으로도 이 바위솔처럼 잘 자랐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큰 바람이 불어 뿌리가 뜯어지더라도 도착한 곳에서 다시 잔뿌리를 열심히 내리는 바위솔처럼 자라기를. 과거의 힘든 일, 어려운 일은 맨 아래 마른 잎을 떼어내듯 툭툭 털어내고 물이 고여 썪지 않게 하기를. 그리고 나 또한 바위솔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곳에 열심히 뿌리내렸다가 큰 바람에 뿌리가 뽑히면 생명이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굴러간 새 곳에서 태연하게 잔뿌리를 내려 자리잡아야겠다고 말이다. 지나간 힘든 일에 연연해하지 않고 툭툭 떼어내서 내 마음이 썪지 않게 해야겠다고. 이렇게 또 작은 식물에게 인생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