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또 가져갔어."
수화기 너머로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와 거의 같은 시각, 며칠째 이어지는 전화였다.
"우리 논이랑 밭을 가져간 그놈 말이야. 어젯밤에 집에 몰래 들어와서 냄비까지 가져갔어."
깊은 한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인지장애가 있으시다는 걸 알지만, 반복될수록 인내가 이해보다 먼저 바닥난다. 그래서 매번 같은 대화를 되풀이할 때마다,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짜증이 먼저 올라왔다.
"걱정 마세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어요. 냄비도 이불도 그대로 있고요."
"아니야, 경찰에 신고해야 해."
전화를 끊고 나니 내 손도 떨렸다. 엄마를 지켜드릴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무겁게 했다.
엄마의 기억 속에서 그 친척은 도둑이 되어 있었다. 그 땅이 실제로 남의 손에 넘어간 건 사실이지만, 엄마에게는 여전히 자신의 삶이 깃든 자리였다. 그러니 '빼앗겼다'는 감정이 쉽게 가라앉을 리 없었다. 그곳은 땀과 눈물로 일궈낸, 엄마의 청춘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터전이었다.
병이 깊어질수록 감정은 불안으로 번지고, 불안은 의심으로 자라났다.
"그 사람이 이제 우리 집까지 빼앗으려고 해."
나는 참다못해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 왜 자꾸 이러세요!"
전화기 너머로 작고 가느다란 숨소리만 들렸다.
“그래도… 다 가져가면 어떡하냐.”
점점 작아지는 소리를 들으니, 후회가 목 끝까지 차올랐다. 병을 미워했지만, 사실은 그 병에 잠식되어 가는 엄마의 모습이 두려웠던 것 같다. 어제의 엄마와 오늘의 엄마가 다르게 느껴질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밤새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엄마를 모시고 시골집으로 향했다.
"냄비 여기 있어요. 이불도 그대로 있잖아요."
장식장과 옷장을 열며 보여드리자, 엄마는 물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엄마의 눈빛에 혼란과 미안함이 동시에 스쳤다. 믿었던 기억이 잘못되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의 당혹감. 매일 싸우는 대상은 도둑이 아니라, 무너지는 자기 자신이었다.
그때 마당가에서 고양이 두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예전에 키우던 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지만, 이내 도망쳤다. 그래도 한참을 서성이며 부르는 모습은 마치 아이처럼 순수해 보였다.
아침부터 내린 비로 마당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저 마당은 네 아버지가 비를 맞아가며 삽으로 다져서 만든 거야. 이런 날이면 김치전 하나 부쳐도 너희들이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또 해달라 했는데…"
오랜만에 엄마의 얼굴이 환해졌다. 행복한 장면이 잠시 되살아난 듯, 어두운 기억이 물러갔다.
그날 밤, 엄마는 한결 차분해 보였다.
"엄마, 소리 질러서 죄송해요."
"아니다. 나도 미안하다."
약해진 엄마의 미안하다는 말에 목이 메었다. 엄마도 느끼고 계신 듯했다. 스스로를 믿을 수 없게 되어간다는 걸.
오늘도 엄마에게서 전화가 올 것이다. 그 이야기를 반복하실 것이다. 이번에는 엄마의 불안을 함께 안아주어야겠다.
"엄마, 편하게 얘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