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흔든 건 영화였다

by 은진

사춘기 시절, 내게 가장 큰 볼거리는 외국 영화였다. 드라마는 시시했고, 연애 소설은커녕, 집에는 읽을 만한 책조차 없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이야기란 TV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밤늦게 방송되던 '주말의 영화'나 '명화극장'을 빠짐없이 챙겨봤다.

화면 속 사랑 이야기가 간질간질하게 다가오면, 부모님의 꾸중에도 눈을 떼지 못했다. 사랑은 정말 키스에서 시작되는 걸까? 어떻게 사랑한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을까? 나는 그저 궁금함으로 가득한 아이였다.


연애는커녕 동네 남학생과 말 한 번 제대로 나눠본 적도, 누군가의 손을 잡아본 적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영화 추억(The Way We Were)은 낯설면서 달콤한 세계였다.


그 시절 친구들은 조용필과 송골매에 열광했다.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음반 재킷과 책받침을 자랑하며 교실을 떠들썩하게 하곤 했다. 어떤 친구는 얼굴이 크게 인쇄된 책받침을 흔들며 ‘고추잠자리’를 신나게 불렀다. 나는 그 무리에 끼지 못했고, 그들도 나를 끼워주지 않았다. 대신 낡은 극장 구석에 앉아 오래된 영화를 보는 게 더 좋았다.


한눈에 반하는 장면은 늘 근사했다. 그런 로망은 매력적인 배우를 보며 더 단단해졌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어쩌면 그렇게 매력적일 수 있었을까. 짙은 쌍꺼풀에 깊은 눈빛, 반듯한 코,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훤칠한 키까지. 영화 속의 주인공일 뿐임을 알면서도, 왠지 그가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아 자꾸만 가슴이 뛰었다.


특히 영화 속 케이티와 허블은 내게 이상적인 커플이었다. 가치관과 환경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결국 서로에게 끌리는 모습은 왠지 신선했다. 하지만 그렇게 사랑한 두 사람이 끝내 다른 길을 선택한다는 건, 어린 내겐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결말이었다.


허블을 연기한 로버트 레드포드의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스크린 속 그 시선이 마치 나를 향하는 것만 같아 이유도 없이 두근거렸다. 극장이 아닌 TV로 보았지만, 이불속에서 몰래 바라보던 그의 얼굴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연기한 케이티는 더욱 강렬했다.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는 그녀는 내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저렇게 사는 게 가능하다니, 처음 보는 다른 세상 같았다.


그녀가 부른 주제곡 The Way We Were는 감미롭고 애틋했다. “Memories”로 조용히 시작하는 순간, 애잔한 울림이 귀를 사로잡았다. 가사는 잘 몰랐지만,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특유의 음색은 오래도록 남았다. 어린 마음에도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은 전해졌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고 헤어질 때 흘러나오던 그 목소리는 지금도 귀에 맴돈다.


영화와 노래가 남긴 설렘은 옅어지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연애도 하고, 마음이 맞는 이와 결혼도 했다. 영화 속 케이티와 허블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나만의 사랑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게 있다.

사랑은 영화처럼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 서로 다른 신념과 가치관 앞에서, 사랑만으로는 지켜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것.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 결말이, 이제는 안타깝지만은 않았다.


얼마 전, 로버트 레드포드가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읽었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이 시간이라면, 그가 별이 된 것도 결국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한때는 스크린 속 그를 짝사랑했지만,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가 출연한 영화를 찾아봤다. 짧은 편집 영상 속에서도 그는 특유의 미소로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변함없이 멋졌다.


그때 간직한 두근거림은 지금의 나를 만든 한 조각이 아니었을까. 케이티처럼 거침없이 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 감정만은 숨기지 않으려 했다. 가끔 그 노래를 들으면 자정을 넘겨 TV 앞을 지키던 소녀로 돌아간다.

그 소녀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잘했다고 웃어줄까, 아니면 아직도 꿈을 좇고 있느냐고 물어올까.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추억, The Way We Were(1973년), 시드니 폴락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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