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키보드 위에 올린 손가락은 굳어버렸고, 모니터 화면엔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이야기 속 캐릭터를 학교에서 도서관으로 옮겨봤지만, 그다음이 막혔다. 겨우 몇 문단을 써놓고 읽어보니 영 아니다 싶어 몽땅 지워버렸다. 더는 진전이 없어 눈을 감았지만, 시계 초침 소리와 풀벌레 소리는 더 또렷하게 들렸다. 잠은 오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머릿속 화면에 다음 장면을 쓰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화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독서교육에 힘을 쏟았지만, 정작 직접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매주 자료를 프린트해 아이들과 읽고 기록하게 하고, 권장도서를 권했지만 나는 거의 펼쳐보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열정보다는 강요에 가까웠던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책장에 꽂힌 동화를 펼칠 때도 늘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설정은 유치하고, 결말은 뻔하다고. 그래서 동화는 아이들만 읽는 글이라고 단순히 여겼다. 그런데 막상 직접 써보려니 한 줄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
처음 써본 에세이를 아는 동료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사춘기 시절 서점에서 겪은 일을 쓴 짧은 글이었다. 실제 작가이기도 한 그는 다른 말은 없이 “동화를 써보면 어때요?”라고만 했다. 내 글이 유치해 보였나 싶어, 괜히 이유도 묻지 못한 채 한동안 위축되었다. 그런데 또 다른 지인도 글에 스토리가 살아 있다며 같은 말을 했다. 두 사람이나 똑같이 말하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끌렸다.
마음이 끌리자 배워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주변엔 그럴 만한 곳이 없었다. 다행히 온라인 강의를 발견해 바로 신청했다. 그래도 동화 속 주인공들은 낯설지 않았다. 교실을 발칵 뒤집던 장난꾸러기, 조용히 친구를 위로하던 아이…. 수많은 얼굴들이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몇 줄 쓰고는 금세 지우기를 반복했다. '옛날 옛적에'는 너무 뻔했고, '어느 맑은 봄날'은 식상했다. 흥미롭게 쓰자니 억지스럽고, 현실적으로 풀자니 싱거웠다. 결국 ‘이건 어색해’ 하는 목소리만 맴돌았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넘겨온 수많은 책들 뒤에는 이런 막막한 밤들이 있었을 거라고. 동화든 소설이든, 작가들 역시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씨름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읽은 현덕의 『하늘은 맑건만』이 떠올랐다. 주인공 문기가 잘못된 거스름돈을 받고 벌어지는 단순한 이야기였지만, 거스름돈을 돌려줄까 망설이는 장면에서 나는 마치 문기가 된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른 진실을 말해!' 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 놀랐다. 내 안에도 아직 문기 같은 아이가 숨어 있었다.
그제야 알 듯했다. 동화는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문기의 망설임 앞에서 조바심 내던 내 모습은, 교실에서 만났던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겨우 한 편도 쓰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투덜거리는 건 아니다. 오히려 동화 작가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낀다. 한 문장이 이야기로 태어나는 일이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 이제야, 그 한 줄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지 짐작이 간다.
쓰다 보니 내 안에서 잊고 지냈던 아이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내가 쓰고 있는 동화 속 주인공들, 수호처럼 장난을 치고 싶어 하고 재민이처럼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어 한다. 어른인 나는 그 목소리를 옮기려 오늘도 노트북 앞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