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다시 읽기로 했다

by 은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결을 품고 있다. 말투나 표정,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까지 저마다의 빛깔을 지닌다. 어떤 이는 처음부터 마음을 열게 하고, 어떤 이는 이유도 모른 채 한 걸음 물러서게 한다.

하지만 첫인상은 생각보다 자주 빗나간다. 서둘러 내린 판단이 상대를 다 알아보기도 전에 이미 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우리는 보여주고 싶은 얼굴만 내민다. 그런데 천천히 쓴 글 앞에서는 그게 어렵다. 문장에는 감추고 싶은 마음이며 인지하지 못했던 내면의 모습까지 드러나는 것 같다. 내 글을 읽고 "이제야 너를 조금 알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말로는 끝내 전하지 못한 마음이 문장 사이를 통해 닿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어떤 글에 대해서는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고 판단해 버린 적이 있다. 그 대상이 바로 카프카였다.


오랫동안 카프카를 독특하고 이상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변신』의 전체를 읽지 않았음에도 다 알고 있다는 듯 아는 척도 했다. 벌레로 변한 남자 이야기라니, 납득이 되지 않아 곧 책에서 눈을 돌렸다.


나는 논리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카프카의 문장을 읽을 때마다 길을 잃었다. 앞뒤가 맞지 않았고,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당시의 나에게는 그의 세계를 알아볼 눈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책을 덮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다가가 보기로 했다. 단편집 『돌연한 출발』을 천천히, 끝까지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중 「선고」라는 단편이 특히 강하게 다가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익사형을 선고하고, 아들은 정말로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변신을 만났을 때보다 더 황당한 전개였다. 왜 아버지가 그런 말을 쏟아내는지, 왜 주인공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죽음을 받아들이는지 알 수 없었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어이없음 속에서 자꾸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카프카가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읽은 문장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그의 글은 정말 그랬다. 이해할 수 없다고 외면했던 문장들이 내 안의 단단한 생각을 흔들고, 오래 굳어 있던 인식을 서서히 깨뜨리고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 단편선『돌연한 출발』

알고 보니 이 작품은 카프카가 단 하루 밤 만에 썼고 본인도 만족한 글이라고 한다. 어쩌면 게오르그의 죽음은 현실 속 자신의 그림자를 투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프라하의 어느 골목, 밤을 지새우며 홀로 글을 쓰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평생 짓눌려 살았던 사람, 낮에는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야 했던 사람. 그 섬세함과 고독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사람도 같은 방식으로 대해왔던 것 같다.

얼마 전 모임에서 오랜만에 아는 이를 만났다. 늘 분위기를 이끌고 "괜찮다"를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 그가 술잔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요즘 일이 무섭다." 그 말이 너무 낯설게 들렸다. 예전엔 겉모습만큼 쉽게 드러나는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그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걸. 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무엇이 그를 흔들고 있는지. 그의 첫 장만 읽고 전부를 안다고 믿고 있었다.


카프카를 다시 읽기 전까지는 몰랐다.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책을 덮는 것과, 이해할 수 없어도 끝까지 읽어보는 것 사이에 이렇게 큰 차이가 있는지.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천천히 머뭇거리기로 했다. 낯선 문장 앞에서,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한 장 한 장 넘기듯이. 그러다 보면 내가 놓쳤던 이야기들이 고개를 내밀어 말을 걸어올지도 모른다.


by 은진, 저 골목 어딘가에서 밤새 글 쓰는 카프카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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