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계획한 일이다. 진작에 마음먹은 것이라 미련 없이 신청했고 지금은 공문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에 근무한 자리는 아무래도 남다르다. 그래서 뒷모습은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말끔하게 제자리로 돌려놓는 게 마지막 할 일 같았다.
쓰레기봉투와 큰 가방을 가지고 오후 시간에 교실과 복도 그리고 분리수거함을 오갔다. 그런 나를 보고 지나가던 동료가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조용히 명예퇴직을 신청했던 터라 그는 몰랐다며 놀란다. 아직 공식적인 결과가 오지 않았기에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며칠 동안 분주하게 분리수거장을 오가는 모습이 의아했다며 아쉬워한다. 쓰다 남은 학습자료는 다시 분류해서 자료 준비함에 넣어두거나 못 쓰는 물건은 과감하게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검은 먼지가 내려앉은 창틀과 화분대를 닦았다. 그동안 알면서 모르는 척 내버려 둔 먼지 뭉치들. 책상과 사물함과 청소함 틈 사이로 쓸려 들어가 꼭꼭 숨은 쓰레기들. 묵은 찌꺼기를 씻어내듯 보이는 족족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였다.
이번 기회에 미련 없이 털어내고 싶은 게 또 있다. 남은 자존심마저 가자미처럼 납작해져 한없이 우울하게 만든 것들이다. 가늠할 수 없는 책임감, 공적인 신분에 눌린 답답함, 밑바닥까지 내려간 직업인으로서의 존재감과 거기서 오는 불편한 감정들. 남김없이 힘 좋은 진공청소기에 탈탈 털리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정리하면서 물건뿐만 아니라 마음속 짐까지 정리하기로.
매서운 눈보라가 덜컹대며 유리창을 때려도 정리 중인 나는 땀이 났다. 거기다 얼마 전부터 무력해진 어깨가 또 말썽이다. 칠판 앞에서 당당하게 가르치던 어깨가 오십견이 왔다고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버리면서, 마음도 함께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벌써? 오래 걸릴 거라고 예상했기에 속으로 조금 놀랐다. 짐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홀가분해질 줄은 몰랐다.
나는 언제부턴가 몸에서 신호가 왔다.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일할 때는 증상이 심했다. 그래서 나를 지키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덜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완전히 무너질 것 같았다. 10년 차에 그만두고, 다시 재임용으로 들어가고, 연구년제로 1년 동안 학교를 멀리했다.
누군가는 인내심이 없고 의지가 약하다고 말했다. 또 회피한다고 판단한 이들의 입을 통해 결점이 되어 나를 따라다녔다.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보다 하기 싫은 일이 늘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알았다. 그래서 조금은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용기 내서 퇴직을 신청한 것이다.
얼마 전에 모임에서 만난 사람은 그런 나를 칭찬한다. 빈말이라도 기분이 좋았다. 쓸만한 기술 하나 없는 내게는 분수 넘치는 말이다. “어쩜 그런 생각을 했어. 쉬워 보여도 어려운 일이야!”라면서 추켜세웠다. 학기 말 업무가 폭주하는 12월이 와도 예전 같으면 긴장하며 대응하는 데 이런 것쯤은 우습다며 마음이 야들야들해졌다.
마음이 가벼우니 몸이 졸라대듯 손이 빨라진다. 잽싸게 끝내고 싶었지만 조금 느긋해지기로 했다. 마무리할 업무나 나이스 기록,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과의 활동까지 여유를 부리며 거북이처럼 진행했다. 그동안 나는 쫓기듯 자신을 몰아붙이며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지 않아도 충분하고 천천히 해도 학교 일은 잘 풀리는데 조바심이 컸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손이 많이 가서 나중으로 미룬 일이다. 버려도 괜찮다고 여긴 자료들이다. 쓰레기봉투를 옆에 끼고 종이 한 장 한 장을 일일이 살펴봤다. ‘사랑해요!’를 몇 번이나 고백하며 연필로 꾹꾹 눌러쓴 쪽지, 꼬질꼬질 때 묻은 종이 카네이션, 너무 젊고 너무 예쁜 공주 같은 그림이 여러 장이나 남았다. 전혀 닮지 않아서 나라고 인정하기 어렵지만 그림 밑에 내 이름이 또렷하게 쓰여있다.
밖은 추운데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다. 새해도 아닌데 붉은 해가 가슴속에서 타오르고 진하게 올라온다. 소중한 추억을 아무렇지 않게 버릴 뻔하다니. 거북이처럼 천천히 하기를 참 잘한 것 같다. 보관하기 편리한 클리어파일을 찾아 거기에 한 장 한 장 넣었더니 묵직했다.
그리고 누렇게 바랜 방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흰색이 누렇게 변할 정도로 꼬질꼬질하다. 많은 사연이 한 코씩 뜨개질한 사이사이로 보인다. 자녀보다 때로는 더 어린 부모들. 욕심에 자기 자녀가 먼저라 미처 다른 아이들을 제쳐둔 이들이다. 한때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든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눈물 없이 울어서 잊은 줄 알았는데 아픈 자국이 오래갔다. 그런 나를 위로하는 사람 또한 부모들이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한 땀씩 코바늘로 떠 준 방석이다. 부모와 교사라는 틀을 벗어나 사람 대 사람으로 준 마음이다. 운 좋게도 나는 그런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래서 교실을 옮길 때마다 챙긴다.
원하던 대로 새 주인이 와도 놀랄 만큼 깨끗해졌다. 정리된 이 교실에서 시작하는 후배가 나보다 즐겁게 생활하기를 바라면서 방석이 든 가방을 들고 교실 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