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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 May 14. 2024

빈집에서 찾은 보물, 먹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고향의 빈집을 자주 오간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을 돌보기 위해서다. 빈집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정리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다. 처음에는 까마득했다. 청소업체를 부르는 간단한 방법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보물을 찾듯 하나씩 정리하며 버리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소중한 것과 마주하기도 하지만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보기 싫은 것도 있다. 


  치운 만큼 조금씩 빈자리가 보였다. 문제는 1년 동안 윗방에 놓여있던 자루다(이사하면서 엄마가 당부한 5자루). 겨울이 지나도록 아무도 건드는 이가 없다. 궁금해도 열어보지 않았다. 그 방은 한겨울에 불을 때도 냉방이었기 때문이다. 해가 바뀌고 4월이 되어서야 자루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동네 방앗간을 찾아갔다. 칠이 벗겨진 간판, 한눈에 봐도 낡은 기계들, 빻고 분쇄하는 설비들이 가게의 내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단박에 영업 중임을 알 수 있었다. 입구 수돗가에 물기 묻은 빨간 고무대야와 소쿠리가 같이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헛걸음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에 주인을 찾았다. 엄마는 젊은 주인 양반이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정작 나온 사람은 칠십이 넘은 젊은(?) 주인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붉은색 대야를 가리키며 먼저 깨 자루를 부으라고 했다. 남편과 나는 자루 중 가장 무거운 들깨를 먼저 부었다. 주인은 쌀을 씻듯이 들깨를 씻었다. 밥을 하기 위해 조리로 쌀을 일어 돌과 부스러기를 가려내는 방법과 비슷하다. 특이하다면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스텐 체망으로 깨를 일었다.     


  “이렇게 하면 돼요. 한번 해봐요!”

  “이걸, 우리가요?”

  “그럼, 손님이 해야지요.”


  우리는 얼굴을 보며 망설였다. 때마침 남편은 손목을 깁스했고 나는 일에 젬병이다. 그래서 방앗간에 올 때부터 공임비를 주고 기름만 가져갈 생각이었다. 무턱대고 깨부터 가져오는 게 아닌데. 그렇다고 다섯 자루나 되는 깨를 다시 가져갈 수는 없었다. 나는 쭈그려 앉아 손으로 이리저리 휘저으며 깨를 씻었다. 쌀보다 크기가 작고 가벼운 깨는 가라앉지 않고 휘젓는 대로 둥둥 떠다니며 빙빙 돌았다. 일일이 손으로 잡는 건 불가능해서 조금 전에 주인이 하던 방법을 따라 했다. 스텐 체망을 이용해 대야 속에 물결을 일으키고 떠오른 깨를 건져냈다, 열 번도 넘게. 


  “이번에는 내가 해볼게.”

  어설프게 일하는 내 모습이 답답했는가 보다. 남편의 제안이 너무 반가웠다. 냉큼 그러겠다며 일어서다가 균형을 잃고 뒤뚱거렸다. 하마터면 씻은 참깨를 바닥에 다 쏟을 뻔했다. 조금씩 요령이 생긴 우리는 이물질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반복해서 씻고 또 씻었다. 쭈그려 눌려 있던 다리는 감전이라도 된 듯 저렸다. 


  주인은 그런 우리가 어설프고 웃겼는지 아니면 요령 피우지 않고 잘 해내고 있어 기특한 것인지 모를 시선으로 쳐다봤다. 그의 눈과 몇 번이나 마주치다 그의 얼굴에서 아주 익숙한 모습이 떠올랐다. 고단한 노동의 흔적, 고된 일에 지쳐도 자식이라면 다 감내하는.      


  깨끗해진 들깨를 주인은 가마솥처럼 생긴 기계에 넣고 볶는다. 그러자 흰 연기가 뭉글뭉글 나더니 타는 냄새와 함께 방앗간을 삼킬 듯이 피어올랐다. 이번에는 볶은 깨를 둥근 솥에 넣고 무거운 기계로 내리눌렀다. 드디어 걸쭉해진 노란 기름이 조르륵 그릇에 떨어졌다. 우리는 귀한 보물을 바라보듯 그릇에 담기는 기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플라스틱 빈 병은 공짠데 거기에 담을까요?”

  “아뇨. 다른 병은 없어요?”

  “개당 500원짜리 기름병이 있어요.”하며 녹색병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담아 주세요.”

  그동안 엄마는 빈 소주병을 씻어 그곳에 기름을 담아 주셨다. 녹색병이 방앗간에 박스로 쌓여있었다. 아마도 녹색병은 기름을 넣는 용도로 판매하는 것 같았다.


  고소한 향이 삽시간에 가게 안을 점령하듯 퍼져나갔다. 개당 500원인 녹색병에는 250ml 소주가 아닌 노르스름한 들기름이 가득하다. 연이어 참기름까지 담았더니 29병이나 되었다. 동생들과 나눠 먹어도 충분할 정도다. 난 만족감에 들떠 가뿐함마저 느꼈다. 버거웠던 일을 마무리하는 기분이었다. 오전 내내 허리를 굽혀 일한 대가로 받은 녹색병은 박스 안에서 빛이 났다.


  엄마 허리가 구부러진 것은 어쩌면 이것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동안 편하게 얻어먹던 소주병 개수에 비례한 만큼 해마다 몸이 작아지고 구부러지는 것을 몰랐다니. 기름 냄새가 코끝에 닿을 때마다 기쁘면서도 가슴은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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