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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혜 Mar 08. 2023

엘리베이터에서

[연재] 인사의 뒷모습

아침 출근길 집을 나서면 흥미로운 일들의 연속이다. 우리 집은 18층. 1층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탄다. 1층을 누르고 문이 닫히길 기다린다. 1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잠시 느려지더니 10층에서 멈춘다. 문이 열리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 두 명이 탄다. 두 친구는 1층 버튼에 불이 들어와 있는지 확인 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길 기다린다. 5층에서 느려진 엘리베이터는 4층에서 멈추고 할아버지 한 분이 등산가방을 하나 메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오전 산행을 다녀오실 모양이다. 할아버지도 1층을 확인한다. 엘리베이터는 그렇게 1층까지 도착하는 동안 몇 번이고 '1층에 꼭 도착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일념과 거듭된 확인을 힘입어 도착한다.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재밌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누군가 이미 타고 있을 때, 사람들은 상대방도 1층으로 갈 거라는 생각이 쉽지 않은 것만 같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 엘리베이터. 그곳이 도착해야할 곳은 1층.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사람들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모두 1층에 도착해야만 어디론가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갈 거라는 생각. 그건 나만 드는 확신이었던 건가, 를 생각한다. 


1층에 도착해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도 흥미로운 일은 계속된다. 어젯밤 누군가 차선도 지키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주차해 놓은 자동차의 모습. (어느 날은 내 차 주변에 그런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배를 홀쭉하며 차에 우겨 타야 한다.) 밤에 어딜 다녀온 건지 하루 만에 지저분해진 차도 보인다. 언제나 어느 때나 같은 자리에 주차가 돼 있는 차도 있다. 아파트 주차장은 랜덤인데, 저 차는 운이 늘 좋은 건지, 어딜 나가본 적이 없는 건지 싶은 생각도 든다. 어떤 날은 신차가 보인다. 광고에서 봤던 전기차가 신기하다. 요즘 자동차 디자인은 점점 미래세계에서 온 것 같다. 디자인이 미래에서 왔다 해도 어차피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자동차도 달라질텐데 하는 생각. 자동차는 같은 공장에서 왔지만 사람은 모두 다른 곳에서 왔으니까.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차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같을 수 없다. 운전 스타일은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교통법규는 언제나 지키기 힘들고 도로는 위험하다. 모두가 다른 모습으로 운전을 하지만 우리는 도로 위를 함께 달린다는 것.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만이 우리가 마주한 그 위험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모두가 같은 1층으로 가야 하는 것처럼 함께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암묵적으로 우리는 그곳이 공통의 공간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개인이 그 공동의 공간에 대해 주인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갖게 될 때가 있다. 바로 그 순간 배려란 단어를 잃는다. 


18층에서 1층으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1층을 가리키는 사람들의 손가락을 유심히 본다. 1층을 누르려다가 주춤하기도 하고 1층을 눌러버리고 다시 번복하기도 한다. 손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눈으로 1층을 바라보다가 뭔가 잘못됐다 싶을 때 다시 손가락을 움직이기도 한다. 내가 1층에 가야 한다면 다른 사람 역시 그곳에 가야 한다. 그 이후의 목적지는 다를지 몰라도 적어도 이 공간에서 만큼은 우리는 삶을 공유한다. 1층으로. 


공유하는 삶은 불편하다. 그러나 그 삶은 인간의 본능이다. 생존이라는 단어가 지금과는 다르게 쓰였던 고대로 올라갈수록 공유는 당연한 일상이었다. 조금 더 밀접한 사회는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이 모호했다. 내가 필요한 것이 곧 네가 필요한 것이었기에 인간의 이기심은 있었으나 극적인 순간의 전개가 필요할 때 이 이기심이 작동했다. 지금은 다르다. 나의 일과 너의 일은 구분되어 있다. '나는 1층으로 가지만 네가 어디로 가는지는 관심이 없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기심이 우리 사회와 마음속에 아주 넓게 퍼져있다. 그 이기심은 모두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얇게 펼쳐져 있을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 방송국으로 가는 아주 잠깐의 시간에도 나는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이기심을 발견한다. 나는 그 속에서 의식적으로 아니 의무적으로 나의 이기심이 들키지 않도록 노력하곤 한다. 예를 들면 이웃과 더 크게 인사를 한다거나 상대방이 탈 때까지 내가 적극적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기다려준다거나 하는 등이다. 내가 불편한 만큼 다른 사람도 불편할 거라는 인식을 깨운다. 어쩌면 이것은 가장 고도의 이기심일 수도 있다. 적어도 내가 사는 동안의 내 세상이 안전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니까. 착한건 바보야, 라는 이상한 논리가 통용되는 요즘. 나는 자꾸만 역행하고 싶다. 나의 고도의 이기심을 발휘해 더욱더 착해지고 싶다. 배려와 이심전심이 세상을 바꿀 거라는 걸 믿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꽤 착한 누군가 지금도 함께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엘리베이터는 내려가는 길에 자주 멈추죠.

학교 가는 아이들도 타야 하고, 

출근길 직장인도 타니까요.


재밌는 건, 

1층에 불이 들어와 있는데도

엘리베이터가 설 때마다 1층이 눌려 있나?

다들 한 번씩 본다는 거예요.

이게요, 다들 1층으로 가는 건 뻔한데 

일단, 내가 가야 할 곳이니까, 한 번씩 보게 되는 거래요.      


내가 필요하면 다른 사람도 필요하고

내가 불편하면 다른 사람도 불편하잖아요. 

그런데 이런 ‘이심전심’의 마음은

자꾸만 배우고 생각해야 습관이 된대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거 쉽지 않잖아요.

그냥 나라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하면 

배려도 좀 쉬워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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