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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혜 May 16. 2023

당신의 공개연애

-[연재] 인사의 뒷모습

우리는 정말 타인의 사랑이 중요한가. 가십거리로 그치는 유명 연예인들의 열애설이 터질 때마다, 또 그들의 데이트 장면이나 결혼 발표, 과정이 뉴스로 들릴 때마다 함께 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반응이 나는 언제나 의아하다. 사람들의 반응이 이토록 뜨거운 이유는 공개된 사랑의 모양이 동경했던 장면이어서 일까. 아니면 진심으로 타인의 안녕을 빌어주는 마음이기 때문일까. 그들의 결혼과 이혼, 심지어 결혼식의 장면들과 데이트 모습 등이 기사로 언급되고 또다시 누군가 새로운 피드로 만들어낸다. 정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고 가십거리로 치부하기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이 일을 나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 새로운 소식을 정보라 한다면, 이런 정보가 사람들의 흥미를 이끄는데 충분하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다른 사람의 삶에 이토록 관심이 있는 이유는 대체 어떤 동기 때문일까. 반면, 진정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이 관심을 호소해도 왜 이토록 소용이 없는 것일까. 아이러니한 대중들의 반응에 나는 그저 어디서부터 이해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그만두고를 반복한다. 그러나 나는 이 생각을 끊을 수 없다. 어떤 유명인의 사랑과 사적인 일들이 관심이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대중들이 반응하는 데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이해되지 않는 세상의 원리에 누군가는 '그게 세상이야' 하며 더 이상 생각하기를 원하지 않지만 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고, 옳고 그름, 또는 필요한 영역과 필요하지 않은 영역, 어느 시대에는 도덕과 정의라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우리가 주인공 되어 살지 못하고 세상이 정한 흐름대로 간다면 어리석은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전쟁의 모든 역사가 그랬다.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들의 틈에는 당연하게만 여겼던 세상의 원리가 비집고 들어오지 못한다. 그래서 중요한 건 우리는 대중으로서 이슈가 되기 전에, 또는 만들기 전에 개개인이 생각하는 존재로 살아있는가 하는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


며칠 전 사랑하는 내 친구가 결혼을 했다. 서로의 삶이 바쁘다는 핑계,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있다는 핑계로 우리는 꽤 오랜 시간 연락을 끊고 있었다. 친구의 꿈은 작가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 막연히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어떻게 그 꿈을 이뤄야 할지 몰랐다. 성적에 맞춰 대학을 선택하다 보니 공대에 들어갔고 공대생이지만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친구는 공대에선 여신으로 통하며 인기가 많았다. 인기를 누린 덕분에 공대를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그래도 친구는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대학시절 그녀와 함께 교양수업을 함께 듣게 되면서 '공대 여신'이었던 그녀를 처음 알게 됐고 우리는 그 계기로 친해졌다. 그때 들었던 교양 수업은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의 작품을 함께 보며 사진을 찍는 순간과 문장이 만들어지는 순간들을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사진을 잘 모르지만 그 수업을 통해 순간을 포착하는 매력에 대해 처음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당시 이상형이 '사진 잘 찍는 멋진 오빠'로 정해지며 꽤 허무맹랑한 삶을 살기도 했다. 나처럼 사진 수업을 꽤 진지하게 대했던 공대여신 친구는 그 이후 결국엔 작가가 됐다.


그녀는 출판사에 나는 방송국에 들어갔다. 우리는 글을 쓰고 읽는다는 자부심으로 20대를 보냈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일하고 있지만 서로의 힘듦을 이해하고 있었다. 공대생이었던 그녀가 치열하게 글쓰기를 고민하는 모든 과정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과 함께, 그리고 파주로 가야 한다는 소식도 함께 듣게 된 어느 날, 우리의 만남이 이전과 다르게 잦아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안심했다. 그녀는 그녀의 일을, 그녀 다운 무엇인가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서였다. 무엇보다 그녀가 글쓰기와 글 쓰는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다. 언젠가 듣게 된 친구의 결혼은 기다렸던 소식이었다. 친구와 그저 자주 연락하지 않아서 연락이 뜸해진 이 공백을 결혼 소식이 끊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친구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직접 청첩장과 편지를 우편함으로 보내줬고, 그 편지를 읽는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이 친구의 소식을 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친구의 편지를 받고 나는 곧장 전화를 했다. 이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이렇게 마음을 썼어, 그냥 전화 한 통이어도 나는 갔을 거야, 파주까지. 나를 잊지 않아 줘서 고마워 친구야. 나는 그렇게 친구를 다시 만났다. 친구는 결혼을 하기 위해 출판사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그래도 몇 년 동안 일했던 직장을 그만둔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텐데, 남편이 그렇게 좋을까, 아니면 벌이가 괜찮은 건가, 싶었다. 나의 생각을 알아차렸던 친구는 내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이어서 말했다.


'아니, 책은 사양산업 이잖아. 어쨌든 그렇잖아. 출판사에서도 책 보다 인스타그램 피드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는데 나는 더 못하겠더라고, 내가 고지식한 거겠지. 그래도 책은, 문학은 세상과 조금 달리 가도 괜찮은 게 아닐까 싶어서 그만뒀어.' 친구는 담담했다. 친구가 출판사를 그만두게 된 계기는 글쓰기에 대한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조금 달라진 세상이 던지는 질문들에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고, 방황하는 순간을 조금 견디기 힘들었던 거다. 그래도 나는 친구가 친구의 사랑을 만나 다른 방법과 생각으로 앞으로의 소중한 날들을 채워갈 것 같았고, 그 모든 미래가 기대됐다.


언제나 자신의 사랑에 집중하고 있는 친구는 언제나 멋지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과 그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집중한 삶은 단순했지만 명확했다. 가야 할 바를 알고 해야 할 일들을 아는 삶이었다. 나는 친구의 삶이 멋있었고, 심지어 지금은 옳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 타인의 사랑이 중요한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그 친구가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는 그 사랑을 먼저 떠올리고 싶다. 몇십만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어느 인플루언서가 아닌,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몇 번 함께 나왔다는 이유로 열애설이 끊이지 않는 연예인이 아닌, 한 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정상에 자리에 올랐다가 지금은 텔레비전에 가끔 나오는 전직 운동선수가 아닌, 내 주변의 사랑과 내 주변의 인생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 타인의 공개연애에 열광하는 인생보다 내 앞에 직면한 뜨거운 연애와 수많은 사랑들에 열광하고 싶다.


저 먼 우주가 아닌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알아차리며 마음을 헤아리는 일을 반복하는 건 오늘날의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힘이 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해 낼 때 비로소 세상이 완성된다. 나는 지금 무슨 일을 하는가. 어떤 것을 사랑하고 있는가,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랑의 모양은 무엇일까. 나의 이 생각들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며, 곧 나를 위한 것이다. 결국에 사라질 우리들을 위한 것이다.



긴 여정을 떠나기 전,

깨끗하게 세차를 하고 출발하려 합니다.

평소에 세심하게 차를 살피고, 관리를 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알 수 없는 흔적이 있어서

지워보려 하는데요.

그런데요, 쉽게 지워지지 않더라고요.     

물방울 하나도요.

한동안 머물다가 날라 가버리면 흔적을 남깁니다.


어느 작가는 말했어요.

마른 흔적은 지금 그 물방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물증이지만,

한때 물방울이 존재했었다는 가장 유력한

알리바이이기도 하다고요.


우리의 삶에도 기억과 추억으로 불리는

크고 작은 흔적들이 있죠.

지금은 사라졌다고 해도

결코 잊히지 않는 여러분만의 흔적.

이번에 고향에 가셔서

온몸으로 다시, 느끼고 오시길 바랍니다.




지난날

라디오 방송 오프닝으로 썼던 글에 더하여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쓸모가 있길 바랍니다.


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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