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련함을 미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련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터무니없는 고집을 부릴 정도로 매우 어리석고 둔하다.' 인데, 사전적 의미를 곱씹어도 미련하다는 건 부정적인 단어가 아닌 것만 같다. 터무니없는 고집 정도는 누구든 갖고 있는 거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나는 미련함이 사람의 아이덴티티, 정체성과 비슷한 위치에 놓인다고 여길 때가 있다. 이를테면 TK는 영원한 TK로, MZ는 영원한 MZ로 여기는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개인이 스스로 그 위치에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경우랄까.
나는 방송일을 하며 종종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미련한 사람들을 만난다. 누군가와의 만남에서 사회적인 큰 이슈가 앞에 놓였을 때, 그 사건을 대하며 내면에 울분이 있지만 내내 속으로 삭이거나 분위기에 휩쓸러 가지 않기 위해 자리를 피하는 등으로 외면하는 경우가 그렇다. 정치적인 이야기와 세대 간의 갈등, 오래된 관습과 변하지 않는 생각은 언제나 개개인의 미련함이 근본에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미련함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려는 것이 아닌 조금은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바이다. 미련함은 곧 미련한 자가 버릴 수 없는 자기 자신이니까.
대구는유명한 시장이 꽤 많다. 그중 한 시장의 상인회 회장님을 방송 인터뷰 관계로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대구가 섬유도시로 명성을 떨치기도 전에 이곳에서 터를 잡았고 유명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이름만 말하면 모두 알 수 있는 연예인들과도 아주 친하다고 했다. 그의 화려한 인맥은 그가 상인회 회장을 하는 데 큰 몫을 했고, 그는 자신의 위치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가 자신의 위치를 더욱 견고하게 할 수 있었던 건 변하지 않는 민주화(?) 정신 때문이었다. 내가 '민주화'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그가 자주 언급한 단어이기 때문인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하게 된 원인과 과정에 대해 언제나 자세하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민주화'는 내가 학창 시절 배웠던 교과서와 문학에서 만났던 이야기와는 좀 거리가 있었지만 나를 만날 때마다 그는 항상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나는 조금 의문이 드는 상황에서도 쉽게 백기를 들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나보다 30년을 더 살았던 사람이었고, 나는 그 30년의 세월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책에서 읽은 지식을 앞세워 요즘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말한다 해도, 그 말이 진정 사실이라 할지라도 대화에는 전혀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의 미련함이 그를 30년 동안 단단하게 붙잡았기 때문이다.
'민주화'에 대한 미련함은 곧 그 자신이었다. 그의 버팀목이었고 정신이었고 더 이상 아무것도 듣지 않겠다는 결심과도 같은 단어였다. 그의 삶에 그 누구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었다. 문제는 미련함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꽤 많다는 거다. 나는 언젠가부터 사람과의 대화를 시작할 때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미련함부터 파악하려 드는데, 그 과정은 나를 괴롭게 한다. 끝내 상대방의 미련함을 발견할 때면 나는 입을 닫고 거리를 두며 상황을 피하곤 한다. 그 결과가 오늘날 나를 홀로 있게 한 것 같다. 그나마 혼자만의 시간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어서 다행이지, 나의 삶에 사람이 많이 필요했다면 나는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
평론가 정여울은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한 후기를 남기며 문학 작품 속의 '문제적 개인'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문학작품 속의 문제적 개인은 단순히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라고 한 바가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미련한 사람들의 특징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에게서 그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범주 안에 속하고 그 범주 안에서 유독 이상하게 취급받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 또는 제기하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외롭고 괴롭다. 만약 문제가 세상 밖으로 툭 튀어나오는 날이면 누군가의 생명이 담보되기도 한다. 이쯤에서 정확히 해야 할 것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만이 존재하는 세상은 온전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개인의 고유한 미련함들이 모두 발현되고 치열하게 싸워 조율해 나가기 위함이다. '민주화'라는 거창한 단어를 좁게 생각하는 미련함이 그 단어의 의미를 모두 정의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우리 모두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개개인의 미련함들이 돋보여야 한다. 일단 서로의 미련함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다.
회장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감히 그에게 나의 미련함에 대해 전하고 싶었다. '회장님, 저는 사실 그 시장에서 물건을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어요. 마켓컬리 이용합니다.' 회장님은 이 어린 작가 뭔가, 싶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실 그건 거짓말이었다. 나는 그 시장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들어준 반찬처럼 맛있는 반찬을 파는 가게도 있고, 싱싱한 과일뿐만 아니라 한 끼 든든하고 저렴하게 해결하고 올 수 있는 맛있는 국수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의 반려견 고동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쇼핑장소라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회장님이 완벽하다 여기는 세상에 조금은 찬물을 끼얹어 주고 싶었다. 30년 동안 정진 하셨어도 세상에는 늘 새로움이 존재하며 영원한 영광은 없으니까.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말하는 모든 것. 어른들이 말하는 대학, 취업, 결혼, 육아. 그 모든 것을 완벽히 하고도 미련하지 않은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단언하고 싶다. 적어도 내가 만난 세상은 그렇다. 그저 우리는 오늘을 살뿐이다. 우물 안 개구리, 미련한 나로.